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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화요일의 비정상 등교일

천가을(千秋) 2017.05.22 15:22

화요일의 비정상 등교일

~Tuesday with Zombies~





 아침 잠꼬대에서 유진을 깨워버린 건 다름 아닌 커다란 폭발음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유진은 반사적으로 창문으로 달려가 폭발음의 원인을 찾았다. 그러나 뿌연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학교 주변에 커다랗게 피어오른 흙먼지구름뿐이었다. 아마 그 폭발은 학교 쪽에서 생긴 모양이었다.

 유진은 방바닥에 널브러져있는 핸드폰을 줍고 기억나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솜사탕처럼 폭신폭신한 덜 깬 목소리였다.

 “유진이야?”

 “세인아, 방금 폭발 들었어?”

 “아, 응, 그거 우리 학교 운동장이 폭발한 거야. 방금 뉴스에도 떴어.”

 벌써 뉴스에 떴다고? 유진은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틀었다. 과연, 뉴스에 XX고등학교 운동장 폭발이 속보로 나오고 있었다. 요즘은 이런 일도 속보로 나오는구나 싶다가도 어쩌면 전쟁이나 지진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꽉 쥐고 있던 휴대폰 건너에서 후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아, 정말 네 말대로야.”

 “응? 무슨 소리야?”

 “네가 어제 방과 후에 나한테 말했었잖아.”

 무엇을 말했더라......, 유진은 잠시 어제 방과 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보려고 눈 감고 떠올려보았지만 또 한 번의 폭발음 때문에 유진은 중심을 잃고 꽈당 넘어졌다. 엉덩이를 문지르며 유진은 무슨 상황인지 살펴봐야할 것 같아 겉옷을 대충 걸치고 현관문을 나섰다.

 길거리는 사람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엄청 조용했다. 유진은 방금 전 속보에서 ‘집밖으로 섣불리 나서지 마라’는 문구가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지진이나 전쟁 중이라기에 길거리는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오직 저 멀리 학교를 잡아먹을 듯한 흙먼지만이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있어 마치 마을이 통째로 서부영화극 배경으로 옮겨놓은 기분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오르기 싫었던 등굣길 언덕을 유진은 일초라도 늦을까 급하게 뛰어올랐다. 콜록콜록, 먼지구름을 헤치고 마침내 도착한 정문 앞에 선 유진은 순간 놀라서 그만 흙먼지를 한 뭉텅이 들이마시고 말았다.

 교문 앞은 완전히 낭떠러지였다.

 유진은 자기 앞에 펼쳐진 커다란 구덩이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원래 그곳에는 넓게 펼쳐진 운동장 위에서 멍청하게 생긴 남학생들이 흙먼지 날리며 공놀이 하고 있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여전히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 눈이 따가웠지만, 그녀의 앞에는 분명히 교문에서부터 학교 건물 앞까지 커다랗게 뚫린 구덩이가 시꺼먼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유진은 자기 손에 쥐여있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휴대폰은 여전히 ‘통화중’ 화면을 표시하고 있었다. 아마 아까 하던 전화를 끊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왔었나 보다. 화면에는 여전히 세인의 이름과 번호가 적혀있었다. 휴대폰을 귀에 가까이 대보니 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때?”

 “......완벽해.”

 유진은 떨리는 입술로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 웃음이 실실 새어나오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실룩실룩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참으며 유진은 세인에게 말했다.

 “오늘은 확실히 학교가 쉴 거야!”


 유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모두가 잘 아는 학교혐오자였다. 그녀의 학교혐오는 전교생이 알 정도로 유명한데, 거기엔 그녀가 단체 채팅방과 세인과의 1대1 채팅방을 헷갈려 그만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학교에 가는 건 그만큼 내가 혐오하는 학교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다!’라는 말을 해버린 것이 가장 역할이 컸다. 덕분에 그녀의 학교혐오는 더욱 깊어져갔다.

 그러니 그녀의 무결석 기록과 높은 학업성취도는 다른 사람이 보기엔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나만의 저항 방식이야.”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유진은 흥 콧방귀를 끼고 대답한다.

 “정정당당하게 정면승부를 하는 거지. 그리고 학교가 가장 좋아하는 학생이 제일 싫어하는 게 학교라고 생각해봐. 그것만큼 확실한 메시지가 더 있을까?”

 유진은 자기 대답에 스스로 만족스러워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녀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바로 신경을 꺼버린다. 덕분에 안쓰럽게도 유진에게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중학생 때부터 거의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수업에 성실히 참여하면서도 속으로는 학교 폭발을 염원하던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마침내 학교는 정말로 폭발해버리고 만 것이다.

 “역시 정의는 내 편이었던 거야!”

 유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이스크림을 낼름 핥았다. 

 “그 폭발은 아마도 지하에 쌓여있던 인화성 천연가스 때문에 생긴 걸로 추정된대.”

 옆에서 같은 아이스크림을 깨작깨작 먹으면서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던 세인이 말했다. 어째서인지 둘은 모두 교복차림이었다.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였지만 여전히 거리는 조용했다. 둘은 교복 치마를 펄럭이며 번화가 거리를 당당하게 돌아다녔다. 

 유진은 거리를 정신없이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면서 말했다.

 “평소에는 사람이 많아서 발 디딜 염두도 못 낸 곳이었는데, 여기.”

 “그러게. 왔어도 친구 없는 티만 팍팍 내고 돌아갔겠지.”

 “으윽.......”

 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을 엄지로 슥슥 훑었다. 평소에도 유진에게 난데없이 심한 말을 툭툭 던지는 그녀는 그러나 유진의 거의 하나 뿐인 친구였다. 중학생 때 모두 유진을 이상한 소리하는 미친년이라며 쉬쉬거릴 때 오직 세인만이 그녀의 헛소리를 받아줬다.

 유진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건지 계속 거리를 둘러보면서 형형색색의 간판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노래방, PC방, 보드게임 카페 등등, 모든 것이 그녀에겐 신기했다.

 “계속 그렇게 촌놈처럼 다니지 마. 같이 다니는 내가 쪽팔리니까.”

 “어쩔 수 없어, 난 정말 이런 데가 처음이니까.”

 유진은 히히 웃었다.

 “사실 난 오늘 학교 쉬는 날이라 평소보다 훨씬 학생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다들 겁을 먹고 집 안에 틀어박혀 있나 보구나.”

 “그게 아니라 우리가 무모하고 무식한 거야.”

 세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여전히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유진은 자기에게 ‘오늘 학교는 쉽니다.’ 문자가 오지 않았다는 걸 아직 알지 못하는듯했다.


 골목골목을 빙빙 돌며 어딜 갈지 긴 시간동안 고민한 끝에 둘이 도착한 곳은 영화관이었다. 유진은 지난번에 SNS에서 봤던 좀비 영화 광고를 떠올렸다.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였다.

 “그런 영화는 대부분 광고만 재미있지만.”

 세인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벽에 걸린 영화 광고를 바라보았다.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위치한 영화관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세인이는 좀비 영화 본 적 있어?”

 “나는 좀비 장르는 책으로 밖에 본 적이 없어.”

 “책?”

 “응, ‘나는 전설이다’라고 유명한 책 있어.”

 “나는 좀비 나오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유진은 엘리베이터 위 빨간 숫자가 하나씩 늘어나는 걸 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지금 엄청 기대하는 중이야.”

 순간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밖에서 그녀들을 반긴 것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불이 전부 꺼져있는 영화관이었다.

 “뭐야, 문 닫은 거야?”

 “아까 1층에 ‘의문의 폭발 사고 때문에 문을 닫는다’는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런 거 봤으면 미리 말을 해달라고!”

 유진은 우왁 소리를 크게 지르며 주먹으로 벽을 쿵 내리쳤다. 잔뜩 기대한 만큼 실망도 컸다. 세인은 살짝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거였어?”

 “좀비가 보고 싶어.......”

 유진은 벽에 얼굴을 파묻은 채 웅얼웅얼 대답했다.

 “영화고 뭐고, 그냥 실제 좀비나 보고 싶어.......”

 “실제 좀비를 만나면 넌 아마 오래 가야 하루 밖에 못 살 거야.”

 세인은 유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기운 내고, 모처럼 노래방이라도 가는 거 어때?”

 “노래방.......?”

 유진은 고개를 들고 세인을 바라보았다. 세인은 반짝거리는 유진의 눈동자를 보고 씨익 웃었다.

 “노래방은 분명 열려있을 거야.”


 정말로 영화관 옆에 위치한 노래방은 영업 중이었다.

 사장 아저씨는 폭발 원인이 천연 가스라는 뉴스를 보고 노래방을 다시 열었다고 말하면서 껄껄 웃었다. 얼떨결에 한낮에 노래방 첫 손님이 된 유진과 세인은 사장의 인심이 후한 서비스 덕분에 노래방에서 5시간이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노래방에 처음 와 본 유진은 “나 아는 노래 별로 없는데.......”라며 걱정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아는 노래, 모르는 노래,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노래 전부 신나게 따라 부르면서 날뛰고 있었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놀고 나와 보니 하늘이 어느새 주황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야, 잘 놀았다. 학교도 안 가고, 기분이 좋네!”

 유진은 기지개를 쫙 펴면서 기분 좋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세인은 언제 산건지 아이스크림 하나를 또 깨작깨작 먹고 있었다.

 “그런데 유진이는 왜 학교가 싫은 거야?”

 “학교는 싫어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오히려 유진은 물어보는 쪽이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학교에서는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지, 선생님들도 재미없지, 수준 낮은 애들뿐이라 나랑 놀아줄 친구는 한 명도 없어.”

 “반대로 네가 수준 낮은 거야.”

 세인의 말에 반박하려고 유진이 입을 여는 순간, 괴상한 울음소리가 둘의 대화를 방해하고 거리 안에 낮게 울려 퍼졌다. 유진은 순간 할 말을 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무슨 소리가.......”

 세인이 대답하는 그때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둘의 고막을 찔렀다. 소리가 난 쪽으로 동시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햇빛을 등진 검은 실루엣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기괴한 자세로 허리를 굽힌 채 땅바닥에 널브러진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인간이었다. 기괴하게 생긴 생물체는 땅바닥 위에 쓰러진 인간의 목덜미를 열심히 물어뜯고 있었다. 뿌드득. 뿌득, 목뼈를 이로 부러뜨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히, 히익!”

 유진은 참고 있던 비명을 짧게 지른 후 스스로 입을 가렸다. 그러나 열심히 고개를 처박고 먹고 있던 그것의 움직임이 멈추더니, 고개가 뚜두둑 둘을 향해 회전했다.

 피투성이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꺄아악!”

 유진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것은 앙상하고 긴 팔을 다리 삼아 재빠른 속도로 둘을 향해 달려왔다. 세인은 나지막이 욕을 내뱉고 유진의 팔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유진은 자리에서 겨우 일어난 후 세인을 따라 바로 건너편에 있는 백화점 건물을 향해 들어갔다.

 백화점 내부는 피투성이였다.

 “무, 무슨.......”

 “달려!”

 세인도 기겁해 새파랗게 질린 표정이었지만 어떻게든 냉정해지려고 눈을 질끈 감고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달렸다. 유진도 세인을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아래층에서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진은 울고 싶었지만 이를 꽉 물고 3층으로 올라갔다. 질끈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찔끔 새어나왔다.

 3층은 여성 의류 코너였다.

 “피팅룸에 들어가자!”

 세인의 말에 유진은 끄덕인 후 바로 앞에 보이는 피팅룸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옷 거치대 몇 개쯤 쓰러뜨리면서 간신히 피팅룸에 도착한 둘은 문을 쾅 닫고 잠갔다. 문 옆의 ‘사용중’ 전등에 불이 팟 들어왔다.

 거칠어진 숨을 헉헉 고르면서 둘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기 힘들었다. 유진은 끅끅 울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참으려고 크게 심호흡했다. 세인도 유진처럼 겁에 질려 있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유진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이제 괜찮을 거야. 여긴 문틈이 좁아서 사람이 들어오기 힘들고, 문을 부수고 들어오지도 못할 거야.”

 “흑, 흐끅.......”

 그때 문을 강하게 쿵 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둘을 덮쳤다. 깜짝 놀란 유진은 울다 말고 펄쩍 뛰었다. 벌벌 떨면서 문을 쳐다보자 다시 한 번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들리는 소리는 다행히도 남성의 목소리였다.

 “거기 사람 있습니까?”

 “네―”

 바로 대답하려는 유진의 입을 뒤에서 세인이 꽉 막았다. 세인은 읍읍거리면서 왜 그러냐는 눈으로 세인을 쳐다보았다. 그 두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넘쳐흐를 것만 같았다. 세인은 검지를 입술에 대며 “쉿” 하고 속삭였다.

 남성은 또다시 문을 쿵쿵 두드렸다. 이번에는 좀 다급한 두드림이었다.

 “거기 사람 있는 거 알아요, 문을 여세요! 제가 왔으니까 괜찮습니다!”

 어떻게든 대답하려고 바동거리는 유진을 세인은 입술을 꼭 깨물고 붙잡고 있어야 했다. 남성은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좀 더 힘이 들어간 노크였다.

 쿵쿵쿵쿵쿵쿵.

 “야, 거기 있는 거 아니까 나오라고! 아 젠장, 나와 빨리!”

 남성의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커다란 위협이었다. 유진은 막힌 입으로 읍읍 소리를 내면서 흐느꼈다. 눈가가 어느새 눈물범벅이 되어 퉁퉁 부어 있었다. 세인도 하아, 하아, 떨리는 숨을 심호흡하며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쿵! 쿵!

 ......쿵쿵쿵쿵쿵쿵쿵!

 “나와, 제발, 나오라고....... 아, 안 돼!”

 남성은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면서 흐느끼더니 비명을 지르고 피팅룸에서 멀어졌다. 그제야 세인은 유진의 입을 풀었고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다시 문을 강타하는 커다란 쿵 소리가 그녀들을 덮쳤다.

 “꺄아아악!”

 문은 심하게 위아래로 덜컹거렸고 문틈 사이로 붉은 액체가 스멀스멀 새어나오고 있었다. 간간히 들리는 남성의 안쓰러운 신음소리가 유진의 고막을 후벼왔다. 으헉, 흐엑, 괴상한 소리가 남성의 뚫린 목에서 새어나올 때마다 유진은 점점 몸을 더 움츠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남성을 공격한 무언가가 식사를 다 한 건지 문의 덜컹거림이 멈췄다. 귀를 꽉 막고 몸을 웅크리고 있던 유진은 고개를 살짝 들고 세인을 바라보았다.

 “간 걸까......?” 

 “모르지.”

 세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리에 일어난 세인은 눈을 감고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듯이 ‘괜찮아’라고 작은 목소리로 계속 중얼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팔을 뻗은 세인은 다시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손잡이를 잡고 철컥 돌렸다.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문틈 사이로 보인 세상은 더 이상 둘이 알고 있던 평범한 백화점의 모습이 아니었다.

 새하얬던 벽은 온통 붉은 피로 칠이 되어있었고, 벽에 큼직하게 박혀있던 브랜드 로고는 전부 땅바닥에 떨어져 있거나 부서져 치직 칙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옷 거치대는 전부 이리저리 쓰러져있었고, 성한 옷은 거의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눈에 띈 것은 목이 뜯겨나간 시체 여러 구였다.

 우욱, 유진은 토가 나오려고 하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쓰라린 위액을 다시 삼키며 유진은 타들어가는 목을 왼손으로 꽉 쥐었다. 둘은 조용히 피팅룸에서 나와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바닥에 조그맣게 찬 피 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나는 찰박찰박 소리가 유진을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망가져서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훨씬 더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2층 침구류 코너의 수많은 침대와 하얀 매트리스를 전부 붉은 색으로 물들어버린 크고 작은 핏자국은 마치 잭슨 폴록의 미술을 연상케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유진은 에스컬레이터를 하나 더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세인은 입을 꾹 다물고 앞으로 꿋꿋이 걸어갔다. 1층에 끝없이 펼쳐져 있던 유명 브랜드 화장품들은 전부 바닥 위에 엎어져 피와 체액과 서로 엉켜 하얀 바닥 위를 얼룩덜룩 채우고 있었다.

 “여기에 생존자는 우리밖에 없는 걸까?”

 “그런 것 같은데.”

 세인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뒤의 에스컬레이터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둘은 반사적으로 뒤돌아보았다. 누군가가, 굉장히 천천히,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고 있었다.

 둘은 그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

 “아까 물어 뜯겼던 그......!”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그것을 가리킨 채 굳어버린 유진의 팔을 이번에도 세인이 강하게 끌어당겼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을 질질 끌며 유진은 세인을 따라 백화점 밖으로 도망쳐왔다.

 “젠장, 너무 기본적인 걸 잊고 있었어!”

 세인은 혀를 쯧 찼다.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그대로 좀비가 된다는 건 기본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그녀들은 좀 더 조심히 다닐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들킨 이상 그녀들에게 남은 건 도망 밖에 없었다.

 세인과 유진은 번화가 거리를 전력 질주했다. 밤이 찾아온 번화가 거리였지만 대부분의 간판이나 네온사인은 여전히 불이 꺼진 채였다. 유진은 으윽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유진은 눈을 꽉 감고 주먹에 힘을 줬다. 왠지 모르게 자신의 뒤를 쫓고 있는 그것들이 한둘이 아닌 기분이 들었다. 백화점의 좀비들, 그 옆 건물의 좀비들, 그 건너편 건물의 좀비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용하던 거리는 금세 수많은 좀비들로 요란스러워졌다. 뒤쫓아 발걸음 소리에 땅이 쿵쿵쿵쿵 크게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정신없이 달리고 나니 어느새 유진이 잘 알고 있는 거리였다. 매일 오가는 루트라서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된 걸까, 둘은 본능적으로 이 익숙한 거리를 향해 도망쳐온 것이었다. 여기서 코너를 돌아 베이커리, 커피숍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고 언덕 위로 달리고 나면.......

 “꺄악!”

 세인의 비명소리에 유진은 달리는 걸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아스팔트 위에 세인이 걸려 넘어져 엎드리고 있었다. 유진은 고통을 호소하며 신음 소리를 내는 세인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세인은 오히려 큰소리치며 그녀가 오는 것을 거부했다.

 “나는 괜찮아, 먼저 가!”

 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시꺼먼 좀비 떼가 어느새 언덕 바로 아래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세인을 내려다보았다. 크게 까진 무릎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유진은 둘을 번갈아 보며 발을 동동 굴렸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유진은 눈을 질끈 감은 후, 큰 결심을 하고 세인의 팔을 잡아당겼다.

 “난 괜찮다니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유진은 세인을 공주님 안기 포즈로 들어 올린 후 심호흡을 했다. 살짝 무거웠지만 생각한 것보다는 가벼웠다. 피를 뚝뚝 흘리며 유진은 세인을 들어 올린 채 한발 한발 내딛었다. 점점 그 속도는 빨라지더니 어느새 유진은 ‘달린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좀비떼는 그녀보다 훨씬 더 빨랐다.

 언덕을 다 오르니 매일 봐서 질린 그 건물이 그녀들을 반기고 있었다. 그 앞에는 여전히 시꺼먼 입을 크게 쩌억 벌리고 있는 구덩이가 있었다. 유진은 세인을 내려다보았다. 세인은 불안한 눈빛으로 유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유진이 무슨 짓을 할 건지 대충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유진을 멈출 수는 없었다.

 유진은 다시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목표지점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무모한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유진에게 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원망하려면 자신을 스스로 여기까지 끌고 온 두 발에게 원망하자. 유진은 달리는 속도를 점점 높였다. 땀이 스며들어 따가운 두 눈을 질끈 감고, 유진은 낭떠러지 끄트머리까지 와서 발을 힘차게 굴러 크게 점프했다.

 “닿아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중력을 잊은 것만 같은 감각.

 서늘한 밤공기가 유진의 볼을 스치면서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차갑게 식혔다. 한순간의 부유감에 유진은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봤을 때 갑자기 시간이 멈춰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갑자기 빠른 속도로 잡아당기는 중력에 눈을 뜬 유진은 아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역시 끝까지 닿는 건 무리구나.

 이대로 구덩이의 보이지 않는 시꺼먼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거야.

 유진은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밝은 달. 몇 개 안 되지만 최선을 다해 반짝이는 별들. 그리고 학교 옥상 위에서 둘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

 “콰과과과광!”

 커다란 흙먼지 구름이 둘을 강하게 덮쳐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 위였다.

 일어나려고 하니 세게 부딪힌 허리가 찌릿찌릿 아파왔다. 유진은 허리를 어루만지며 상체를 힘겹게 세웠다. 옆에는 세인이가 찡그린 채 웅크리고 있었다. 구덩이 안인가? 그러나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보이는 건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는 커다란 구덩이였다.

 둘이 누워있는 곳은 학교건물 입구 앞이었다.

 “도착......, 했어?”

 유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학교 운동장이 또 한 번 폭발한 덕분에 흙먼지 구름에 떠밀려 학교 건물까지 도착한 모양이엇다. 허리가 찌릿 저려왔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유진은 조심스럽게 구덩이를 향해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좀비들이 시체에 달라붙은 구더기처럼 바글바글 들끓고 있었다. 죽지 못한 영혼들은 위를 향해 올라오기 위해 앙상한 뼈를 위로 뻗은 채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유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곧 해가 뜰 거야.”

 보랏빛 하늘의 아래가 점점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곧 건물 사이로 해가 고개를 빼꼼 내밀면서 따스한 햇빛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유진은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다시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더욱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바둥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림자가 걷히고 햇빛이 구덩이 안까지 비쳐지자, 그것들의 햇빛에 닿은 부분이 치익 소리를 내며 허연 연기를 내뿜었다.

 구덩이 안은 어느새 불 붙은 좀비들의 아비규환이었다. 그 모습을 유진은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저들도 한때는 인간이었을 텐데, 죽지 못해 남을 물어뜯다가 아침이 되면 증발해버리는 좀비가 되었구나.

 “아침 해가 떴네.”

 세인이 절뚝거리면서 유진의 옆으로 다가왔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좀비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아마 여기가 아니었을까?”

 세인은 하얀 재로 바스락바스락 타버리고 있는 좀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세히 보니 둘이 다니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좀비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오늘은 정상등교일이었으니까.”

 “그랬어?”

 유진은 정말로 몰랐다.

 “물론 정상이라고 부르긴 힘들지만. 좀비였던 이 학생들은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등교했겠지. 오직 무결석만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으니까.”

 세인은 그렇게 말한 후 입을 꾹 다물었다. 유진도 구덩이 속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온 게 아니라, 이미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좀비가 되어있었던 거야. 유진은 살며시 눈을 감고 묵념을 했다.

 “그냥 해본 소리지만.”

 “그런 거야?”

 “멀쩡한 학생이 좀비일 리가 없잖아.”

 세인은 후훗 웃고 땅바닥 위에 앉고 드러누웠다. 세인은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유진에게 말했다.

 “학교 하루 쉬어보니까 어때?”

 “그러게, 하루 쉴 때마다 이런 식이라면 사양할게.”

 유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리 학교가 싫다고 해도 이건 도가 지나쳤다. 사회 선생님의 지루한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낮잠이 그리워질 정도였다. 유진은 세인 옆에 앉고서 하늘을 향해 외쳤다.

 “이제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래!”

 “거봐, 하루도 못 간다니까.”

 세인은 쿡쿡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 너랑 같이 있어서 재미있었어.”

 유진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미있었다고? 난 두 번 더 못하겠는데.”

 “이렇게 너랑 단 둘이서 신나게 놀았던 거, 정말 오랜만이거든.”

 세인은 그렇게 말하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유진아, 이제 기억났어?”

 “무슨 소리야?”


 대답과 동시에 유진은 침대 위에서 일어났다.

 따르르릉 자명종 알람 소리가 유진의 두뇌를 시끄럽게 두드리고 있었다. 유진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까슬까슬한 땅바닥을 짚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잊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그제야 유진은 월요일 방과후에 세인에게 말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학교가 폭발해버렸으면 좋겠어!’

 순간 한 가지 생각이 유진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좀비가 보고 싶어.’

 “설마.......”

 유진은 창밖을 향해 뒤돌아보았다.


 익숙한 학교건물 뒤로 수요일의 아침이 이제 막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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