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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신세계 운명론

천가을(千秋) 2017.05.29 07:28

아아, 그 누가 말했던가, '신은 죽었다'고.


우리는 서둘러 그의 장례식을 준비했다. 그 오만한 신다운 장례식을 위해 우리는 학생들 사이에서 돈을 모았고, 그 결과 꽤 적지 않은 액수를 모금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뼛가루가 되어 썩어 들어갈 신도 나름 만족할 만한 장례식을 치를 수 있을 것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신은 자기주장이 강한 자였다. 또한 그는 굉장한 운명론자였는데, 자신 앞에 닥친 어떤 행운이나 불행도 전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그런 마음가짐은 이후 상당히 도움 되었는데, 왜냐하면 학생들에게 처절하게 짓밟힌 이후에도 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선 후 안경을 고쳐 쓰며 웃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는 '이 또한 마땅한 흐름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쉽게 납득해준다면야 우리는 전혀 나쁠 것이 없었다.


그는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편에 속했다. 그의 강의는 열리는 순간 바로 마감되었으며, 그 강의실은 항상 학생들로 넘쳐났다. 모두 그의 괴짜 같은 매력에 빠져있었다. 본래 대학생이란 그런 존재들이다. 평범이라는 틀에 오랫동안 갇혀있던 반동으로 그들은 비정상적인 것을 찾아 헤매며, 마침 그들 앞에 등장한 것이 바로 신이었다.


신에게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학교가 바로 신만의 세계라고 불러야했을 것이다. 이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봤을 때는 이미 그가 창조한 세계의 주민이 되어있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신이 정한 룰, 신이 정한 타부를 지키며 신에게 더 가까워지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런 이상한 분위기에 모두가 점점 동화되어갈 때, 처음 신에게 반기를 든 것은 마 선배였다.


"신은 그 학교의 썩어문드러진 기둥이었어," 마 선배는 그렇게 중얼거린 후 육개장을 한 숟갈 떠마셨다. 오랜만에 만난 마 선배는 여전히 덩치가 듬직하고 얼굴이 사납게 생긴 사람이었다. 현재 그는 신설기업의 경영기획부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처음에는 다들 미쳤다고 했었죠."


"'이 세계에서 당장 나가라!'고 내 얼굴 앞에서 외쳤었지."


마 선배는 껄껄 웃었다. 그리고 곧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신은 아무 말도 한 적이 없었어."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내리고 가만히 끄덕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의 강의는 마치 세뇌와도 같았다. 본래 그가 가르치는 분야는 정해진 답이 없었으며 그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수업은 토론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 수업은 '신이 옳고 나머지가 틀린 이유를 찾는 수업'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우리의 사고방식은 신에게 동화되었으며 그 누구도 신에게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걸까.


마 선배 앞에서 고함지르는 선배들을 내려다보면서, 허공을 가르는 날계란들을 차가운 눈으로 구경하면서,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또한 당연한 흐름'이라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그는 그때부터 이미 자신 앞에 닥쳐올 '운명'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직 대학생 1학년이었던 나는 그 비이성적인 광경을 보면서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다. 처음에는 '신선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곰곰이 되돌아볼수록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가 분명 이상한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 옆의 문 군이 입을 열었다.


"마 선배도 잘못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없었던 일을 꾸며서 학교신문 사설로 올리면 안 되죠."


"신의 앞잡이였던 주제에 입은 잘도 놀리지."


"저는 아직도 제게 잘못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너도 한번 날계란 맞아볼래?"


마 선배가 자리에서 요란하게 일어나자 문 군도 지지 않고 꼿꼿하게 일어섰다. 나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둘 사이를 중재했다.


"자자, 그만하세요. 장례식장에서 이러시면 안 돼요."


"너는 그때 당시 뭘 하고 있었지?"


문 군은 나를 향해 말했다.


"우리가 서로의 주장을 외치고 있을 때, 너는 뭘하고 있었지?"


"나는......."


"됐다, 오늘은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어."


마 선배는 쯧 혀를 찬 후 자리에 도로 앉았다. 문 군도 그제야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히 그 두 눈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문 군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자리에 앉은 나는 한동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당시 구경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가 쪽을 어슬렁거리던 나는 반가운 얼굴인 김 양을 만날 수 있었다. 한때 내 룸메이트였던 그녀는 자신을 '신의 자궁에서 새로 태어난 딸'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의 열혈한 지지자였다. 다른 사람들이 신의 매력과 사고방식에 이끌려 신의 세계에 빠졌다면, 그녀는 신에게 빠졌기에 그의 사고방식에 이끌려 다녔다.


"지금도 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


김 양은 담배를 한 모금 마신 후 연기를 내뿜었다.


"수많은 발들 아래에서 밟히던 신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서, 나는 사람들의 다리를 붙잡고 그만해달라고 애원하는 것 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그 정도로 신을 좋아했던......, 지지했던 이유는 뭐야?"


"혹시 무당벌레 갖고 놀아본 적 있어?"


"무당벌레?"


"무당벌레는 반드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날아가려고 해. 세워놓은 막대기를 위에 무당벌레를 올려놓고 꼭대기에 도착할 쯤에 막대기를 뒤집으면, 무당벌레는 다시 꼭대기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 날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꼭대기에 있어야하는 건지......."


김 양은 그렇게 말한 후 다시 담배를 한 모금 마신 뒤, 후우- 하고 허공을 향해 연기를 내뿜어보았다. 그것은 하늘 위로 점점 올라가더니 얇게 퍼지면서 사라졌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마 선배가 학교신문에 사설을 실은 이후 학교의 분위기는 점점 술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의 열혈 지지자들이 잘못했지 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목소리가 강했다. 오히려 열혈 지지자들이 신의 목적을 방해한다며 열혈 지지자들을 향한 억압이 시작되었다. 열혈 지지자들에게 눌려 신분상승의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신을 둘러싼 장벽이 한 꺼풀 벗겨지자 학생들은 점점 신과 그의 시스템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자신들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달았다. 신은 그것을 이용해 자신만의 세계를 지었고 우리들을 조종했다. 마치 그가 믿는 운명론처럼, 우리에게서 자유의지를 박탈한 신은 그 자리에 '신의 의지'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은 이상 신의 세계는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었다. 곧 학생들은 위를 향해 돌진했다. 신이 자리 잡고 있는 위치를 향해. 그리고 그를 바닥으로 끌어내린 후 무자비하게 밟기 시작했다. 여전히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한 자만이 그 학생들의 발목을 부여잡고 울부짖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신으로부터 벗어났다.


나는 그 모습을 계속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가 왕국을 세우는 모습을, 학생들이 그를 따르는 모습을, 그것이 한순간에 뒤집혀 꼭대기가 아래를 향해 추락하는 모습을, 그리고 지금 그가 마침내 삶을 다한 모습을.


나는 눈을 감고 그의 이름 앞에서 묵념을 했다.


'신XX 교수님,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신 교수님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의 일부라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바닥 위에 쓰러져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들이 반가워 서로 막걸리 잔을 건네다가 그만 과음한 모양이었다. 나는 헝클어진 앞머리를 대충 손질한 후 머리끈으로 다시 꽁지머리를 묶었다. 같이 막걸리를 마신 친구들은 어디론가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끔뻑거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번 크게 휘청거렸지만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부산스러운 소리를 따라 가보니 그들은 입구 쪽에 모여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크흠 한 후 무리를 향해 외쳤다.


"무슨 일이야?"


그들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의 손에는 어떠한 종이쪽지가 들려있었다. 아마 저것은 신 교수의 유서일 것이니라. 나는 어림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벽에 손을 짚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그들 중 하나가 나를 발견한 후 나를 향해 달려왔다.


"쳇, 이 망할 영감탱이는 다 알고 있었던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는 잉크투성이 유서를 팔랑거리며 내게 달려오더니 나에게 그것을 보여줬다. 나는 그것을 건네받은 후 눈대중으로 빠르게 읽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그 후 종이를 살짝 구겼으나 곧 그것을 사뿐히 탁상 위에 올려놓고는 바닥 위에 주저앉았다. 나는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우리들의 자유의지는 어디에 있는가!


신이 무너진 그 현장에 우리의 의지도 있었는가?


당신이 말하는 '당연한 흐름'이 바로 우리의 의지였단 말인가?


오 신이시여, 당신은 끝까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군요.


유서가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내 앞으로 천천히 떨어졌다.


비록 심각한 악필이었지만, 커다란 글씨로 쓴 그 첫 문장은 바로 이러했다


"마지막 수업: 신은 죽었고 마침내 너희는 자유로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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