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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어서 오세요, 라임오렌지 타운에!

천가을(千秋) 2017.06.28 19:50

캘리포니아 외딴 곳에 위치한 라임오렌지 타운의 첫 인상을 말하자면, 사실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날 밤은 특히 안개가 짙게 깔려있었고, 멀리서 일렁이는 마을의 불빛도 어딘가 사납게 느껴졌다. 마을을 둘러싼 앙상한 철조망, 그리고 그 입구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어서 오세요, 라임오렌지 타운에!”란 녹슨 표지판은 우리가 온 곳이 정말 외딴 곳이라는 걸 실감나게 만들었다.


덜컹거리는 차 안, 불안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내 앞자리 조수석에 앉은 엄마를 손가락으로 쿡 쿡 찔렀다.


“엄마, 우리 정말로 여기에 이사 오는 거야?”


엄마는 이상하게도 대답이 없었다. 아빠도 안개 깔린 앞만 보면서 말없이 운전했다. 내 옆에서 자고 있는 동생은 차가 심하게 덜컹거림에도 불구하고 깨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상한 분위기에 나도 다시 내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들시들한 잡초가 널린 허허벌판을 지나자 주택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 눈에 띄게 커다란 집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그 집에서 이유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나운 개 소리가 우리를 계속 뒤쫓아 오고 있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 도착했어.”


아빠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예상대로면 예상대로라고 해야 하나, 우리 차는 그 커다란 집 앞에 서 있었다. 겉이 보라색으로 칠해져있는 낡은 목조주택이었는데, 얼마나 낡고 허름한지 잘못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나는 여전히 졸고 있는 남동생을 흔들어 잠에서 깨웠다. 남동생 미키는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더니 “다 왔어?” 하고 중얼거리곤 차에서 내렸다. 나도 차에서 내린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 바로 앞에는 하필이면 공동묘지가 넓게 펼쳐져있었는데, 안개 때문인지 저 수많은 묘 사이에 좀비나 유령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먼저 집에 들어간 아빠를 따라 트렁크 안에 쌓여있는 커다란 박스 중 하나를 들었다. 하필이면 컴퓨터가 들어있는 상자라 무거워 떨어뜨릴 뻔했지만, 나는 가까스로 박스를 바로잡고 젖 먹던 힘을 다해 가슴 위로 들어올렸다.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어보니 집은 정말 제법 컸다. 2층짜리인데다가 다락방도 있는 건지 지붕 바로 아래에 조그마한 창이 뚫려있었다.


그 창으로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왓!”


깜짝 놀란 나는 이번엔 제대로 박스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에 엄마가 소리쳤다.


“괜찮니?”


“아, 응. 살짝 헛디뎠어.”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쉰 후 떨어뜨린 박스를 다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들어 방금 봤던 검은 실루엣을 다시 확인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봤을 때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




라임오렌지 타운에는 학교가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초등학교고 다른 하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합쳐져 있는 형태다. 어차피 외딴 마을이기 때문에 아이들 수도 적고, 그래서 두 학교 모두 규모가 굉장히 작은 편에 속한다.


오늘은 내 라임오렌지 중학교 첫 등교일이다.


2-A반 교실 앞에서 나는 심호흡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하필이면 어젯밤에 꿨던 꿈이 뒤숭숭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말았다. 어떤 커다란 저택이 거대한 불에 뒤덮여 활활 타오르는 꿈이었는데, 사방에서 메아리치는 끔찍한 비명소리에 귀를 막고 도망치다가 바로 눈앞에서 불꽃이 나를 덮쳐오면서 잠에서 깨버린 것이다. 그때의 그 비명소리와 화상 입을 듯한 열기가 아직도 생생해서 지금도 그 꿈을 생각하면 등 뒤가 식은땀으로 젖으려고 한다.


내가 마침내 용기를 내고 교실 문을 열자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시선에 내가 고개를 움츠리자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내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


“겁먹을 것 없단다, 우린 언제나 새 친구를 환영하거든.”


선생님은 내게 싱긋 웃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교실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칠판 위에 내 이름을 적은 뒤 학생들을 향해 뒤돌아보았다.


‘사라 애덤스’


나는 다시 심호흡을 한 후, 학생들 앞에서 내 소개를 했다.


“안녕, 난 사라 애덤스야.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다가......, 부모님 사정으로 라임오렌지 타운에 이사 오게 됐어. 좋아하는 건 퍼시잭슨, 싫어하는 건 오이야. 잘 부탁해!”


“네 자리는 저기 비어있는 곳이란다.”


선생님은 자리 한 곳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이고 선생님을 바라본 나는 그녀가 나를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말문이 막혔지만, 선생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전 시골도 괜찮아요.”


내 자리는 비교적 창가에 위치해 있었다. 내 옆자리는 옅은 갈색 피부로 보아 히스패닉계로 보이는 여학생이었는데,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윤기 나는 검은 머릿결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나를 향해 몰려들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왔다고? 거기는 정말로 차가 날아다녀?”


그렇게 물어본 건 살짝 통통한 남학생이었다. 그의 주황색 머리는 만지면 따가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짧았다. 그가 얼굴을 들이밀면서 내게 질문하자 키 작은 남학생이 그를 잡아당기면서 한숨 쉬었다.


“그럴 리가 있겠냐. 봐, 사라도 당황했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고선 동그란 안경을 고쳐 쓰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그의 손을 잡자 그는 가볍게 악수했다. 생김새나 행동으로 보아 그는 동양인인 듯 했다. 그는 악수하며 내게 자신들을 소개했다.


“아까 이 덩치 큰 녀석의 무례함에 대해선 내가 대신 사과할게. 내 이름은 벤자민이야, 벤자민 한. 편하게 벤이라고 불러도 돼. 이 덩치 큰 뚱땡이는 랄프 콜린스고, 주근깨 많은 이 녀석은 케이시 언더우드야.”


“안녕!”


케이시는 손을 흔들며 내게 반갑게 인사했다. 케이시는 정말로 볼 위에 주근깨가 많았다. 그녀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을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척 봐도 활발할 것 같은 그녀의 성격으로 보아 아마 그것은 활동하기 편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랄프와 벤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차가 날아다니는가에 대해 토론하는 동안 케이시가 내게 물어보았다.


“너는 개가 좋니, 고양이가 좋니?”


“난 딱히 상관없이 다 좋아해. 굳이 따진다면 고양이? 하지만 개도 좋아해. 특히 큰 개.”


“정말? 우리 집에서 이따만한 개를 키우는데 나중에 한 번 볼래?”


케이시는 양팔을 쫘악 펼치면서 개의 크기를 설명했다. 으음, 그 정도로 큰 개는 좀 무서운데. 나는 하하 웃으면서 대충 얼버무렸다.


“언젠가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겠네.”


겨우 셋을 돌려보내고 휴우 한숨 돌린 나는 문득 내 옆자리 여학생이 신경 쓰였다. 옆을 보니 그녀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내가 싫은 걸까 고민했지만 나는 용기를 내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고개를 돌린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 잘 빚은 도자기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 그리고 빠져들 것 같은 새까만 눈동자. 지금까지 살면서 수많은 또래 여학생을 보았지만, 이렇게 가슴이 쿵쾅댈 정도로 설렌 적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머리 오른쪽에 앙증맞게 꽂혀있는 붉은 머리핀이 햇빛에 반짝였다.


그녀의 조그마한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왜?”


“아, 아니, 그냥.”


나는 머뭇거리다가 하하 웃으면서 뒷머리를 긁었다.


“혹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옆자리니까.”


그녀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다만 그 깊은 우물 같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 시선에 얼음처럼 굳어버린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그녀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은 이사벨라야. 이사벨라 그라시아야.”


“응, 난 새라 애덤스. 잘 부탁해.”


“알아, 아까 들었어.”


그리고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는 듯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수줍은 건지, 차가운 건지 알 수 없는 그녀의 행동을 볼수록 나는 점점 그녀에게 더 빠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녀의 뒤통수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괜히 고개를 푹 숙인 후 볼을 붉혔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전학생치곤 괜찮은 첫날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과연 사라가 눈치 챘을까?”


“괜찮아, 아직 괜찮아.”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앞으로의 일에 대해선......, 생각하지 말자.”


“.......”


“죽은 사람에겐, 앞으로라는 게 없으니까.......”




*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전학 온 지 4일이 지났고, 나도 나름 학교생활에 적응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랄프와 벤, 케이시는 첫날 이후로도 종종 나와 함께 같이 수다 떨거나 학교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 케이시가 앞장서면, 벤은 우릴 가만히 구경하고 있다가 랄프가 사고 칠 때 안경을 고쳐 쓰며 특유의 손짓과 함께 지적했다. 그러면 둘은 또 쓸데없는 이야기로 말다툼을 하기 시작하고, 나는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참던 웃음을 그만 터뜨리고 만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나는 셋과 함께 노는 것이 정말 즐거웠으며, 웃고 떠들고 뛰어놀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가있었다.


한편 옆자리 이사벨라는 여전히 말수가 적었다. 말 걸면 대답을 해주긴 했지만, 대화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적지 않은 대화를 통해 나는 이사벨라에 대해 꽤 많이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집에서 검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이름은 펠릭스라고 한다. 그녀에게 굉장히 소중한 가족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사벨라가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없던가.


오늘도 우리 넷은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놀이터로 뛰어갔다.


벤이 랄프의 말실수를 놀리자 랄프는 벤을 쫓아 미끄럼틀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삐걱거리는 그네 위에서 케이시와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이사벨라가 생각나 케이시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이사벨라는 원래 조용한 아이니?”


“이사벨라......?”


케이시는 그네 위에서 다리를 흔드는 걸 멈추고 날 쳐다보았다.


“이사벨라가 누구야?”


순간 나는 바람이 우리 둘 사이로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7월 말치고는 너무나 차가운 바람이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었다. 벤과 랄프가 다투는 소리도, 그네의 삐걱이는 소리도, 운동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도, 전부, 전부, 멀어져가는.......


삐걱.


다시 케이시의 그네가 삐걱거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우린 항상 이지라고 불러서 잠시 까먹고 있었어.”


“그래?”


나는 하하 웃으며 이마에서 주륵 흘러내린 식은땀을 얼른 소매로 슥슥 닦았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 나는 정말로 우리 반엔 원래 이사벨라가 없던 게 아닌가 하고 깜빡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이지라고 부르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건 그렇겠지.”


케이시는 시시하다는 투로 말한 후 그네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어느새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학교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케이시는 슬쩍 나를 뒤돌아보더니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서둘러 그네에서 내리던 나는 종소리, 바람소리에 뒤섞인 케이시의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그 녀석은 유령이나 다름없으니까.”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는 거니?”


속삭이는 듯 달콤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칠판에는 선생님이 알아볼 수 없는 필기체로 쓴 글씨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나는 턱을 괴고 있던 팔을 내리고 눈을 두세 번 끔뻑였다. 수업 중에 딴 생각을 하다가 그만 멍 때린 모양이다.


이사벨라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보건실 가야할 것 같니?”


“아,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한가 보네.”


그렇게 말하며 나는 이사벨라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온통 케이시의 그 한 마디가 계속 메아리치고 있었다.


유령이나 다름없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케이시와 친구들은 이사벨라를 이지라고 부른다고 했지만, 그들이 실제로 이사벨라와 이야기하는 모습은 나흘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혹시 왕따 당하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건 민폐일 것 같은데.


고막을 세게 때리는 벨소리에 정신이 번쩍 뜬 건 그 때였다.


“뭐, 뭐야?”


교실 전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띠리리리, 정신을 마구 뒤흔드는 굉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나는 귀를 막고 소리쳤다.


“화재 벨이 고장 난 거 아니야?”


그러나 다른 학생들은 내 외침이 들리는 건지 아닌지 우왕좌왕 돌아다니다가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 몸을 웅크렸다. 심지어 선생님도 비명을 지르더니 교재로 머리를 보호하고 교탁 아래로 숨었다.


“다들 왜 그러는 거야?”


하지만 내 외침은 여전히 아무에게도 전해지지 않았다. 옆자리를 보자 이사벨라도 책상 밑에서 두 귀를 막고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책상 밑으로 기어가 이사벨라의 어깨를 잡고 외쳤다.


“이사벨라, 괜찮아? 다들 왜 그러는 거야?”


“불......, 커다란 불.......”


이사벨라는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고 계속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교실 밖에 나가서 도움을 요청해야하나 망설이면서 일어섰을 때 다행히 화재 벨이 뚝 멈췄다. 나는 아직도 책상 밑에서 헐떡이는 이사벨라의 어깨를 토닥이며 물어보았다.


“이사벨라, 이젠 괜찮아? 진정할 수 있겠어?”


“아, 응.......”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이사벨라의 몸은 아직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이사벨라를 꼭 껴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이사벨라의 심장이 크게 쿵쾅쿵쾅 뛰는 것이 직접 느껴졌다. 마침내 이사벨라의 호흡이 진정되자 나는 오늘 점심시간에 미처 뜯지 못한 런치박스의 카프리썬을 가방에서 꺼내 빨대를 꽂아 이사벨라에게 건넸다. 이사벨라는 작게 ‘고마워’라고 말한 후 카프리썬을 받았다.


교실을 둘러보니 친구들도 진정됐는지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노후로 인한 고장이라고요, 예, 알겠습니다,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걸 보아 아마 전화 상대는 학교 행정실인 모양이었다.


나는 교실바닥 위에 앉아 카프리썬을 쪽쪽 빨아먹고 있는 이사벨라에게 물었다.


“왜 다들 이렇게 불을 무서워하는 거야?”


이사벨라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순간 내가 무례한 질문을 했다는 걸 깨닫고 아차 싶었지만, 이사벨라는 물고 있던 빨대를 떼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마을에 엄청나게 큰 화재가 있었거든.”


“화재가 있었다고?”


“응, 한 저택에서 불꽃이 솟아오르더니 하루 종일 사납게 활활 타올랐어. 근처에 소방서가 없어서 우리는 소방차가 올 때까지 발을 동동 굴리면서 그 집이 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는데......, 그 비명소리가 정말 끔찍해서.......”


이사벨라는 말끝을 흐리더니 카프리썬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온 가족이 불붙은 채로 비명을 지르며 겨우 도망쳐 나왔는데, 이미 온몸이 새까만 숯이 되어버려서 결국 한 명 빼고 전부 그 자리에서 죽었나봐. 그리고 그 한 명도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라. 이후 그 자리에 다시 집을 새로 지었는데, 가끔씩 그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얌전한 개들도 이 집을 지나갈 때면 허공을 향해 시끄럽게 짖는다고도 하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 집은 저주 받은 집이라고 불리고 있어.”


“마을 사람들 모두의 트라우마가 된 거구나.”


이사벨라는 빨대를 물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월요일에 꿨던 생생한 악몽이 생각나 온몸을 떨었다. 분명 그 악몽도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메아리치고 불꽃이 활활 타오르던 저택 안이었다.


“그 집이 어디인데.”


이사벨라는 다시 나를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나를 향해 들었다. 그리고 물고 있던 빨대를 입에서 떼고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대답했다.


“......너희 집.”




*




“학교는 어떠니?”


숟가락을 들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나는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들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콘 치즈를 입에 넣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다닐만해.”


“친구는 많이 생겼고?”


“응. 점심시간마다 같이 놀아.”


나는 감자 스프를 입에 넣었다. 찐득한 스프의 따뜻하고 담백한 맛이 혀에 달라붙었다. 아빠가 샐러리를 마요네즈를 찍으면서 말했다.


“언젠가 한번 친구를 집에 초대하렴. 저녁 식사정도는 해줄 수 있어.”


“다음에 한 번 물어볼게.”


“엄마, 난 학교 언제 가?”


옆에서 포크로 별모양으로 썰린 당근을 푹 찍으며 미키가 말하자 엄마는 휴지로 미키 입에 묻은 스프를 닦으면서 답했다.


“넌 아직 다섯 살이니까 학교에 다니려면 멀었단다.”


“미키도 학교에 가고 싶어.”


“학교 재미없어.”


나는 그렇게 말한 후 베이컨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타기 직전까지 바짝 구워서 그런지 베이컨은 질기고 짰다. 베이컨을 찢기 위해 어금니를 열심히 양옆으로 굴리면서, 나는 오늘 학교에서 이사벨라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엄마, 엄마는 이 마을에 엄청 큰 화재가 있었다는 거 알고 있었어?”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몰랐는데.”


“아빠는?”


“나도 몰랐어. 왜?”


“그냥, 오늘 친구가 이야기해줬어.”


나는 대충 얼버무리면서 감자 스프를 입에 넣었다.


생각해보니 이상한 것투성이다. 어째서 우리 가족은 이런 외딴 곳에 이사 왔으며, 왜 하필이면 ‘저주 받은 집’이라고 불리는 괴상한 저택에 이사 온 것인가. 창밖에는 으스스한 공동묘지 밖에 보이지 않는 이 집에 굳이 이사 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나 부모님은 식사 끝까지 내게 그 답을 알려주지 않으셨다. 아마 그것이 부모님이 생각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때 들었어야 했는데.




*




구름 없이 맑은 토요일이었다.


오랜만에 온라인 게임에 접속해보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컴퓨터가 먹통이었다. 아무래도 이사할 때 떨어뜨렸던 게 원인인 모양이었다. 겨우 컴퓨터의 전원을 켰지만 게임을 하기에는 인터넷이 너무 느려 나는 온라인 게임을 포기하고 산책하기로 결심했다.


밖은 거짓말처럼 더웠다. 햇빛이 바로 살갗을 파고드는 것 같은 더위가 고통스러워 나는 동네 주변을 걸으면서 계손 손부채질을 해야 했다. 끊임없이 턱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땀을 소매로 닦다가 나는 공원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공원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은 굉장히 넓은 공동묘지나 다름없었다. ‘라임오렌지 공원’이라는 녹슨 표지판이 입구 위에서 삐걱거리는 걸 바라보다가 안에 발을 들이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사라!”


“어라, 케이시구나. 랄프와 벤도 같이 있네.”


“응, 버디 산책 시켜주고 있어.”


케이시와 랄프 사이에는 그녀의 무릎 높이까지 올라오는 크기의 하얀 개, 버디가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구부리고 버디에게 손을 내밀어보았다. 버디는 내 손을 킁킁 맡더니 꼬리를 마구 흔들며 왕왕 짖었다. 그 모습을 보며 케이시는 깔깔 웃었다.


“네가 좋은가봐, 사라.”


“다행이네.”


나는 버디를 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복슬복슬한 하얀 털의 감촉과 따뜻한 체온이 정말 기분이 좋았다. 잔디밭에 누워서 버디를 껴안고 같이 자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디도 기분이 좋은지 내게 기대며 볼을 비볐다. 버디가 케이시가 학교에서 표현한 것보다는 많이 작아서 다행이었다.


지켜보던 랄프가 낄낄 웃었다.


“그러다가 버디한테 물린다.”


“설마, 이렇게 착한 녀석이?”


“맞아, 버디가 사람을 물 리가 없어.”


케이시와 내가 동시에 반발하자 랄프는 ‘아, 알았어.......’라면서 몸을 움츠려들었다. 벤은 킥킥 웃더니 안경을 고쳐 쓰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유령한테는 버디도 사나운 짐승이니까.”


“유령?”


“그 이야기 몰라? 개들은 유령을 볼 수 있대. 그래서 유령을 보면 미친 듯이 짖나봐.”


나는 벤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유령 같은 건 믿지 않아.”


“글쎄,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케이시는 쿡쿡 웃으며 의미심장한 투로 말했다.


“가끔씩 이 녀석, 허공을 보면서 짖으니까.”




산책을 더 하니 뜻밖의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이사벨라, 안녕.”


나는 집 현관 앞의 계단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이사벨라에게 인사했다. 이사벨라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책을 옆에 덮어두고 내게 반갑다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안녕, 사라!”


이사벨라는 나를 가볍게 포옹한 후 히히 웃었다. 차가웠던 첫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이사벨라의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그런 자잘한 건 금방 잊었다. 이사벨라가 내게 물었다.


“내 방에 올래?”


“그래도 돼?”


“당연하지.”


나는 이사벨라를 따라 그녀의 집에 들어갔다. 현관에 들어가자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드는 풍경화가 걸려있었다. 그 앞에는 길쪽한 몸의 검은 고양이가 몸을 말고 자고 있었다.


“펠릭스는 낮잠 잘 때 건드리면 안 돼. 이쪽이야.”


복도를 따라 걷다가 이사벨라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이름패가 걸려있는 문 앞에 멈췄다. 나는 이사벨라 몰래 심호흡했다. 별 거 아닌데도 괜히 긴장해서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사벨라가 천천히 문을 열자 방 안이 서서히 드러났다.


이사벨라의 방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노란색 페인트로 칠한 벽 한쪽에 창문이 크게 뚫려있었는데, 밖으로 이사벨라네 집 마당이 잘 보였다. 침대는 크고 푹신푹신해 보였고, 그 옆의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교과서들, 그리고 다양한 책들이 꽂혀있었다. 창틀 위에는 아기자기한 도자기 인형들이 있었는데, 이사벨라는 이것들이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들이라고 말했다.


나와 이사벨라는 침대 위에 나란히 앉은 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사벨라 쪽을 힐끔 쳐다보니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몸을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무릎 위의 손가락도 끊임없이 꼼지락거렸다. 순간 이사벨라가 자기가 키운다는 그 귀엽고 검은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팟 하고 들었다.


내가 입을 열려는 순간, 이사벨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친구가 생겨서 너무 기뻐.”


이사벨라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친구들이랑 잘 못 어울리거든. 내가 너무 차갑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애는 내가 자기 반인지도 몰랐대, 너무 조용해서. 그래서 애들이 나보고 유령 같다고 해.”


그런 뜻이구나. 나는 이사벨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가 전학 왔을 때, 그리고 내 옆자리라고 했을 때, 나는 너무 떨리고 긴장해서 어쩔 줄 몰랐어. 새로운 친구가 생기는 건 좋아하지만, 그러다가 떠나는 게 아닐까 하고 불안해서....... 그래서 네가 처음에 말 걸어줘서 너무 고마웠어. 긴장한 걸 감추려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너무 딱딱하게 말한 것 같은데, 그 이후로도 계속 친구로 대해줘서 너무 고마워.”


“아니야, 그 정도로 고마워할 건 없어.”


예상치 못한 감사인사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내 손을 꼭 잡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 검은 눈동자, 깊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사벨라의 달콤한 목소리가 방 안의 향긋한 냄새와 섞여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놓았다.


“우린 친구지? 너는 날 떠나지 않을 거지? 평생 친구야, 약속이다?”


나는 마치 최면 걸린 사람처럼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을 잡은 이사벨라의 손은 너무나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 머리핀은 어디서 난 거야?”


어느 정도 분위기에 익숙해지자 우리 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이사벨라 한쪽 머리에 꽂혀있는 붉은 머리핀을 가리키며 물어보았다. 이사벨라는 머리핀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부모님이 사주셨어. 원래 두 개를 꽂는데 하나를 잃어버린 모양이야.”


“두 개 꽂으면 정말 예쁘겠는걸. 빨리 찾았으면 좋겠어.”


“너무 작아서 찾기 어려워. 개에게 냄새로 찾아달라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벤이 개가 유령을 본다는 이야기를 했어.”


나는 아까 전에 만났던 버디와 친구들을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이사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알아, 그 이야기.”


“그렇게 유명한 이야기야?”


“유령에 대한 이야기는 엄청 많아.”


이사벨라는 도자기 인형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특히 우리 마을은 공동묘지가 워낙 커서 그런지 우리 마을에 대한 유령 이야기도 있어.”


“예를 들면?”


“이 마을에 들어온 유령은 살아있는 자의 손을 잡지 않고는 절대 나올 수 없다던가. 아니면 저번에 말해줬던 ‘저주 받은 집’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마을 분위기가 묘한 건 역시 공동묘지 때문인가 보다.


“평범한 마을은 아니네.”


“정말 유령이 있을 지도 모르지.”


“난 유령 같은 건 믿지 않아.”


“그러는 게 좋을 거야.”


이사벨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유령은 믿음으로부터 생겨나니까.”


“그건 무슨 이야기야?”


“유령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믿으면, 유령이 정말로 생겨. 유령을 믿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유령도 더 많이 생기는 거야. 유령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면, 유령도 없겠지.”


“무서운 이야기야.”


내가 싫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부르르 떨자 이사벨라가 후후 웃었다.


“무서운 이야기지. 어쩌면 정말 무서운 건 유령이 아니라 사람의 믿음일지도.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믿음. 누군가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으면 좋겠다는 믿음.”


이사벨라의 도자기 인형에서 또각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 행복이 평생 갈 거라는 믿음.”




아빠가 한 이야기가 떠올라 이사벨라에게 내일 저녁 식사에 초대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에 거의 다와 갈 무렵 사나운 개 소리가 들리자 나는 불안한 예감이 들어 서둘러 우리 집을 향해 뛰어갔다. 집 앞에는 케이시와 버디, 그리고 미키가 있었다.


“미키!”


나는 얼른 남동생을 향해 달려갔다. 버디는 쾅쾅 사납게 짖으며 당장이라도 미키를 물어뜯을 것처럼 달려들려고 하고 있었고, 케이시는 그런 버디를 목줄로 잡아당기며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그리고 미키는 도망가면 개가 따라올 거라고 생각한 건지 어디 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나는 울고 있는 미키에게 달려가 꼭 껴안았다. 미키는 내 옷에 눈물 콧물 비비며 내 품 속에 파묻혀 엉엉 울었다. 케이시는 버디가 조금 얌전해진 틈을 타 얼른 들어 올리고 내게 사과했다.


“사라, 정말 미안해, 얘가 이럴 녀석이 아닌데.......”


“괜찮아, 나도 알아. 개가 가끔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나는 케이시에게 작별인사하고 미키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미키도 울음을 멈추고 훌쩍훌쩍 콧물을 들이켰다. 나는 미키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물었다.


“왜 집 밖으로 나왔어, 위험하게.”


“엄마랑, 아빠가, 나가서, 그래서, 심심해서.......”


“다음부터는 함부로 밖에 나오면 안 돼, 알겠지?”


“응.......”


나는 미키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였다. 엄마와 아빠는 아마도 오늘 저녁을 위해 장보러 갔을 것이다. 평소에는 내게 미키를 맡겼겠지만, 오늘 산책을 나간 탓에 이런 일이 벌어진 듯 했다. 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 행복이 평생 갈 거란 믿음.’


갑자기 이사벨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거대한 복선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사벨라가 나름 준 경고였던 건 아닐까.


이것이 결코 사나운 버디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경고.




*




다음 날 점심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확실히 “개가 유령을 본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누군가는 개가 유령을 보는 게 아니라 맡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또 다른 사람은 개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이 유령을 볼 수 있다고도 주장하고 있었다.


“유령 같은 게 어디 있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다음에는 라임오렌지 타운에 있었다는 커다란 화재에 대해 검색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역시나 외딴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그런지 화재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마을괴담일 뿐일까? 하지만 학교에서 친구들의 반응을 보면 단순한 괴담은 아닌 것 같았다.


얼마 안 가 컴퓨터가 또 다시 굳어버려서 나는 할 수 없이 오늘 저녁 식사를 준비를 돕기로 했다.




“감자 스프가 정말 맛있네요.”


이사벨라는 그렇게 말하며 스프를 한 숟갈 더 떴다. 스프를 만든 장본인인 아빠는 하하 웃었다.


“아직 냄비 가득 있으니까 더 먹고 싶으면 말하렴.”


“감사합니다.”


우리 저녁 식사에 초대된 이사벨라는 의외로 침착하고 평범하게 행동했다. 엄마의 당혹스러운 질문에도 이사벨라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엄마는 이사벨라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반면 나는 이사벨라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이상하게도 불편했다. 자꾸만 옆자리 이사벨라가 신경 쓰였다. 감자튀김을 먹고 있는 이사벨라를 힐끔 쳐다보자 이사벨라도 나를 쳐다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는 갑자기 눈이 마주친 게 당황스러워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내 식사에 집중했다.


식사가 마무리되어갈 쯤, 이사벨라는 거의 다 빈 접시 위에 조심스럽게 포크와 나이프를 올려놓고 휴지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사라네 가족은 정말 화목해보여요.”


이사벨라는 입을 닦은 휴지를 고이고이 접었다.


“정말 행복해보여요. 서로 의지할 사람이 있는 게.”


“이사벨라네 가족은 어때?”


내가 묻자 이사벨라는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이 둘 다 과묵한 성격이셔서 상담도 잘 못해.”


“고민할 게 있다면 내게라도 이야기하렴.”


엄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전에 사라가 꼬마였을 때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던 걸 울면서 고백한 적이 있거든. 그래서 내가 화끈하게 학교에 찾아가서 선생님께 따지고 그랬어. 아, 그때가 그리운걸.”


“엄마!”


나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소리 질렀다. 이사벨라는 쿡쿡 웃었다.


“앞으로도 서로 이렇게 감싸주겠죠.”


이사벨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죽은 뒤에도.......”


순간 즐거웠던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와 아빠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굳어버렸고, 나 역시 이사벨라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우리를 두고 이사벨라는 미소를 지으며 감사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떠났다.


“이사벨라!”


나는 이사벨라의 뒤를 쫓으려고 했지만 뒤늦게 따라가 연 현관문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니 엄마와 아빠는 말없이 자기 식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왜인지 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이상한 저녁식사 이후 나는 부모님과 더 이상 같이 있는 게 어색해 먼저 2층에 있는 내 방에 돌아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눈을 가만히 감고 생각에 빠졌다. 생각해보면 이 마을에 온 뒤로 온통 이상한 일뿐이었다. 화재 벨, ‘저주 받은 집,’ 버디, 유령, 그리고 이사벨라.


혹시 이 마을에는 정말 유령이 있는 게 아닐까?


이상한 냄새에 킁킁거리다가 코를 찡그린 나는 눈을 다시 번쩍 떴다. 탄 냄새인가? 부엌에 무슨 일이 난 건가 싶어 복도로 나왔지만 아무래도 1층에서 나는 냄새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2층의 다른 방에서도 타는 냄새가 날 이유는 없었다. 한참을 킁킁거리며 개처럼 냄새를 쫓던 나는 마침내 냄새가 어디서 나오고 있는지 발견했다. 나는 내 방에 돌아가 의자 위에 올라서서 천장을 향해 손을 뻗고, 그 냄새가 새어나오고 있는 틈을 손가락으로 만져보았다.


“다락방.......”


그러고 보니 이 집의 다락방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천장을 더듬거리다가 마침내 살짝 파여 있는 손잡이를 찾고 그것을 힘껏 잡아당겼다. 쿵, 무거운 울림과 함께 먼지가 폭탄처럼 터져 나왔다.


“우왓!”


의자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한 나는 콜록콜록 기침하면서 소매로 코와 입을 막고 입구를 향해 들여다보았다. 안에 타고 오르내릴 수 있는 사다리가 있어 나는 그것을 타고 다락방 안으로 살며시 들어가 보았다.


다락방 안은 상당히 어두웠고, 공기가 온통 탄 냄새와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벽을 손가락으로 스윽 만져보니 검댕이 비슷한 것이 손가락에 묻어나왔다. 혹시 이전에 이 집에 있었다는 화재와 관련이 있는 걸까? 나는 탁자처럼 보이는 곳에서 겉이 살짝 탄 그림일기를 발견했다. 안에는 네 명의 가족이 웃고 있는 표정으로 집 앞에 서있는 모습이 크레파스로 그려져 있었다.


“예전 이 집에 있었던 가족인가.......”


조금 더 둘러보다가 빛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는 조그마한 창문을 발견했다. 그것으로 밖을 바라보니 우리 집 앞의 공동묘지가 펼쳐져있었다. 비록 안개 때문에 멀리까지는 볼 수 없었지만.


창문에서 멀어지려고 발을 옮기는 순간, 나는 내 발밑에서 무언가가 밟히는 소리를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비록 어두워서 잘 볼 수 없었지만, 온통 새까만 바닥과는 대조적인 색의 조그마한 무언가가 다락방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들고 창밖의 빛에 비추어본 나는 순간 호흡이 헉 멎을 뻔했다.


그것은 빨간 머리핀이었다.




“찾았구나.”




익숙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다락방 입구 근처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실루엣은 이사벨라가 분명했다.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나를 향해 조용히 다가왔다. 그제야 나는 이사 첫날 내가 지붕 근처 창문에서 본 실루엣이 기억났다.


“너, 우리 집에 왜 있었던 거야......?”


나는 덜덜 떠는 목소리로 이사벨라에게 물어보았다.


“이 집에 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어.”


“너는 이 집......, 이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아?”


이사벨라는 내 바로 앞까지 다가오더니 허리를 굽히고 내게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속삭였다.


“이 집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자’들을 위한 곳이야.”


그리고 그녀는 내 바로 옆에 떨어진 머리핀을 줍고 자기 머리에 정성스럽게 꽂았다.


“어때, 예뻐?”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자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사벨라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공동묘지를 바라보면서 이사벨라는 천천히 대답했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헤매는 이들은, 어떠한 원리인지 모르지만, 반드시 이 집에서 모이게 돼. 그건 아마 그 화재 이후의 일이었던 것 같아. 분명 빈 집인데도, 가끔씩 누군가가 오는 소리가 들리거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사벨라는 농담이 아니라 진심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슬퍼 보였다.


“나는 이 마을이 좋아. 하지만 지금까지 이 집에 온 사람들은 전부 이 마을을 떠나고 싶어 했어.”


그리고 이사벨라는 나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이 집에 온 너희 가족들도 아마.......”


“무슨 말이야?”


“우리는 너무 슬펐어. 그 커다란 화재가 마을 전체를 뒤덮은 이후로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가 없었어. 이 마을에 새로운 친구가 들어와도, 다시 떠나가고. 그래서 우리는 좋은 방법을 떠올렸어. 마침 오늘 밤이구나.”


“무슨 말이냐니까?”


이사벨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쩔 수 없는 걸. 죽은 자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살아있는 자의 본능이고, 살아있는 자에게 몰려드는 게 죽은 자의 본능이야.”


그리고 이사벨라는 사다리를 타고 다락방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너희는......, 아직 살아있니?”


나는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만 있었다.




*




컴퓨터를 다시 켜고 인터넷을 열어보았다.


이사벨라가 중얼거리듯 내게 한 말은 어느새 내 머릿속에서 어떠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라임오렌지 타운에 이사 오기 전 토요일에 대한 인터넷 기사를 천천히 살펴보다가 마침내 한 기사를 발견했다.


“7월 22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커다란 교통사고 발생.......”


그것은 사상 최대의 교통사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큰 교통사고였다. 수많은 부상자와 사상자를 낳은 그 사건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뉴스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 사고를 ‘로스앤젤레스의 악몽’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엄마! 아빠!”


계단을 타고 1층으로 급하게 내려가 부모님이 계신 거실로 가려는 그때, 누군가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내가 가만히 서있자 상대방은 다시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저기, 혹시 안에 계신가요?”


나는 현관문을 향해 살금살금 걸어가 현관문에 난 렌즈에 눈을 가까이 가져갔다. 옆집에서 본 것 같은 건장한 체격의 아저씨가 문 앞에 서 있었고, 그 뒤에도 마을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아저씨는 크흠 헛기침을 한 후 다시 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가도 되나요?”


나는 까치발을 들고 거실로 뛰어가 부모님에게 달려갔다. 부모님은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 고민 중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난 속삭이는 목소리로 부모님을 불렀다.


“엄마, 아빠, 우리 지금 당장 나가야 해!”


“사라야, 갑자기 왜 그러니?”


엄마가 나를 향해 뒤돌아본 그때 현관문에서 제법 큰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노크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도 점점 가까워졌다. 부모님도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채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니?”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얼른 도망쳐야 돼!”


쾅쾅쾅, 문을 당장 부술 것 같은 기세로 두들기는 소리에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영문도 모른 채 겁에 질려 있는 미키를 들어올렸다. 부모님도 지금 지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소파에서 일어났다.


창밖을 보니 마을 사람들이 좀비처럼 우리 집을 향해 점점 몰려오고 있었다.


“아빠, 차는 어디에 있어?”


“저기 길 건너에 주차해뒀는데.”


“그걸 타고 얼른 빠져나가야 해.”


“하지만 어떻게 할 건데?”


“나한테 생각이 있어!”


나는 미키를 엄마에게 맡긴 후 부엌으로 달려갔다. 적당한 물건을 찾다가 나는 부엌 한쪽에 놓여있는 기다란 향초를 발견했고, 가스레인지로 향초에 불을 붙였다.


“아빠, 창고에 휘발유 있지?”


“너 설마 이 집에 불을 붙일 생각이니?”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그 방법 밖에 없어, 얼른!”


쾅쾅쾅, 현관문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정말로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올 생각인 모양이었다. 아빠는 입술을 꽈악 깨물더니 창고로 달려가 무거운 휘발유 통을 질질 끌고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거실과 부엌, 계단 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불쾌한 기름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쿵, 헐거워진 현관문 나사가 튀어나오면서 현관문이 앞으로 쓰러졌다. 동시에 마을 사람들이 집 안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부엌으로 도망쳤고, 미키는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킨 후, 향초를 들고 마을 사람들 앞으로 달려갔다.


“오지 마!”


내가 소리 지르자 마을 사람들이 전부 움찔하면서 동시에 나를 향해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놀라 향초를 떨어뜨릴 뻔했지만, 나는 주먹을 꽉 쥐고 향초를 마을 사람들을 향해 휘둘렀다. 마을 사람들은 눈앞에서 일렁이는 불꽃에 술렁이더니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나는 향초를 들이밀면서 마을사람들을 위협했다. 건장한 체격의 아저씨도 긴장한 표정을 짓고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을 쳐다보며 뒤로 걸어갔다. 마을 사람들을 겨우 집 밖으로 내몬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소리 질렀다.


“불이야!”


내 신호와 함께 아빠와 엄마는 집 밖으로 달려 나갔고 나도 향초를 복도에 던지면서 도망쳤다. 퍼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불이 순식간에 집 전체에 옮겨 붙으면서 집 주변에도 불똥이 마구 튀었다. 마을 사람들이 당황해 집에서 멀리 도망치려고 하는 틈을 타 우리 가족은 잽싸게 차에 올라탔다.


차 시동 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따라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빠는 이를 꽉 깨물며 액셀을 밟았지만, 길거리가 온통 마을 사람들이라 뚫고 지나가기 어려웠다. 차를 향해 팔을 뻗는 마을사람들을 피해 요란하게 핸들을 돌리던 중, 우리는 앞에서 덩치가 큰 누군가가 차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랄프!”


랄프는 차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아빠도 지지 않고 액셀을 더욱 세게 밟았다. 그러나 랄프는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던 랄프는 괴성을 지르며 차를 향해 몸을 던졌고 차 앞 유리에 파지직 금이 커다랗게 났다.


그리고 랄프의 몸이 투명한 빛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이게 무슨......!”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엄마와 아빠는 별로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둘은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빠는 ‘정상적인 길로는 못 나가겠어’라고 중얼거리고는 핸들을 90도로 꺾었다. 끼익, 차가 오른쪽으로 회전하더니, 공동묘지 울타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쾅, 울타리가 휘어지면서 차는 공동묘지로 날아갔고, 우리는 울퉁불퉁한 공원 위로 착륙했다.


점점 멀어지는 마을사람들을 보면서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중얼거렸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괜찮단다.......”


묘 때문인지 차가 심하게 덜컹거렸기 때문에 아빠는 핸들을 계속 이리저리 돌려야 했다. 백미러로 계속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아빠가 내게 말했다.


“사라야, 사실 이 동네는 평범한 동네가 아니란다. 5년 전에 사라진 동네야.”


“5년 전에 사라졌다고?”


“그래, 5년 전에 커다란 화재가 생기면서 마을 전체가 불로 사그리 다 타버렸어.”


“알고 있었던 거야?”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라야, 우리는 여기에 올 수 밖에 없었단다, 왜냐하면.......”


쿵, 차 뒤쪽이 무언가와 부딪히면서 크게 흔들렸다. 뒤를 보니 사나운 개가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향해 뒤따라오고 있었다.


“버디잖아!”


버디는 우리를 향해 사납게 짖으며 우리를 따라잡더니 뒤쪽 타이어를 물어뜯었다. 그 반동으로 버디는 뒤로 튕겨져 나갔지만, 더 이상 한쪽 타이어를 쓸 수 없게 되었다. 차는 얼마 못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급기야 묘비에 정면으로 부딪히더니 더 이상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여전히 사나운 개 소리는 우리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얼른 차에서 나가!”


우리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얼른 나왔다. 지독한 썩은 내가 공원 사방에서 풍겨오고 있어 나는 코를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먼저 안개를 뚫고 달리기 시작했고, 엄마도 미키를 품에 안은 채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아빠를 달라 달렸다. 엄마에게 이끌리며 온힘을 다해 달리던 나는 엄마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키를 들고 뛰어오던 엄마는 지쳐서 헉헉거리더니 달리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걸 놓칠 버디가 아니었다.


“안 돼!”


나는 몸을 던져 입을 커다랗게 열고 엄마에게 날아오는 버디를 팔로 막았다. 버디의 뾰족한 송곳니가 팔에 깊숙이 박혀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이를 꽉 물고 발로 계속 버디를 찼다. 그러나 버디의 힘이 너무 세서 이대로는 팔 전체가 뜯겨나갈 것만 같았다. 나는 목에서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억누르고 엄마에게 필사적으로 소리 질렀다.


“엄마, 도망 가!”


하지만 엄마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내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뭐하는 거야, 엄마 얼른 도망가라니까!”


“널 놓고 갈 수는 없어!”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든 나를 끌고 가기 위해 팔을 힘껏 잡아당겼다.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버디가 문 팔은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정육점의 고깃덩어리처럼 되어버렸다.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엄마에게 소리 질렀다.


“엄마, 날 두고 가! 난 어차피 엄마와 함께 갈 수 없어.”


“아니야, 사라, 넌 나와 함께 갈 거야.”


나는 그러지 말아달라는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았지만 엄마는 진심이었다. 미키는 엄마 품 안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두고 가지 않아......,’ 엄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필사적으로 내 팔을 잡아당겼다.


“레이첼! 미키! 사라!”


안개 사이로 아빠가 우리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안 돼, 아빠까지 오면 안 돼!”


나는 아빠를 향해 소리쳤지만 아빠는 멈추지 않고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마을 사람들이 제법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가족 전체가 저 유령들에게 잡히고 만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엄마, 알고 있어.”


“반드시 두고 가지 않아.......”


“알고 있다고!”


내가 소리 지르자 엄마는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엄마에게 미소를 지었다.


“엄마, 난 알고 있어.......”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돌아온 기억을 다시 지울 수는 없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악몽. 교통사고. 모든 것이 기억났는데 지금 와서 모른 척 할 수도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목을 겨우 쥐어짜내며 말을 내뱉었다.


“알고 있어, 내가 이미......,”




“죽었다는 걸.”




*




7월 22일 토요일 오후,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외식하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오랜만의 외식에 미키는 신나서 노래를 불렀고 엄마와 아빠는 하하 웃으면서 미키를 칭찬했다. 나는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미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런 평범한 오후였다.


거대한 트럭이 엄청난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 전까지는.




*




모든 것이 그것을 향하고 있었다.


전학 첫 날 선생님의 불쌍하다는 눈빛도, 밤에 우연히 들었던 부모님의 의미심장한 대화도, 미키에게는 짖던 버디가 내게는 친절했던 것도, 이사벨라의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도, 전부 7월 22일 오후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령은 사람의 믿음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했던가. 로스앤젤레스의 사고에서 자기 딸이 남동생을 감싸고 트럭에 정면으로 부딪혀 죽었다는 걸 부모님은 믿지 못했다. 엄마도, 아빠도, 심지어 미키도 살아남았는데 딸 혼자 저세상으로 갔다는 것을 부모님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미키는 죽음이 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우리 가족의 믿음이, 나라는 유령을 만들었다. 그리고 유령이 된 딸과 함께 정처 없이 차를 몰던 우리 가족은 어느새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자’들을 위한 집에 도착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라임오렌지 타운에 이사 온 이유. 그것도 저 괴상망측한 집에 이사 온 이유.


엄마가 내 손을 놓지 않으려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놓을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마을에 들어온 유령은 살아있는 자의 손을 잡아야 나갈 수 있고, 엄마는 마을을 나가더라도 나와 함께 나가고 싶었을 테니까.


하지만, 아마 우리가 이 마을에서 무사히 나간다고 해도, 우리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살아있는 자는 죽은 자로부터 떨어져야 한다. 그것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이다. 그것을 어기고 유령이 된 딸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다시 이 마을에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에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를 놓아줘.”


엄마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딸의 마지막 미소를 보며, 어머니는 마침내 내 손을 놓고 아버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가족을 보며 나는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휴,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러나 버디의 생각은 달라보였다.


버디는 내 팔을 놓고 엄마와 아빠를 향해 달려가려고 했다. 나는 버디의 몸통을 잡고 막으려고 했지만, 부상당한 팔로는 버디의 괴력을 버틸 수가 없었다. 어쩔 줄 몰라 두리번거리던 나는 묘비 뒤에서 가만히 나를 지켜보는 이사벨라를 발견했다.


“이사벨라!”


이사벨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이사벨라, 제발 도와줘! 우린, 우리는 친구잖아!”


그제야 이사벨라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제발......!’ 팔에 힘이 빠져 버디의 몸통이 스르륵 미끄러져 나갔지만 나는 가까스로 버디의 다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제발......!’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나는 괴성을 지르며 온힘을 다해 버디의 다리를 붙잡았다.


이사벨라는 차가운 눈으로 그런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이사벨라!”


“착하지, 우리 버디.”


이사벨라는 버디에게 속삭이며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버디도 방금 전 사나운 맹수의 모습이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온순한 개로 돌변해 이사벨라에게 볼을 비비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나는 버디 다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너덜너덜한 팔을 부여잡고 겨우 두 다리를 일으켜 세워보니, 이미 엄마와 아빠는 안개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휘청 몸이 크게 흔들리더니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 다행이야. 다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나는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축하해.”


이사벨라가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사벨라는 활짝 웃었다.


“사라, 라임오렌지 타운에 온 것을 축하해.”


“......뭐?”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마을 사람들이 내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축하한다는 목소리. 환영한다는 목소리. 어서 오라는 목소리.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케이시가 나와 깔깔 웃었다.


“처음부터 너희 가족은 노리지 않았어.”


분명 차와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던 랄프도 옆에 있었다.


“노린 건 바로 너지, 사라.”


랄프 옆에서 벤은 안경을 고쳐 쓰며 씨익 웃었다.


“네가 가족의 손을 잡고 마을에서 나가면 안 되니까.”


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면서 뒷걸음질 치다가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이들이 찾고 있었던 건 새로운 친구. 새로운 유령 친구.......


“......사라.”


달콤한 목소리와 함께 등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사벨라는 등 뒤에서 나를 곰인형처럼 꼬옥 껴안았다. 이사벨라의 심장박동, 호흡, 체온, 전부 느낄 수가 있었다. 이사벨라는 내 볼에 자기 볼을 비비면서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드디어 우린 영원한 친구인 거야,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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