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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코스튬을 입고 있는 건 누구?

천가을(千秋) 2018.03.22 13:12

“클레어 아저씨,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열자 아기자기한 코스튬을 입은 꼬마 다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그러다가 나는 집 현관문에 걸린 명패를 기억했다.


꼬마들은 현관문이 열리자 사탕 담는 봉지를 내게 내밀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에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난 할로윈이 너무나 좋다.


허름한 옷을 입고 좀비 분장을 한 꼬마가 입을 이상하게 비틀며 좀비 목소리를 흉내 냈다.


“으어어....... 아저씨....... 사탕 주세요....... 아주 많이.......”


“우리는 지금 사탕이 엄청 많이 필요하거든요.”


마법사 모자를 쓴 남학생이 옆에서 거들었다.


나는 하하 웃으며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우리 집에 잠시 있다가 가지 않을래? 사탕이 엄청 많거든.”


“어, 엄마가 이상한 집에 함부로 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털북숭이 늑대인간 코스튬을 입은 여학생은 다른 꼬마들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더듬었다.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괜찮아, 들어오렴.”


“어떻게 믿어요?”


검은 망토를 두르고 그렇게 말한 여학생은 송곳니가 있는 걸 보아 아마 흡혈귀를 흉내 낸 모양이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꼬마들에게 손짓을 하면서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나는 꼬마들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여기에 인간이 아닌 녀석들이 숨어있었구나.”

잠깐이었지만 나는 꼬마들 사이에 섞어있던 당황한 눈빛을 포착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꼬마들에게 나는 자리를 비켜주며 씨익 웃었다.


“자, 추운데 안으로 들어오렴.”






거실의 소파는 다행히 꼬마 여섯 명이 앉을 만큼 컸다.


벽난로 안에서는 장작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불이 붙었다. 다행히 부엌에는 핫초코 가루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마시멜로 올린 핫초코 여섯 잔을 쟁반 위에 들고 와 거실 가운데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자, 한 잔씩 마시렴.”


늑대인간과 마법사는 핫 초코를 한 잔씩 가져갔다.


“저는 이것 때문에 못 먹어요.”


유령 코스튬을 입고 있던 꼬마는 온몸을 덮고 있는 커다랗고 하얀 천을 펄럭이며 말했다. 천에 뚫린 구멍이라고는 조그마한 눈구멍뿐이었다. 좀비는 으어어 소리를 내며 핫초코를 바라보고 킁킁 냄새를 맡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좀비는....... 핫 초코를....... 안 먹어.......”


“하하, 핫 초코 마시면 장기가 다 녹아버릴 정도로 부패한 좀비인가 보구나.”


나는 하하 웃은 뒤 흡혈귀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어때? 흡혈귀도 핫 초코 안 먹던가?”


흡혈귀는 입술을 꾹 깨물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핫 초코 한 잔 가져갔다.


“제, 제가 원래 뜨거운 거 못 마셔서.”


“그래, 천천히 식혀서 마시렴.”


그렇게 말한 뒤 나는 한 손에 기다란 가방을 들고 거실에 의자를 하나 끌고 와 앉았다.


꼬마들이 홀짝홀짝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싱글싱글 웃었다. 그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마법사는 마침내 살짝 곤두 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저씨, 그래서 뭐 하려고요?”


“마, 맞아요, 얼른 사탕 모아야 하는데.”


“나한테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어.”


나는 꼬마들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 눈에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들이 다르게 보여, 그러니까 한마디로 유령을 볼 수 있다는 거야. 아, 하지만 단지 유령뿐만이 아니야. 늑대인간, 좀비, 흡혈귀......, 물론 마법사도 엄연히 말하면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지. 그들은 오랫동안 인간 흉내를 내며 우리 사이에 숨어 지냈어. 하지만 딱 한 번, 그들이 당당히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날이 있지.”


“할로윈을 말하는 거군요.”


흡혈귀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잖아요, 여기에 그런 인간이 아닌 것들이 숨어 지내고 있다.......”


“그리고 이 자리에도 있구나.”


나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가져온 가방을 주섬주섬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내가 말했다.


“어때, 핫 초코는 먹을 만하니? 흡혈귀 입맛은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괜찮아요, 흡혈귀 아니니까.”


“난 거짓말하는 꼬맹이가 싫어.”


철커덕, 철컥.


가방 안에서 총을 마저 조립한 나는 우선 주머니에서 귀마개를 꺼내 귀에서 끼웠다. 그리고 총을 꺼낸 뒤 흡혈귀의 이마에 신중하게 조준했다.


“조금 아플 거야.”


곧이어 커다란 총성이 집안을 뒤흔들었다.


이마에 커다랗게 구멍이 난 흡혈귀는 입에서 풍선 빠지는 소리를 토해내며 불 앞의 화이트 초콜릿처럼 녹아내렸다. 소파 위에 끈적끈적하게 남은 하얀 덩어리가 바닥 위에 뚝뚝 떨어졌다. 온몸이 굳은 채 가만히 바라보던 나머지 넷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장전하면서 말했다.


“움직이면 괜히 더 아프니까 가만히 있어.”


다음으로 노린 것은 늑대인간이었다.


총구가 자신으로 향하자 늑대인간은 겁먹은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그녀의 털이 빳빳하게 곤두선 게 조준경으로 어렴풋이 보였다. 늑대인간은 한번 돌변하면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기 때문에 나는 신속하게 늑대인간의 이마에 은 탄환을 때려 박았다.


마법사는 와악 비명 지르더니 거의 넘어지다시피 거실에서 도망쳐 나왔다.


“꼬마야, 어차피 문이랑 창문은 다 잠가놨으니까 소용없다고.”


“도대체 저희들에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인간이 아닌 것들은 죽여도 합법이니까.”


다시 은 탄환을 장전하고 조준경에 눈을 대니 꼬마들이 그새 소파 위에서 사라져있었다. 장전하는 동안 꼬마들이 뿔뿔이 흩어진 모양이었다. 에고고 이를 어째, 하지만 이것도 약간 사냥 느낌이 나니 재미있을 지도.


나는 낄낄 웃으면서 저벅저벅 한발씩 내딛었다.


“어차피 너희들은 이 집에서 못 나와.”


복도를 걷다보니 너덜너덜한 하얀 천이 바닥 위에 떨어져있는 것이 보였다. 들어보니 작은 눈구멍이 뚫려있는 게 아까 그 유령이 뒤집어쓰고 있던 그 천인 듯했다. 그러면 지금은 투명한 채로 집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가?


그때 나는 현관문 쪽에서 작게 철컥거리는 소리를 포착했다.


“아까 그 마법사 꼬마군.”


여전히 나가려고 발악하는구나. 어차피 소용없다니까.


현관까지 다다르자 마법사 꼬마는 나를 보고 히익 소리를 지르며 문고리를 잡은 손을 더욱 세게 흔들었다. 그러나 미리 손을 쓴 문은 덜컹거리기만 할 뿐 열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내가 한걸음씩 가까울 때마다 꼬마의 이마에 땀이 하나씩 송골송골 맺히는 게 보였다.


“다, 다가오지 마세요!”


꼬마는 그렇게 말한 뒤 내게 사탕 바구니를 내밀었다.


“이걸로 아저씨를 다치게 할 수도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들며 총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래 알아, 너희 꼬마 마법사들은 사탕 폭탄 마법을 쓰더라. 그거 꽤 아파.”


“어, 어떻게 아는 거예요?”


“말했잖아, 난 너 같은 꼬마 애들을 많이 만나봤어....... 정확히 말하면 1년에 한 번씩인데.”


그렇게 말한 뒤 나는 마법사 꼬마에게 돌진해 목덜미를 덥석 붙잡았다.


“우왓?”


꼬마가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나는 그가 들고 있는 바구니 속의 사탕을 통째로 그의 목구멍에 탈탈 털어 넣었다. 욱욱, 마법사는 사탕을 억지로 뱉어내려고 했지만 나는 그의 입에 팔을 집어넣고 그의 목구멍 속으로 사탕을 꾹꾹 눌러 담았다.


마침내 마법사의 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자 나는 꼬마를 힘껏 부엌을 향해 던졌다. 배가 빵빵해진 마법사 꼬마는 식탁 위에 부딪히자마자 빠앙 하고 터졌다. 사방에 알록달록한 사탕과 핏빛 살덩어리를 튀기며 터진 마법사를 보며 나는 다시 총을 집어 들었다.


“그러니까 어린 애가 폭탄 갖고 장난치면 안 되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남은 건 유령과 좀비인가.


나는 휘파람을 불며 부엌으로 걸어갔다. 부엌은 온통 끈적거리는 시뻘건 피로 도배되어 있었으며, 그 위에 토핑처럼 할로윈 사탕과 검붉은 덩어리들이 박혀있었다.


“이거 치우려면 또 하루 종일 걸리겠는걸.”


질퍽거리는 발바닥 아래에 살점들이 달라붙는 게 기분이 나빴지만, 지금은 어쨌든 꼬마 애들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부엌을 한 바퀴 빙 둘러본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또 다시 씨익 웃었다.


나는 식탁 위에 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얘들아 혹시 사과 사탕이란 거 먹어봤어?”


그리고 나느 부엌 구석에 세워져있는 나무 빗자루를 무릎으로 꺾었다.


“아마 본 적 있을 거야, 막대기 달린 사과를 설탕물을 코팅해서 먹는 괴상한 간식인데....... 나, 그거 너무 싫어하거든.”


내 앞에는 피를 뒤집어 쓴 무언가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낄낄 웃으며 그것을 빗자루로 쿡쿡 찔렀다.


“이걸 내가 왜 말하고 있냐면, 등 돌린 채로 피를 뒤집어쓴 네 모습이 마치 반질반질한 사과 사탕처럼 보여서 말이야...... 딱 한 가지 빼고.”


그렇게 말하며 나는 새빨갛게 물든 꼬마의 등 위에 빗자루를 푹, 꽂았다.


“막대기를, 이렇게, 제대로, 팍 꽂아야......!”


의외로 빗자루가 뻑뻑하게 들어가 나는 이를 악 물며 빗자루를 힘껏 밀어 넣었다. 빗자루에 힘을 줄 때마다 꼬마는 전기충격을 준 개구리 뒷다리처럼 펄떡거리다가 곧 힘없이 축 늘여졌다. 움직임이 멈춘 시뻘건 덩어리를 돌려보자 입 벌린 채 고통을 호소하는 듯한 표정이 살짝 불투명하게 보였다.


나는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운이 좋았어, 마법사 덕분에 투명한 놈까지 잡았으니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기지개를 쭈욱 켰다. 수분이 날아가기 시작한 피부가 부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하루 종일 코스튬을 입고 있으니 불편하단 말이지.”


그리고 나는 뒤집어쓰고 있던 클레어란 녀석의 가죽을 찢어 벗겼다.


눈구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얼굴부터 천천히 반으로 찢었다. 아직 끈적한 가죽 안쪽이 피부에서 떼어질 때마다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가슴부터는 두 손으로 힘껏 아래로 찢어 내렸다. 생각보다 질겨서 잘 안 찢어졌지만, 몸을 이리저리 배배 꼬면서 나는 여차여차 징그러운 가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직 온몸에 끈적거리는 내피의 감촉이 남아있었지만, 오랜만에 상쾌한 공기와 만난 피부는 자유를 외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엉망진창으로 찢어버린 토마스 클레어의 가죽을 바닥 위에 툭 던졌다.


그때 식탁 아래에서 조그맣게 ‘히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구나?”


식탁보를 들추고 아래를 바라보니 피를 뒤집어쓴 좀비가 겁에 질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좀비는 양쪽으로 찢어진 토마스 클레어의 텅 빈 얼굴을 바라보다가 내 얼굴을 보고 흐윽 신음소리를 냈다.


좀비 꼬마는 울먹이면서 내게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세요, 저는 사실 좀비가 아니에요, 이 녀석들이 괴물들인지 전혀 몰랐다고요, 그냥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났을 뿐이에요, 믿어주세요.”


“나도 알아, 꼬마야.”


나는 씨익 웃으며 총구를 좀비 꼬마의 이마에 가져다댔다.


“거기서 괴물 흉내 내려고 한 건 너밖에 없었으니까.”


“그, 그러면!”


“하지만 이대로 널 살려주기는 좀 그러니까.”


“아, 아무한테도 안 말할게요, 그러니까.......”


나는 하하하 웃고 방아쇠를 힘껏 잡아당겼다.






어쩌다 보니 사람 한 명도 죽여 버렸지만, 어차피 다른 코스튬 구하면 경찰로부터는 쉽게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닥에 흩어져있는 사탕 하나를 주웠다. 살짝 말라붙은 피가 같이 떼어졌다. 나는 그것을 입안에 쏙 넣었다.


달달하면서도 비릿한 맛이 혀 위에서 굴러다녔다.


나는 낄낄 웃으며 소파 위에 앉았다. 흡혈귀였던 것이 엉덩이에 깔리자 질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느낌이 재미있어서 나는 몇 번 더 일어났다 앉았다.


아아, 역시 난 할로윈이 너무나도 좋다.


나는 허공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 외쳤다.


“트릭 오어 트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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