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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투명인간

천가을(千秋) 2018.03.22 13:14

뭔가 이상하다.


잘 모르겠지만 내 책상 위의 물건 위치가 왠지 모르게 바뀐 느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언가 하나가 사라진 느낌이다. 누군가가 내 책상에서 그걸 가져간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라진 게 무엇인지 기억이 안 나 나는 일단 어질러진 책상을 치워보기로 했다.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니?”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다 말고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가 살짝 눈을 흘겼다. 또 시작이다. 지방에 있는 기숙사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집에는 격주 주말마다 오는데, 그때마다 부모님은 내가 격주동안 무엇을 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으려고 했다. 외동이라 그런지 다른 부모님보다도 우리 어머니의 집착은 특히나 심각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 잘 키우려는 마음인 건 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너무 귀찮고 짜증난다.


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그럭저럭.”


“룸메이트와도 잘 지내고 있지?”


그 질문에 나는 다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건 특히나 물어보지 않았으면 했던 질문이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응, 잘 지내고 있어.”


“친하게 지내. 1년 동안 같은 방 써야 하잖아. 계속 얼굴 마주보고 지내야 하는 사이인데, 서로 불편한 일 없어야지.”


“나도 알아.”


나는 귀찮다는 투로 말하며 밥을 입 안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룸메이트와 크게 다툰 이후로 서로 말도 안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도대체 룸메이트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언제까지 그럴 건지, 얼른 사과하지 않을 건지 계속 쪼아댈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잘 먹었습니다.”


나는 식사를 얼른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으로 돌아가던 중에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그것은 굳게 닫혀있는 문이었다. 내 방 바로 옆에 위치한 방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저 방만큼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지금도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역겨운 기분이 마구 들어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얼른 내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돌아와 책상을 바라보니 이번에도 물건 위치가 묘하게 바뀌어있었다.


그제야 나는 방금 전에 책상에서 사라졌던 것이 지우개였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돌아온 지우개를 집어 들며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눈앞의 사람을 간단히 지워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숙사 방에 도착하자마자 그런 생각을 했다. 룸메이트는 내가 들어와도 아는 체하지 않고 마우스를 부술 듯이 클릭하며 열심히 게임하고 있었다. 매정하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 역시 별 다른 인사를 꺼내지 않고 방 안에 들어왔다.


나와 룸메이트가 다툰 건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서로에게 천천히 쌓이던 불만이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터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나는 매일 게임하면서 보이스 채팅으로 떠들고 키보드 두들기는 룸메이트가 시끄러웠다. 룸메이트는 밤새는 게 일상인 내가 새벽까지 켜놓고 있는 스탠드 불빛이 불편했다. 피차 잘못한 것이고 서로 양보하면 싸울 일도 없었지만, 괜한 자존심을 서로 높이다가 결국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렇게 살벌한 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학기 초에는 신입생 이벤트도 같이 가고 교재도 빌려줄 정도로 친했는데, 어쩌다보니 이 지경이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그때처럼 돌아가는 건 무리겠지. 그러니까 차라리 룸메이트 따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하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자마자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MP3의 볼륨을 최대로 높였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비친 룸메이트의 모습이 신경 쓰였지만 나는 일부러 시선을 피하면서 룸메이트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 마치 룸메이트가 투명인간인 것처럼.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그냥 서로 화해하는 게 편하지 않을까?”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카페테리아 안은 시끌벅적해서 바로 앞의 친구 목소리도 귀를 쫑긋 기울여 들어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입술을 내밀고 투덜거렸다.


“그게 말처럼 간단히 되면 이렇게 고민상담 하지도 않았겠지.”


“그러니까 그게 이해가 안 간다는 거야.......”


그녀는 한숨을 하아 내쉬면서 이마를 짚었다.


“왜 그렇게 애처럼 구는 건데. 화해한다고 지는 게 아니야. 게다가 방 바꾸려면 아직 몇 달이나 남았잖아. 그렇게 서로 자존심만 세우고 있으면 너희들만 피곤해진다고.”


“너 정말 우리 엄마처럼 말하네.”


“그야 이게 정론이니까. 엄마 말 좀 들어.”


내가 질색이란 표정을 짓자 친구는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흥 콧방귀를 뀌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러니까 그게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글러먹은 성격이라, 화해할 바에는 평생 대화 안 하고 사는 게 차라리 더 편한 사람. 그게 바로 나라는 거야.


‘넌 동생이 있으니까 그런 거에 익숙하겠지,’라고 말하려다가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차피 누구에게 말해본들 더 이상 소용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치를 오물오물 먹으면서 말했다.


“네가 이해를 못하는 것일 뿐이야.”


그러는 사이에도 나는 머릿속에서는 룸메이트를 완전히 지우기 위한 작업이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었다.






룸메이트를 무시하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첫 번째, 나와 룸메이트는 의외로 얼굴을 접하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같은 방을 쓸 뿐만 아니라 같은 반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같은 반이기에 같은 방을 쓰게 된 것이지만.) 게다가 1학년 때는 과학탐구 과목과 사회탐구 과목을 제외한 수업은 전부 같은 반 학생들끼리 듣기 때문에, 하루 일과 중 룸메이트와 마주봐야 하는 시간의 비중이 생각보다 엄청났다. 따라서 단지 방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그러나 다른 사람이 봐도 자연스럽게 룸메이트를 무시할 필요가 있었다.


두 번째, 방을 같이 쓰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서로의 사적인 공간에 필연적으로 침투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룸메이트가 느닷없이 방 불을 끈다면? 룸메이트를 완전히 무시하기 위해서는 그런 상황이 닥쳐와도 아무렇지도 않게 스탠드를 켤 수 있어야 한다. 화장실에서 서로 마주치게 되도, 방을 들어오려는 순간 룸메이트가 나오려고 할 때도, 당황하지 않아야 한다. 정말 말 그대로, 보여도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취급이다.


세 번째는 룸메이트가 자주 가는 장소만 안 가도 서로 부딪힐 일은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룸메이트의 침대나 책상, 옷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곳에 룸메이트를 마주치거나 룸메이트와 동선이 겹쳐버리는 일을 줄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생활한지 일주일이 지나자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슬슬 반사적으로 룸메이트를 무시할 수 있게 됐다. 이어폰 끼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느새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룸메이트가 책상 앞에서 열심히 게임하고 있었다던가, 친구에게서 룸메이트의 이름을 듣고서도 무의식적으로 지나치거나 그게 누구였더라 잠시 고민하게 된다던가.


친구는 그럴 때마다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저기, 우리 화해하자.”


에세이를 쓰고 있는 내 옆에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순간 기억나지 않아 나는 잠시 룸메이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러 정황을 조합했을 때 이 사람이 룸메이트라는 걸 깨달은 나는 관심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룸메이트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계속 이러고 있는 거 불편하지 않아? 나도 내가 잘못한 거 알고 있어. 하지만 이 정도로 불편해질 일은 아니잖아. 내가 잘못했다는 거 인정할 테니까, 우리 다시 친하게 지내자.”


“잘 모르겠는데.”


나는 룸메이트는 쳐다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도 잘못한 게 없어. 그것보다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엇갈린 것뿐이야. 어차피 우리가 저번에 싸우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터졌을 거야. 그런 우리가 같은 방에서 살고 있는 게 문제니까, 최소한 서로 무시하고 사는 게 최선인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룸메이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상한 이야기잖아. 넌 나를 완전히 무시해버릴 생각이야?”


“응.”


“더 이상 이러기 힘들고 괴로워서 화해를 구하러 온 룸메이트를, 넌 그냥 완전히 무시하겠다고?”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룸메이트를 바라보았다.


룸메이트는 왠지 모르게 두렵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나는 다시 고개를 홱 돌렸다. 룸메이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잠시 뒤 나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할 말 없으면 가. 나 에세이 써야 하니까.”


그 뒤로 나와 룸메이트는 더 이상 대화하거나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다음 날, 학교 어디에 가도 룸메이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시작한지 10일 째, 마침내 룸메이트 투명인간 작전이 성공했다.


나는 텅 빈 방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어느새 다시 귀가할 시간이 돌아왔다.


저녁 먹고 있던 나와 카페테리아에서 마주친 친구는 내 앞자리에 식판을 내려놓으며 말을 걸었다.


“아직도 룸메이트 무시 중?”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친구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있으면 힘들지 않아?”


“괜찮아, 점점 익숙해지는 중이야.”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친구는 기겁했다.


“넌 언제까지 그렇게 피하기만 할 거야?”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걸. 차라리 이게 편하단 말이야.”


내가 투덜거리며 대답하자 친구는 하아 한숨을 쉬었다.


“언젠가는 피할 수 없는 날이 오고말 거야. 네가 마주치기 꺼려하는 사람들을 전부 없는 사람 취급하게 된다면 분명 그 빈자리를 의식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맞는 말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짜증났다.


나는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도대체 뭘 안다고 그러는 거야?”


“보고 있는 내가 괴로워서 그래!”


친구도 언성을 높였다.


“제발 현실을 직시해줬으면 좋겠어!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도 친구와 화해를 했으면 좋겠다고! 그런 식으로, 그렇게라도 해야 매듭을 지을 수 있으니까.......”


나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왜 네가 울고 있는 거야?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동시에 화가 났다. 자기 일도 아니면서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나서는 게 너무 싫었다. 마치 거슬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어머니처럼, 친구는 마치 내 마음속이 훤히 보인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결국 다 먹지도 못한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난 뒤에는 조금 후회됐지만, 그렇다고 다시 앉기도 민망해 나는 도망치듯 나와 성큼성큼 걸어갔다.


힐끔 뒤돌아보았을 때 친구는 거기에 앉아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니?”


어머니가 입을 열자 나는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지난 귀가 이후 2주가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어김없이 연이은 학원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을 먹던 중, 어머니가 내게 물어본 것이다. 나는 다시 고개를 내리고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그럭저럭.”


“그러고 보니 네 룸메이트 전학 갔다면서. 왜 엄마한테 이야기 안 해줬니?”


나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3일 전에 전학 갔다고 수정이 엄마가 말해줬어.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싸우기라도 한 거니? 엄마한테 왜 숨기려고 한 거야?”


“아니야, 그런 거.”


당황한 표정을 애써 감추면서 나는 묵묵히 밥을 먹었다.


“나도 왜 전학 갔는지는 잘 몰라. 게임 때문에 성적이 잘 안 나왔나 봐.”


“나중에 룸메이트한테 한 번 연락해보던가. 둘이 친했잖아, 그치?”


“응.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밥을 꾸역꾸역 입안에 집어넣었다. 결국 그건 룸메이트 투명인간 작전이 성공한 게 아니었던 건가. 룸메이트가 전학 간 것을 내가 멋대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래, 어쩐지 룸메이트 책상과 침대가 전부 비어있더라. 이제야 그런 것들이 기억이 났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쯤 엄마가 내게 말했다.


“네 동생에게는 돌아왔다고 인사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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