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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우울한 바텐더

천가을(千秋) 2018.03.22 13:15

새벽 2시, 아직 잠 못 드는 도시가 담배와 알코올 냄새에 취하는 시간.


깊은 밤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이 높다랗게 솟은 길쭉길쭉한 유리건물들, 그 사이의 좁은 골목을 걷다보면 어느새 당신을 반기는 수십 개의 네온사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련되어 보이는 겉모습 속에 감춘 도시의 또 다른 모습이다. 길거리엔 담배꽁초와 구토 찌꺼기가 이상한 냄새를 풍기고, 건물과 간판은 어린 아이의 이처럼 고르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늦은 시각만 되면 사람들은 좀비처럼 도시의 가장 깊은 곳으로 점점 모이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그곳이 있었다.


골목길에 즐비한 술집들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당신은 그곳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네온사인의 전원은 꺼져있었지만, 지하로 향하는 조그마한 콘크리트 문은 입을 쩍 벌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날름날름 삼켰다.


저곳이 바로 그 사람이 일하는 곳이다.


‘우울한 바텐더’라고 불리는 숏컷의 바텐더. 그 왼쪽 귀에는 눈물 모양의 작은 귀걸이가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반짝였고, 그 아래에는 하얀 붕대로 둘둘 감싼 가느다란 손목이 긴 소매 아래에 살짝 드러나 있었다. 손님은 언제나 같은 것을 주문했다. 애초에 이곳에는 메뉴가 하나밖에 없었기에, 바텐더는 손님이 손짓만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왼쪽 손목을 감싸고 있는 붕대를 조심스럽게 푼다.


마침내 드러난 손목에는 검붉은 흉터자국 수십 개가 손목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바텐더는 메스를 꺼내서 정성스럽게 씻었다. 그리고 알코올 솜으로 손목 위를 부드럽게 문지른 뒤, 감정 없는 얼굴 그대로 메스를 손목 위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메스가 깊숙이 들어가도 변하지 않는 그 표정은 마치 실제 인간을 닮은 인형을 연상케 했다.


루비색 핏방울이 메스가 지나간 자리 위로 송골송골 솟아올랐다. 대략 5cm의 깊은 상처를 낸 뒤, 바텐더는 미리 준비해놓은 유리잔 위에 손목을 얹고 상처 아랫부분을 오른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핏방울이 유리잔 안에 천천히 고이더니 곧 한 모금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모였다.


유리잔 안에서 찰랑거리는 그것은 마치 루비를 녹인 것처럼 조명 빛을 머금고 은은한 붉은빛을 냈다. 손님은 그것을 감사히 받고 우선 유리잔 입구에 코를 가까이 댄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향기에서 느껴지는 옅은 체온은 코끝을 살살 간질였다. 차갑고 상처투성이인 바텐더지만, 그가 품고 있는 조그마한 온기에 손님은 살짝 눈물을 흘린다.


손님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입술을 유리잔에 가만히 얹고 서서히 기울였다. 입술 사이로 따뜻한 액체가 입 속으로 스며들었다. 혀끝에 닿은 바텐더 피의 첫 맛은 심해의 어둠처럼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무거운 맛이었다. 손님은 혀를 천천히 움직이며 그것을 혀 위에서 굴렸다. 그러자 혀 위로 그것이 품고 있던 무겁고 슬픈 맛이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온몸을 돌고 돌면서 손님의 마음을 점점 검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곧 그것은 품고 있던 괴로움을 드러내며 날카로운 면도날 같이 입 안에 잔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손님은 점점 찡그리더니 다시 눈물을 조금씩 흘렸다. 종종 그 입술 사이로 작은 신음 소리를 내뱉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손님은 점점 그 고통에 동화되더니 곧 찡그리는 것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며 진정했다.


이후 몰려오는 고독감. 분명 입 안에 무언가를 머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히려 공허감을 자아냈다. 마치 저 위의 밤하늘에 떠있는 별처럼, 가까워보여도 실은 결코 닿지 못할 정도로 멀고 먼 그런 기분이었다. 사람이 있기에 외로운 것이다. 그런 것이 손님의 혀 위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리고 손님은 그것을 유리잔 위에 도로 뱉어냈다.


침과 검붉은 피가 이리저리 엉켜있는 점액질이 찰랑거리는 유리잔과 함께 손님은 바텐더에게 지폐 여러 장을 슬쩍 건넸다. 바텐더는 능숙하게 유리잔을 싱크대 안에 집어넣으면서 지폐를 가슴 주머니 위에 꼬깃꼬깃 구겨 넣었다.


“이번에도 괜찮은 맛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짧은 인사를 건네고 손님은 술집에서 나갔다.


이곳은 그런 술집이었다. 불행을 음미하고 그러나 결코 삼키지 않는 곳. 손님이 다시 뱉어낸 끈적끈적한 침을 유리잔에서 빡빡 씻어내며 바텐더는 붕대로 감싼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바텐더는 자신의 일에 만족했다. 불행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바텐더는 위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손목의 상처는 어째서인지 갈수록 점점 깊어져만 갔다.






발걸음 소리에 바텐더는 고개를 들었다.


젊어 보이는 갈색 머리의 여성이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목도리에 살짝 가려진 여성의 얼굴은 어려보이는 건지 실제로 어린 건지, 바텐더는 그녀가 미성년자일 수도 있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이곳에는 매번 오는 손님만 왔기 때문에, 처음 보는 손님이 오자 바텐더는 어리둥절했다.


분명 달콤한 ‘타인의 불행’의 냄새를 찾고 온 것이겠지.


여성이 바 앞에 앉아 바텐더에게 말했다.


“당신의 불행을 원해요.”


바텐더는 고개를 끄덕이고 붕대를 다시 풀었다. 흉터가 빼곡한 손목 위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상처 위로 또 하나의 상처를 내면서, 바텐더는 익숙하게 자신의 불행을 유리잔 위로 쏟아냈다.


바텐더로부터 잔을 건네받은 여성이 목도리를 아래로 내리자 그녀의 입술이 드러났다. 그녀는 눈을 감고 유리잔에 그 입술을 가져다 댔다. 루비색 체액은 곧 여성의 입술 사이로 스르륵 사라졌다. 여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갈수록 맛이 깊어진다는 소리를 듣고 있어, 바텐더는 떠올렸다.


여성은 볼 안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볼이 볼록볼록 튀어나오는 걸 바텐더는 관찰했다.


여성은 가끔 실눈을 뜨면서 바텐더를 바라보려고 했다. 잔뜩 찌푸린 미간은 그녀가 굉장히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녀는 오랜 시간 지나도록 좀처럼 그것을 뱉으려고 하지 않았다.


살짝 불안해진 바텐더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프시면 뱉으세요, 더군다나 초심자시고.......”


여성이 그것을 꿀꺽 삼킨 건 그때였다.


바텐더는 당황해서 씻고 있던 유리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 손님, 잠깐만요, 그건 삼키는 게 아니라......!”


“저도 알고 있어요. 여기에 온 사람들은 이걸 뱉어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무엇보다도 달콤한 맛을 느낄 수가 있대요. 그건 아마 일종의 안도감 때문이겠죠. 이 고통의 내 것이 아니다, 라는. 나는 그래도 이 사람보다는 잘 살고 있다는 그런 상대적 우월감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요.”


여성은 그리고 살짝 찡그렸다.


그것이 뱃속으로 들어간 이상 여성은 앞으로 몇 시간씩이나 더 고통스러워하겠지만, 그녀는 바텐더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바텐더는 말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찾아오는 거예요. 그 달콤함에 취하기 위해서.”


“하지만 당신도 내심 그들이 삼키기를 바라고 있었잖아요?”


여성은 바 안으로 몸을 기울여 바텐더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 바텐더는 깨진 유리잔에 비친 자신의 조각난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바텐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당신은 제 기분이 어떤지 모를 거예요. 여기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기분. 어쩌면 제가 있어야 하는 세계는 다른 곳에 있는데, 저는 그만 여기에 태어나버리고 만 걸지도 몰라요. 당신은 그런 ‘잘못 태어나고 말았다’는 기분을 아시나요?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행복해질 수 없겠다는 그런 기분을 당신은 알고 있나요?”


바텐더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무감각해졌을 터인 손목이 따끔따끔했다.


여성은 그런 바텐더의 왼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목 주변에 손을 얹었다.


“저는 당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여성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당신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상처를 품고 살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여성의 손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목도리를 풀었다. 바텐더의 눈이 동그래졌다. 여성의 목에는 끈으로 강하게 조인 자국이 울긋불긋하게 남아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여성이 말했다.


“저는 글러먹은 사람이에요. 만사가 귀찮아서 매번 미루다가 생명에 위험이 왔던 적도 있어요. 종종 이성을 잃고 무례한 행동을 할 때도 있어요. 그런 주제에 실은 소심해서, 길거리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내 이야기를 수군수군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서 목도리 안에 자신을 숨기고 말아요.


그래서 저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어요. 실은 내가 죽어도 별 상관없지 않을까 하고. 매번 두려워서 직전에 포기하고 말았지만, 그것이 저를 죽으려는 시도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는 없었어요. 오히려 제대로 죽지도 못하는 저를 자책하고 원망했죠.


그때 저는 들은 거예요,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을. 그러니까 당신에게도 해주고 싶어요.”


여성은 바텐더의 왼손과 자신의 오른손을 깍지 꼈다.


“그런 나라도 살아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하, 하지만 제가 그런 말을 들어도 괜찮을지.......”


“저도 이해할 수 있어요, 저도 한때는 그런 말을 들어도 괜찮을까 두려웠으니까요. 정말 내가 살아도 괜찮은 걸까, 살아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들어도 안도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믿어보세요. 당신은 살아있어도 괜찮아요.”


바텐더는 어느새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진 유리잔 위로, 바텐더의 눈물방울이 툭 툭 떨어졌다.


여성은 목도리를 완전히 풀어버리고 바텐더를 껴안았다.


상처는 아직도 따끔거렸지만, 바텐더는 그녀의 온기에 상처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새벽 2시,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품은 영혼들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시간. 그렇기에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을 내려다보며 알코올에 취하며 상처의 아픔을 잊어보려고 하는 시간.


또 한 명의 우울한 바텐더가 더 이상 우울한 바텐더이기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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