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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텅빈 복도

천가을(千秋) 2018.03.22 13:16

어느 학교가 그러지 않겠다마는, 우리 학교에는 참 뻔한 괴담이 있다. 그것은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는 수백 명의 학생 중 단 한 명, 유령이 숨어서 지내고 있다는 괴담이다. 사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죽은 채, 그러나 제대로 죽지도 못해 이 학교의 싸늘한 복도 위를 서성이고 있는 유령. 그 유령은 이 학교에서 몇 십 년 넘게 돌아다니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선생들은 그 유령 학생이 이상하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다만 매년 졸업 앨범마다 실리지 못하는 한 명의 빈자리가 그 유령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그런 괴담이다.


빈자리라고 해도 “어라, 분명 한 명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같은 위화감 정도이다. 그런 위화감마저 금방 시들해져, 그 빈자리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당연해진다. 그러니까, 실은 그 위화감마저 괴담 때문에 생기는 괜한 착각일 뿐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애매한 감상은 졸업앨범을 덮는 순간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져버린다.


우리 학교 도서관에는 개교 이래로 쌓인 엄청난 양의 졸업 앨범이 가장 깊숙한 곳의 책장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오랜 시간동안 사람의 손길을 만나지 못해 먼지가 수북이 쌓인 그것들은 종종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괴담을 듣고 호기심이 발동한 꼬마 녀석들이 무턱 대고 빌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앨범을 펼치지만, 곧 흥미를 잃고 다시 덮어버린다. 당연하지, 그냥 괴담일 뿐이고 그저 졸업앨범일 뿐이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들이 앨범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도 나는 꼬마 녀석들의 바로 옆에 다가가 검지로 사진 하나를 가리킨다. 이게 바로 나라고, 졸업 앨범에 친구들과 함께 어엿하게 실려 있는 내 사진이라고. 그러면 어렴풋이 볼을 스치는 바람에 녀석들은 고개를 돌려보지만, 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 있는데.


오늘은 졸업 앨범 촬영하는 날. 모두 운동장 밖으로 나갔지만, 나는 화장실을 핑계로 복도에 남아 창밖을 바라본다. 이것으로 내년까지는 버틸 수 있을 거야. 반투명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소문은 그 자리에 멈춰있을 수 없다. 그래서 괴담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서서히 증발해버린다. 그런 소문 위에 존재하는 유령은, 그렇기에 오늘도 싸늘한 복도 위를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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