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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너도 신문 동아리에 들어올래?”


서윤이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웃었다. 어째서 그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건데. 확실히 방금 전까지 나는 ‘학교 너무 지루해’ 같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이건 ‘그러니까 학교 다니기 싫어’ 느낌이지, ‘그러니까 귀찮고 번거로운 일 더 하고 싶어’ 같은 느낌의 지루해가 아니란 말이다.


창밖에서 매미가 찌르르 하고 울었다. 그런 주제에 솔솔 불어오는 바람은 은근히 서늘해서 이제 정말 여름이 끝나가는구나 하고 문득 생각하게 만들었다.


벌써 고등학교 들어온 지 반년이 지나버렸다.


그 무엇도 하지 않고, 벌써 반년.


나는 한숨을 쉬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아리 활동은 안 할 거라고 입학할 때부터 이야기 했잖아.”


“아무 것도 안 하니까 당연히 지루한 거야.”


서윤이는 그렇게 말하며 검지로 내 이마를 꾹꾹 눌렀다. 나는 귀찮다는 듯이 검지를 치우며 투덜거렸다.


“아무튼 신문 동아리는 안 해.”


“이럴 수가.”


“그런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듯한’ 표정을 지어도 말이지.......”


나는 한숨을 푸욱 쉬자 서윤이는 입술일 삐쭉 내밀었다.


“하지만 신문 동아리 정말 재미있는걸.”


“겁나 재미없어 보이는데.”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서윤이는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내 코앞에 바짝 들이밀었다. 가까워!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서윤이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자 나는 왠지 모르게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서윤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서윤이는 씨익 웃었다.


“알았어? 마침 오늘 신문 동아리 입부 시험이 있는 날이니까, 방과 후에 1층에 있는 인쇄실 바로 옆 교실로 오면 돼. 수진이는 내 친구니까 꼭 올 거야, 그렇지?”






“그래서 결국 와버렸는데.......”


한쪽 어깨에 책가방을 걸치고 1층에 내려오자 정말로 인쇄실 옆에 교실이 하나 있었다. 그 교실 문에는 종이가 붙어있었는데, ‘하루고 신문 동아리’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써져있어 누가 봐도 그 교실이 신문 동아리 부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마 지금까지 이걸 못 봤다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종이도 새 것에 가까워보였고, 글씨도 급하게 썼는지 여기저기가 날아가 있었다. 게다가 반년 동안 가을고에 다니면서 이 복도를 수도 없이 지나갔는데, 내가 이 눈길 끄는 종이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리가 없었다. 아마도 오늘 입부 시험이 있으니까 시험 보러 오는 학생들이 헤매지 않도록 붙여놓았을 것이다.


“자, 그러면 들어가 볼까.”


조심스럽게 교실 문을 열자 맨 처음에 보인 것은 ㄷ자로 배치된 책상들과 그 위에 각각 하나씩 올려져있는 노트북이었다. 책상과 노트북은 꽤 있었으나, 교실에 있는 사람은 ㄷ자 가운데에 앉아있는 여학생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명찰 색깔로 보아 한 학년 위 선배인 모양이었다. 아마도 신문 동아리 회장이겠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교실 안으로 살며시 들어오자 그 선배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뒤로 살짝 넘기면서 내게 말했다.


“혹시 네가 수진이니?”


“앗, 네, 맞아요. 서윤이가 한번 와보라고 해서.”


“그래, 그러면 저기 오른쪽 맨 가에 있는 책상 위에 앉으렴.”


내가 살짝 멈칫하자 선배는 살짝 웃었다.


“네 기준에서 오른쪽.”


“아, 감사합니다.”


나는 오른쪽 가장 가장자리에 있는 책상에 앉았다. 그 책상 위의 노트북에는 신문기사 pdf가 하나 띄워져있었고, 그 앞에는 잘 깎인 연필과 종이가 놓여 있었다.


선배가 말했다.


“그 신문 기사를 읽고 생각나는 걸 쓰면 된단다.”


“이게 입부 시험인 건가요?”


“응.”


나는 텅 빈 종이를 잠시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다른 사람은 더 안 오는 건가요? 입부 시험인데.”


“아, 응, 그런 모양이네. 보통 2학기엔 입부 잘 안 하잖아, 그치?”


“네....... 그런가요.”


그렇게 대답하며 나는 다시 새하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 와서 안 하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연필을 조심스럽게 들고 화면 속의 기사를 천천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XX역 앞에서 실종된 두 여성, 한강 근처에서 발견돼.


지난 21일 오후 11시쯤 XX역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된 후 실종된 이 모 씨(27세)와 김 모 씨(26세)가 오늘 오전 한강 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시신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근처에서 일하던 청소부로, 근처에는 CCTV가 없어 이외의 목격 정보는 얻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의 사인은 질식사인 것으로 보인다. 감식반에 따르면 사망 시각은 21일 오후 11시 반.


한편 둘은 지난 21일 XX역 앞에서 우연히 만나 식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둘을 마지막으로 봤다는 목격 정보는 11시쯤에 어떤 차에 탔다는 목격자의 증언이다. 이 모 씨에게는 21일 오후 11시 18분경에 경찰에 신고하다가 도중에 끊긴 기록이 있으며, 그 5분 전에는 가족과 전화했었던 기록이 남아있었다. 이외의 별 다른 증거는 찾지 관계자는 수사하기 난감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거 며칠 전에 뉴스에서 나오던 그거잖아. 나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이런 불쾌한 뉴스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나는 아직 한 자도 못 쓴 답안지를 내려다보았다.


“이걸 읽고 생각나는 걸 쓰라고 해도 말이지.......”


나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뒷목을 긁적이다가 한숨을 조그맣게 내쉬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인 뒤 곧 답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답안지를 받은 선배는 답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말없이 눈동자만 굴리는 선배 앞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기다리던 나는 결국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가면 되나요......?”


“끝났다고 가려고 하다니 정말 재미없는 친구네.”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답지를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가족과 전화하고 5분 뒤에 경찰에게 전화했다면 그 사이에 어떤 범행이나 그 징조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저항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면식범의 범행으로 의심할 수 있겠으나, 그렇다면 통화기록에 그에 관한 정보가 남았을 것이다....... 그러네, 우연히 둘을 만나 이런 범죄를 저지르긴 힘들겠지. 게다가 면식범이라면 피해자와 자신을 관련시키는 증거를 숨기고 싶어 했을 것이므로 한강에 그냥 버려두는 것도 이상하다.”


“우와, 제 앞에서 읽으시다니 좀 부끄러운데요.”


“증언에 따라 두 사람이 모르는 사람의 차에 탔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가족에게 전화하고 5분 뒤 경찰에게 신고하는 정황에 대한 해석이 필요한데, 왜냐하면 두 사람이 일부러 모르는 사람의 차에 탔을 경우 어차피 여성이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기 때문에 5분 만에 범행을 저지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흠, 그렇지.”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서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은 바로 택시다. 택시를 운전하는 사람은 다른 공범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운전하던 사람이 체력적으로 유리한 사람이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한 번에 두 사람을 질식시키는 건 어렵기 때문. 그렇게 생각한다면, 택시는 여성이 가야하는 곳과 다른 방향으로 향했을 것이고, 안에 탑승하고 있던 여성 역시 그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래서 5분 만에 신고했다는 거구나.”


“뭐, 그렇죠. 따라서 범인은 택시를 훔친 2명 이상의 사람들일 것이다, 실종 장소나 시체발견 장소 근처 교통 카메라에 잡힌 택시 위주로 수색해본다면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요.”


나는 슬쩍 시선을 피하면서 대답했다.


선배는 인상을 쓰며 답안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기 시작했다. 끄응 신음소리 내는 선배를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마 신문 동아리가 원하는 대답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신문은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이지, 개인의 허황된 추리나 사적인 감상을 적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대충 시험 보고 빨리 나가려고 했고, 처음부터 신문 동아리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으니까 딱히 상관은 없지만.


그러나 선배는 씨익 웃었다.


“합격.”


“예?”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머리 위에 손을 털썩 올려놓고 열심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었어. 신문 동아리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아, 네, 감사합니다.......”


“합격했구나!”


문이 벌컥 열리면서 서윤이가 달려왔다. 서윤이는 내게 당황할 틈을 주지 않고 날아와 내 몸을 꽈악 껴안았다. 껴안은 뒤에도 이리저리 흔들어서 나는 켁켁 기침을 해야했다.


나는 서윤이를 째려보며 몸을 비틀었다.


“역시 처음부터 짜고 친 거지?”


“으음, 지금은 상관없는 이야기잖아?”


서윤이가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더욱 열심히 째려보면서 서윤이의 이마를 검지로 꾹꾹 눌렀다. 그러자 서윤이도 더욱 열심히 껴안았기 때문에 나는 숨을 쉬기 위해 열심히 몸을 배배 꼬면서 공간을 만들어야했다.


곧이어 다른 신문 동아리 회원들도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신문 동아리에 어서와.”


“새로운 후배가 생겼다!”


“후배 생겼다고 막 굴리진 말고.”


서윤이의 격한 환영을 받으면서 그들과 인사해야 했기에 나는 정신없이 그들의 잔상을 향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만 계속 반복해야 했다. 대부분 선배였지만 다행히 표정으로 보아 나쁜 사람은 없어보였다.


문득 회장을 바라보자 그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눈이 마주친 것 같아 나는 곧바로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피했다.


나는 괜히 서윤이를 째려보며 투덜거렸다.


“다 네 탓이야.”


“응, 계속 그럴 거야. 계속 괴롭힐 거야.”


서윤이는 히히 웃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수진.”






환영회가 끝난 교실은 태풍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상당히 난장판이었다. 그런 주제에 창밖의 노을빛에 물들어 교실의 풍경은 왠지 모르게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교실에는 나와 회장 단 둘 밖에 없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기에 다른 동아리 회원들은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교실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회장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러셨나요?”


“응? 무슨 소리야?”


회장은 나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나는 살짝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신문 동아리 입부 시험이라는 거, 거짓말이었죠?”


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잠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회장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흐응, 거기까지 눈치 챈 거구나.”


“입부 시험치고는 꽤나 조잡한 느낌이라서. 보는 사람도 없고, 급조해서 만든 종이 간판에, 마치 저 하나만 보면 된다는 느낌의 진행방식. 그래서 아, 서윤이가 또 나를 속였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뭐, 그런 셈이지.”


“게다가 이번에 시험이라고 본 그것도, 신문 동아리와는 별로 어울리는 시험도 아니었고요. 기사를 읽고 생각나는 것을 쓰라고 하는 건....... 글쎄요, 논술 동아리면 몰라도 여기서는 기자 개인의 생각이 중요한 곳은 아니란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지.”


“그러니까 궁금해요.”


나는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왜 그러셨어요?”


회장은 이번에도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살짝 웃고 있는 그 눈빛은 붉은 노을빛에 물들어, 회장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재미없는 친구구나.”


회장은 후후 미소를 지었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어. 서윤이의 말을 듣고 갑자기 흥미가 생겨서 말이야, 한번 내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얼마나 재미없는 친구인지. 그래서 이렇게 급하게 입부 시험을 차린 거야, 그게 전부.”


“그런가요.......”


“응, 넌 예상대로 재미없는 친구였어.”


“평소에도 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그래.”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굉장히 재미있어질 거야. 기대하고 있어, 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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