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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달리기를 잘하고 싶은 사람

천가을(千秋) 2018.03.22 13:17

여기에 달리기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 사람, A가 달리기를 잘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사실 별로 대단하지 않다. 다만 그는 주변 사람들보다 달리기를 조금 더 좋아했을 뿐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특출 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심리다.


A는 100m를 15초 안으로 달릴 수 있다.


그것은 A 주변 사람들이 봤을 때는 엄청난 기록이었다. 그러나 그 차이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과 ‘달리기를 하지 않는 사람’에서 비롯된 차이었기에, 결국 그 차이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당신은 갓난아기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가?) 달리기를 하난 사람들 중에서 100m를 15초 안으로 달릴 수 있는 사람은 넘쳐난다. 그들이 보기에 A는 기어 다니는 갓난아기일 뿐이었다.


A는 달리기를 잘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연습을 해도 그의 기록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물론 그만큼 연습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A는 포기하지 않았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A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빵 한 조각을 입에 물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해가 질 때까지 A는 오로지 앞만 보면서 운동장을 뱅 뱅 돌았다.


그러니까 A가 그날 운동장 위로 털썩 쓰러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운동장 위에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만 헐떡이는 A를 보며 한 지나가던 남자가 말했다.


“당신은 왜 더러운 땅바닥 위에서 자고 있지요?”


“왜냐하면 당신도 볼 수 있듯이 저는 죽을 만큼 노력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그 정도 달리기에 힘들어하는 건 오히려 당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뜻 아닐까요?”


“지금 내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습니까?”


네가 달리기를 알아? A는 벌떡 일어나 그 남자의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A의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이 갈 길을 떠났다.


겨우 A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됐을 때 해는 이미 지평선 너머로 숨은 지 오래였다. 차갑게 식은 땅바닥 위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A는 중얼거렸다.


“정말로 내 노력이 부족한 걸까?”


재능의 부재가 이 정도 노력으로는 결코 좁힐 수 없는 차이었던 것인가. 도대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온갖 생각이 A의 두뇌를 단단한 끈처럼 조여 왔다.


마침내 A가 내린 결론은 결국 ‘어쨌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보통 각오가 아닌 ‘죽을 각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A는 아직도 후덜덜 떨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섰다. 옷에 뭍은 흙먼지를 탈탈 털어낸 뒤, A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그래, 죽을 각오로 노력하자.


다음 날 A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잔뜩 빌렸다. 무턱대고 달리기 연습을 한 것이 잘못이었다. 연습도 전략적으로 해야 하기에, A는 빨리 달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읽어보기로 했다.


한편, A는 단순히 자신의 근력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A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체형이 부적절했다. 필요 없는 살이 이곳저곳 달라붙어 있어 몸이 무거웠다. 특히 배에 불룩 튀어나온 군살은 달릴 대마다 덜덜 흔들리면서 에너지를 분산시키기 때문에 특히나 방해가 되는 요소였다.


식단과 운동으로 체형을 바꾸기에는 시간이 촉박했기에 A는 할 수 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심호흡을 하며 A는 칼끝으로 배를 찔렀다. 조금씩 더 힘을 주다가 마침내 찌른 곳에서 붉은 핏방울이 맺히더니 쪼르르 흘러내렸다. A는 신음소리를 냈다. 차갑고 날카로운 감촉이 피부 사이를 찢기 시작했다. 상처를 더 찢을수록 A는 더욱 크게 괴성을 질렀지만, 파르르 떨리는 두 손은 칼을 절대로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칼날은 피를 윤활제 삼아 상처 틈 사이로 미끄러지더니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A는 그것으로 불룩 튀어나온 배를 따라 잘랐다. A의 배는 물론이고, 칼을 잡은 두 손까지 전부 시뻘건 색으로 물들었다. 어느 정도 잘라내자 무거운 살 조각이 축 늘어지면서 대롱대롱 매달렸다. 살덩이가 잡아당기면서 뱃가죽이 찢어지려고 하자 A는 이로 입술을 꽉 깨물면서 더 빨리 살덩이를 떼어내려고 했다.


마침내 배 위에 달라붙어 있던 살덩이는 피 웅덩이 위에 찰싹 떨어졌다.


도려낸 상처 위로 붕대를 돌돌 감으면서 A는 피투성이 손가락으로 책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겼다. 달리면서 생기는 공기와의 마찰은 달리는 물체의 속도에 영향을 준다. A는 온몸의 털을 면도기로 밀었고, 살을 매끈하게 만들기 위해 사포로 열심히 문질렀다. 어느 정도 문지르다보니 진물이 나와 피부를 미끄럽게 만들었다.


공기를 가르면서 움직이는 팔다리가 안정되기 움직일 수 있도록 총알처럼 강선을 새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방구에서 파는 조각칼을 열심히 소독한 뒤, 팔다리 위에 그린 점선을 따라 조각칼로 조심스럽게 파냈다. 핏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바닥 위로 기다란 살덩어리들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금세 산을 이뤘다.


머리카락도 전부 삭발했다. 공기가 머리 위를 타고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압축판으로 꾹꾹 눌러 두개골 형태를 다듬었다. 제멋대로 덜렁거리는 손가락도 거슬렸기 때문에 작두로 뭉텅뭉텅 잘라냈다. 달릴 때 필요 없어 보이는 장기들도 싹둑싹둑 잘라서 냉동실에 보관했다. 달린 뒤에 다시 연결하면 아무 이상이 없을 것이다.


가끔 어지러워서 바닥 위로 쓰러질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A는 그날 운동장 땅바닥 위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죽을 각오로 노력하자.


A는 다시 일어섰다.






마침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A는 자신이 있었다. 노력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간의 노력이 쌓여 현재의 자신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의 A는 그 누구보다도 빨리 달릴 수 있었다.


출발신호원이 신호용 총을 번쩍 들자 A는 정면을 쳐다보았다. 100m 앞에 놓인 도착 라인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A는 씨익 웃었다.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 지금까지 아무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못했지만, 오늘 이 시간, A의 노력은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3......


2......


1......


탕!


바로 다음 순간 A의 몸은 수천 조각으로 분리되어 땅바닥 위에 데굴데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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