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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유령 송 아저씨

천가을(千秋) 2018.03.22 13:18

송 아저씨는 이 구역에서 꽤나 유명한 유령이다.


좋게 말하면 유명한 거지, 실은 다들 송 아저씨와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송 아저씨가 거슬리는 제일 큰 이유는 그가 장난꾸러기라는 점이었다.


“깜짝 놀라게 해줘야 유령이지!”


송 아저씨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다. 그러고선 우리들에게 자신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줬던 일들을 무용담 자랑하듯 이야기한다. 책상을 붕 띄웠다는 이야기, 술 취한 아저씨한테 빙의해서 춤췄다는 이야기, 영화 촬영하는 곳에서 버젓이 돌아다녔다는 이야기, 별별 이야기 다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너무 질린다.


게다가 송 아저씨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종종 장난을 친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온다던가, 사적인 대화하는 도중에 갑자기 벽을 뚫고 등장한다던가. 우리는 물론 유령이니까 그런 장난에 벌벌 떨거나 비명을 지르진 않는다. 하지만 그런 송 아저씨가 부담스럽고 거슬리는 건 사실이다.


오늘 밤도 송 아저씨는 길 가던 학생에게 거대한 그림자를 보여주면서 깜짝 놀라게 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안 놀란단 말이야.”


에잇, 송 아저씨는 툴툴거리면서 말했다.


“지난번에는 사진 찍을 때 슬쩍 찍혀봤는데, 그놈들이 사진에 얼룩 같은 게 생겼다면서 집에 가면 지우겠다고 하더라. 사진에 찍힌 유령을 지운다고? 그게 가능해? 그럴 거면 처음부터 그냥 초상화를 그리던가!”


“남들 사진 찍을 때 방해한 건 아저씨잖아요.”


내 옆에 있던 정윤이가 지겹다는 투로 말했다.


“그리고 요즘은 컴퓨터로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어요. 사진에 찍힌 유령은 당연히 지울 수 있고, 동영상에 찍힌 저주도 따로 편집해서 잘라낼 수 있다는데.”


“그런 건 반칙이지!”


송 아저씨가 버럭 소리 질렀다.


그리고 우리가 뭐라고 더 할 틈도 없이 송 아저씨는 빠른 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어렴풋이 그의 중얼거림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요즘 젊은 것들은.......”






우리 동네 유령들은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동네 놀이터에서 모인다. 딱히 이런 모임에 의미는 없다. 다만 보통 유령이란 이승에 원한을 품은 사람들이 죽어서 되는 것이므로, 우리는 본래 슬프고 외로운 존재다. 가슴 속에 아픔을 품은 사람들끼리 뭉치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는 것이다.


송 아저씨도 모임이 열릴 때마다 동네 놀이터에 찾아온다. 그 역시 유령이므로 이승에서 발을 떼지 못할 사연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과거 따위 별로 알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내 솔직한 기분이다.


내 친구 정윤이는 모임에 온 적이 한 번도 없다.


달은 졸린 듯 어슴푸레 실눈을 뜨고 있었다. 형식적인 모임이 끝나자 놀이터는 유령의 속삭임으로 시끌벅적해졌다. (새벽에 놀이터에 혼자 있으면 들리는 소름끼치는 바람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미끄럼틀 아래에서 또래 유령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이번에 그 소식 들었어? 최첨단 무당이란 사람들.”


“응, 나도 저번에 뉴스에서 봤어. 잘 모르겠는데 유령이란 게 사실 거대한 전기덩어리래. 그래서 특정 주파수의 전자기파를 레이저 형태로 쏘면 유령이 말 그대로 증발하나봐. 그런 식으로 잡귀를 물리친대.”


“개소리네.”


“누가 봐도 사이비잖아.”


“아니야, 나 지난번에 소문을 들었단 말이야.”


“무슨 소문?”


“그 옆 동네의 홍 씨가 그 사람들을 봤대. 검은 정장을 입고 있고 한 손에는 가방을, 다른 손에는 이상하게 생긴 총을 들고 다닌대.”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그 사이비 무당인지 어떻게 알아?”


“그 총을 쏘는 모습을 직접 봤으니까!”


그때 새하얀 빛이 번쩍하면서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대화에 완전히 몰입해있던 우리들은 커다란 소리에 깜짝 놀라서 우와왓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 소리의 정체인 송 아저씨는 우리를 가리키면서 낄낄 웃었다.


“하하, 놀랐냐? 놀랐지?”


“재미없어요, 송 아저씨.”


나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지금 가뜩이나 중요한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뭐? 최첨단 무당? 누가 요즘 그런 헛소리를 믿는 거냐?”


송 아저씨는 더욱 큰 목소리로 하하하 웃으면서 침 튀겼다.


나는 불쾌한 그 태도에 기분이 나빠져서 그 자리에서 재빨리 도망쳐 나왔다. 송 아저씨, 저러다가 언젠가 반드시 사고 칠 게 분명했다.






그날이 오기까지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기 모임이 끝나고 일주일 정도 지난 뒤, 우리들은 갑작스럽게 놀이터 공원에 다시 모이게 되었다. 상당히 급하게 결성된 모임이라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놀이터에 모여 웅성웅성 수군거리기만 했다. 나 역시 놀이터에 몰려든 인파..., 영파 속으로 낑낑 들어가면서 무슨 일인지 보려고 했다.


이번 모임에는 웬일인지 나와 정윤이도 함께 왔다.


아무래도 갑자기 모이라고 하니까 정윤이도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잠시 뒤 우리 동네의 대표 정도 되는 유령이 사람들 앞에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그는 눈을 감고 뒷사람들까지 볼 수 있도록 공중에 붕 떴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이곳에 모이라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최근에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갑자기 정윤이 옆구리를 쿡쿡 찔러서 나는 작게 속삭였다.


“왜?”


“저기.”


정윤이 팔을 뻗어 가리킨 곳에는 송 아저씨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슬금슬금 앞으로 가고 있었다. 마치 도둑처럼 잔뜩 움츠린 그의 두 어깨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송 아저씨가 수상한 짓을 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동네 대표는 말을 멈추고 잠시 뜸을 들였다.


깊은 한숨 뒤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오세요.”


그 한마디에 송 아저씨는 화들짝 놀라더니 ‘네, 네!’ 하고 급하게 앞으로 뛰어나왔다. 앞으로 나온 송 아저씨는 저번에 봤을 때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은 어디 갔는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사실 유령이 창백해봤자 얼마나 창백하겠다만, 그냥 표현상으로.


동네 대표가 말했다.


“아시다시피 이분은 평소에 인간에게 장난치기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도가 지나쳤죠. 자, 무엇을 했는지 자신이 직접 설망하세요.”


순간 모두의 시선이 송 아저씨에게로 향했다. 송 아저씨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저는....... 한 학생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물건들을 공중에 띄워 그를 놀라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학생이, 심장이 많이 안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중에 뜬 물건들을 본 그는 기절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순간 놀이터가 완전히 조용해졌다.


곧 커다란 웅성거림이 덮쳐오기 시작했다.


“살인자!”


“너 그럴 줄 알았어!”


“조용, 다들 조용!”


동네 대표가 다시 앞으로 나와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에야 그가 말했다.


“오늘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역시 비슷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생전에 미워하는 사람 한두 명 두고 오긴 했어도, 그들과 관계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니까요.”


“됐고 얼른 저 녀석을 쫓아냅시다.”


“맞아, 저 살인자 새끼!”


“유령은 사람 죽여도 안 잡혀가니까 참 편하지?”


“다 닥쳐봐!”


송 아저씨가 소리 지르자 사람들이 전부 멈칫했다. 송 아저씨는 너무 흥분해서,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얼굴이 귀 끝까지 전부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니 네놈들 왜 이렇게 사람 죄인 취급 하냐? 유령이 사람 갖고 장난치는 게 잘못이야? 네놈들이 이상한 거야, 왜 유령이 유령답지 않게 조용히 다니고 있어? 유령이면 좀 장난칠 수도 있지, 왜 이렇게 유령 하나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났어, 엉?”


“아저씨 겁나 뻔뻔하네요.”


“뭣.......”


모임 내내 조용하던 정윤이 입을 열자 송 아저씨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러나 정윤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누가 아저씨보고 장난하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우리 보고 장난쳐달라고 했어요? 아저씨가 죽인 그 학생은 아저씨보고 죽여 달라고 했어요? 아니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게 예의 아닌가? 아저씨는 그런 것도 몰라요? 참나, 살아있던 죽어있던 아저씨들은 전부 아저씨라니까.”


정윤은 자기 할 말 다 한 후 뒤돌아 발걸음을 옮겼다. 송 아저씨는 ‘익, 이익....’ 하면서 더욱 흥분하려고 했지만, 차마 반박은 못하고 대신 여기에 옮겨 적기 힘든 욕설만 내뱉었다.


나는 정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망할 계집.......”


송 아저씨는 모임 이후로 욕설을 중얼거리며 홀로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골목길에는 사람 하나 없었고, 길바닥을 비추는 창백한 가로등마저 고장 난 건지 깜빡거리고 있었다.


나는 딱히 그것을 보려고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지나가던 길에 멀리서 투덜거리는 송 아저씨가 보였을 뿐이었다.


그 앞에는 검은 그림자가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아저씨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찾았다.”


“엥?”


송 아저씨가 고개를 들자, 그는 자기 앞에 서있는 검은 정장의 여성을 발견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회사 로고가 박혀있는 가방이 들려있었고, 왼손으로는 철제 장난감 총처럼 생긴 무언가로 아저씨를 겨누고 있었다.


“성불시켜드리겠습니다.”


“서, 성불?”


아저씨도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나는 숨죽이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성불이라니, 그런 건 필요 없어!”


“성불시켜드리겠습니다.”


“닥쳐, 그런 거 필요 없다고 했잖아! 내가 성불시켜달라고 했어? 엉?”


아저씨는 또 다시 흥분해서 몸 크기가 점점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금방 그 여성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아저씨는 괴성을 지르면서 거대한 몸집으로 여성을 짓누르려고 했다.


그러나 여성의 방아쇠가 더 빨랐다.


순간 아저씨의 몸이 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그 구멍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증발한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최후였다. 분명 그 자리에 있었을 터인 거대한 송 아저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여성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다시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자기 갈 길을 걸었다.






그날 이후로 정윤이나 송 아저씨를 봤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


송 아저씨에 대해서는 자업자득이라고 떠들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낄낄 웃으며 떠드는 다른 아저씨들을 보고 있으니 그들도 딱히 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곧 자리를 피했다.


정윤이는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아직 이 도시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령은 원한에 묶여 지상에서 떠나지 못하는 자이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그 아래로 형형색색 빛나는 고층빌딩들과 간판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나는 그날 밤 봤던 검은 정장의 여성을 떠올렸다. 그 최첨단 무당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온 걸까.


어쩌면 이건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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