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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김수연이라는 인형

천가을(千秋) 2018.04.10 02:26

딩동.


오후 6시 12분, 시호 아파트 114동 412호의 벨을 꾹꾹 눌러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 녀석 오늘도 또 늦잠 자고 있는 건가. 나는 치마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잠겨있는 현관문을 열었다.


“들어갈게.”


불이 전부 꺼져있어 복도를 비추는 건 거실 창문 커튼 너머 새어 들어오는 흐릿한 햇빛밖에 없었다. 복도를 지나면 쓰레기투성이인 부엌이 나온다. ‘으악, 아직도 안 치웠네,’ 중얼거리면서 나는 ‘수연이 방’이라는 팻말이 걸린 방문 앞으로 걸어갔다.


똑똑, 방문을 두드려도 대답은 없었다.


“들어가도 되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자 어두컴컴한 방 안의 모습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 어질러져있는 과자봉지들, 옷들,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봉투들. 나는 콜록콜록 기침하면서 커튼을 걷히고 창문을 열었다. 햇빛과 바깥공기가 들어오자 이제야 사람이 살만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침대 이불 속에 숨어있는 수연이를 깨웠다.


“수연아, 나 왔어. 이제 슬슬 일어나.”


“응?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덜 깬 목소리로 웅얼거리면서 수연이는 꿈틀꿈틀 이불 속에서 기어 나왔다. 떡이 진 갈색 머리가 엉망진창으로 부스스 흩어져있었다. 나는 후우 한숨을 쉬었다.


“또 씻는 거 깜빡했어?”


“귀찮아서 안 씻었어. 나 냄새 많이 나?”


너덜너덜해진 소매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냄새 엄청 나. 굉장히 지독해.”


나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수연이의 긴 머리에 코를 댔다. 고약한 썩은 내가 났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나는 등 뒤에서 수연이를 껴안으며 머리에 얼굴을 파묻고 열심히 킁킁거렸다.


“불편해.......”


수연이는 내 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지만, 허약한 팔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어쩔 수 없이 킁킁 당하면서 수연이는 귀찮다는 투로 투덜거렸다.


“으으, 그렇게 내가 좋으면 그냥 여기서 살지 그래?”


“......그럴까? 응, 그러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안 돼.”


나는 얼굴을 파묻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연이의 미끈거리는 머릿기름이 느껴졌다. 나는 수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여기에서 살게 되면, 나는 수연이를 소유하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만나고 싶으니까 만난다, 그런 평범한 연애 관계를 원하는 거야. 응, 우리는 연인이니까.”


“뭔가 어려운 이야기네.”


“후후, 그런가?”


나는 그리고 그대로 기울어 침대 위로 폭 드러누웠다. 수연이도 내 품 안에 안긴 채로 누웠다. 이러니까 곰 인형 같아, 나는 수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무슨 말이든 들어주고 무슨 짓을 해도 다 받아주는 곰 인형.


여기서 내가 수연이를 때려도, 수연이는 그대로 맞아줄까.


“......밥 먹을까?”


내 말에 수연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게 썬 파를 프라이팬 위에 쏟자 적당히 달궈진 기름 위에서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지글지글 춤을 췄다. 나는 뒤돌아 식탁에 앉아있는 수연이를 봤다. 아직도 졸린 건지 수연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에휴 한숨을 쉬고 후라이팬을 손에서 놓았다.


식탁에 코 박으려고 하는 수연이를 일으켜 세우자 수연이가 눈을 꿈뻑꿈뻑 떴다.


“밥은 아직?”


“방금 요리 시작했는걸.”


“배고프단 말이야.”


“얼른 해줄게.”


수연이는 눈을 감고 코를 킁킁거렸다.


“이거 타는 냄새인가?”


“앗.”


나는 서둘러 프라이팬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파는 별로 타지 않았다. 나는 주걱으로 파를 저으면서 큼직큼직 썰어놓은 야채를 순서대로 프라이팬에 부었다. 양파, 당근, 감자. 다진 소고기도 넣었다. 고소한 냄새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수연이가 좋아해줄까?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완성하고 나니 수연이는 또 식탁에 코 박고 졸고 있었다. 수연이를 깨우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볶음 냄새를 맡더니 얼굴이 금방 환해졌다.


“와 맛있겠다!”


“내가 먹여줄게.”


“응, 부탁해.”


수연이는 눈을 감고 입을 아 벌렸다. 나는 꿀꺽 침을 삼키고 고기볶음 한 숟가락을 조심스럽게 수연이의 입에 가져가댔다. 커다란 양파 조각이 수연이의 입 안으로 굴러들어갔다. 수연이는 천천히 고기볶음을 음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


“다행이다......”


“수연이도 얼른 먹어.”


“알겠어.”


기뻐하는 수연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지만, 식탁 아래에 가려진 내 왼손은 안절부절못하게 움직였다.


수연이가 양파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걸 난 알고 있었으니까.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고기볶음을 다 먹은 후 거실바닥에 같이 드러누워 수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수연이는 나를 올려다봤다.


“무슨 말이야?”


“나도 잘 모르겠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내가 일방적으로 너에게 사랑을 주고 스스로 보답을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이래서는 네가 내 인형일 뿐이잖아.”


“히히, 어쩔 수 없는걸.”


수연이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말했다.


“내가 이렇게 글러먹은 모습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도 결국 너 때문이니까. 이제 와서 후회해도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사실 처음부터 이런 생활을 바라고 있었던 거 아니야?”


나는 대답 대신 수연이의 머리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고약한 냄새가 들숨을 타고 후각세포를 자극시켰다. 이 냄새를 맡으면 괜히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수연이가 크게 웃었다.


“너는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구나.”


“응.”


“그렇게 너는 네가 사랑하는 나를 향해 애정을 쏟을 거야.”


“응.”


“그리고 내 모든 걸 가져가겠지. 결국 이건 네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일 뿐, 나를 위한 건 아니야. 나는 결국 너의 만족을 채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겠지. 결과적으로 내가 얻는 건 단 하나도 없어.”


“응.”


잠시 침묵이 흘렀다.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노을이 지는 창밖으로 들어오는 붉은 햇빛에 거실 바닥이 물들어서, 마치 피바다 위에 누워있는 기분이 들었다.


수연이가 입을 열었다.


“이런 인형놀이가 얼마 못 간다는 거 너도 잘 알 테지만, 그때까지는 열심히 어울려줄게.”


“고마워.”


그때 딩동, 벨소리가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인터폰을 확인했다. 알지 못하는 아저씨 둘이었다. 나는 현관으로 달려가 현관문을 살짝 열었다. 아저씨는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무뚝뚝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여기가 ‘김수연’네 집 맞나요?”


“앗, 으음, 네. 자취하는 곳이지만.”


현관문을 좀 더 열자 옆에 있던 다른 아저씨가 킁킁거리더니 콜록콜록 기침했다. 내게 질문했던 아저씨도 코를 살짝 찡그리면서 말했다.


“실은 이웃에서 신고가 들어왔거든요,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아저씨의 손에 들린 수첩에는 수연이의 사진이 있었다. 그렇군, 이 사람들은 나에게서 수연이를 뺏으러 온 사람들이구나. 그렇게 생각할 때 아저씨가 똑딱 펜을 꺼내면서 내게 질문했다.


“학생은 누구죠?”


나는 누구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기억해냈다.


길거리 위에 버려진 내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 나에게 아낌없이 애정을 베풀어줬던 사람, 그러면서 동시에 나를 애완동물 취급하던 사람. 김수연. 저는 당신에게서 사랑이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되돌려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나는......




“......저는 김수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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