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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사람이 할 짓이 안 된다.

 한밤이면 사람이 없을 것 같아 곧바로 콜 했지만, 아뿔싸, 이 동네 근처에 클럽만 두 자릿수다. 게다가 클동네답게 이곳 인간들은 달만 뜨면 개가 되어버리는 놈들이라 상대하기 되게 힘들어진다. 술 냄새 풍기며 진상 부리는 아저씨들, 여자 잔뜩 끌고 와서 시끄럽게 떠드는 멍청이들, 바닥에 토하는 주정뱅이들.

 알코올이 사람을 정말 미치게 한다.

 물론, 이런 사람들도 새벽 3시가 넘으면 슬슬 안 보이기 시작한다. 지침을 모르는 젊은 영혼들이 춤추는 소리가 바로 옆 클럽에서 들리지만, 나이를 똥구멍으로 드신 아저씨들보다는 백배 낫다. 이 시각이 되면 나는 술 마신 좀비 떼를 상대하느라 지친 자기 자신을 위로해주면서 잠시 휴식을 가진다.

 그리고 적당히 다 쉬었다 싶을 쯤에는 언제나 편의점 문 열림 알림이 삐로삐로 열린다.

 항상 이 시각 쯤이다. 곤색 후드를 푹 쓴 키 작은 여성이 두리번거리며 편의점에 들어온다. 그녀의 부슬부슬한 검은 생머리가 후드 밖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작은 발걸음으로 총총총 냉장고를 향해 걸어가 항상 같은 맥주 세 병 꺼낸 후, 그대로 총총 들고 와 카운터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면 조명에 그녀의 얼굴이 눈 바로 밑까지 비춰지는데, 푸스스하면서도 창백한 그녀의 피부가 어딘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그녀는 그 작은 입술을 열고 속삭이듯이 "던힐라이트 하나"라고 중얼거린다. 담배와 함께 술을 계산하고 봉투에 담아 그녀에게 주면 그녀는 도망치듯이 편의점에서 달려나간다.

 나는 그녀를 "새벽의 요정"이라고 마음속으로 부른다.


 새벽의 요정은 항상 같은 시각에 같은 술, 같은 담배를 산다.

 마침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쯤 등장하는 그녀는 내게 잠 깨는 비타민 같은 사람이었다. 야간 편의점 알바도 아마 그녀가 없었으면 버티지 못하고 금방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오늘도 올 거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카운터 앞에 서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녀와 말 한 마디도 해본 적이 없었다.

 오늘은 반드시 말을 걸어보자, 하고 결심해도 그녀의 신비스러운 얼굴을 바라보게 되면 머리가 하얘지면서 어느 순간 그녀를 보내게 된다. 오늘도 역시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겠다고 결심하지만, 이미 빈 껍데기와도 같은 결심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삐로삐로삐로.

 오늘도 너덜너덜한 곤색 후드를 입고 온 새벽의 요정. 맥주병 세 개를 들고 카운터에 온 그녀는 또 다시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던힐라이트 하나."

 내 손에는 미리 던힐라이트가 쥐어져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던힐라이트를 건냈고, 그녀는 내게 초록색 지폐를 내민다. 학이 그려진 동전을 그녀의 작은 손에 올려놓자, 그녀는 곧바로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봉투에 담긴 맥주를 가져간다. 다시 편의점 문이 열린다.

 삐로삐로삐로.

 "아!"

 순간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여성은 깜짝 놀랐는지 몸을 움츠렸다. 어쩌지?

 "저, 저기, 그러니까......"

 하지만 여성은 곧바로 편의점 밖으로 도망쳤다. 나는 그녀를 향해 팔을 뻗었지만 카운터 내 작은 공간에서 뻗은 내 손은 그녀에게 닿지 못한 채 허공에서 멈춰버렸다.

 "아......."

 오늘도, 실패했다.


 다음날.

 삐로삐로삐로.

 문이 열리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엔 말을 걸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대화를 해보고 싶다. 각오는 단단히 했다. 어제처럼 둔탱이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기? 던힐라이트 하나 좀......."

 "아? 아, 네."

 말 걸겠다는 생각에 팔려 그만 멍 때리고 있었나 보다. 나는 허겁지겁 던힐라이트를 꺼낸 후, 계산 후 봉투에 맥주병을 담았다. 이번에는 말을 걸자.

 "저, 저기, 혹시 근처에 사시나요?"

 "네, 넷?"

 "아니 그냥 항상 이 시간마다 오시길래 궁금해서."

 "벼, 별로 멀지 않는 곳에서 살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녀에게 거스름돈을 건네자 그녀는 급하게 봉투를 챙기고 편의점에 나가려고 했다.

 "저기!"

 나는 그녀를 멈춰 세웠다.

 "호, 혹시 괜찮으시다면 말 동무가 되어주실 수 있나요? 이렇게 몇 마디 만으로도 괜찮아요. 혼자니까 너무 심심해서, 그게,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네."

 그녀는 들릴 듯 말 듯 대답한 후 얼른 나가는 길을 재촉했다.

 그녀의 멀어지는 모습을 나는 묵묵히 쳐다보았다.


 그 후로 그녀는 점점 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항상 던힐라이트네요."

 "네."

 "새벽 공기가 좋네요."

 "네."

 "새벽까지 안 주무시다니 피곤하시겠어요."

 "괜찮아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주로 말하는 건 나. 그녀는 대답만 짤막하게.

 그녀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내 괜한 참견 때문에 그녀가 귀찮아 해 하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기도 했지만, 말을 안 거는 날에는 그녀가 먼저 "오, 오늘은 말 안 걸어주실 건가요?"라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황급히 그녀에게 꺼낼 말을 생각해낸다.

 가끔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듣고 쿡쿡 웃을 때도 있는데, 팔보다 훨씬 긴 후드의 양 소매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는 모습이 굉장히 귀엽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후드 모자가 살짝 살짝 흔들리는데 정말 건드려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는 건 나도 알기에, 나는 그녀를 따라 히히 웃는 걸로 만족한다.

 언제 한 번은 그녀가 먼저 내게 말을 걸어온 적도 있었다.

 "우, 우리는 친구인가요?"

 "친구요?"

 그저 편의점 알바생과 손님A의 관계에 불과한 우리였지만, 그래도 매일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우리는 친구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친구죠. 새벽 친구."

 "그, 그런가요!"

 그 사실이 기뻤는지 거스름돈을 받는 그녀는 작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 미소를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삐로삐로삐로.

 문이 열리자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편의점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거기에 서있는 건 곤색 후드의 여성이 아닌 술 냄새 풀풀 풍기는 수염 덥수룩한 중년 아저씨였다. 그는 나를 스윽 훑어보더니 에잉 쯧 하고 혀를 찬 후 냉장고를 향해 걸었다.

 맥주병 세 잔.

 카운터 위에 세 병을 올려놓은 아저씨는 칼칼하고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던힐라이트 하나 줘."

 그 사람이 입을 열자 시큼한 술 냄새가 풍겨와 나도 모르게 코를 찡그리고 말았다.

 계산 다 하고 맥주 세 병을 봉투에 담으면서 내가 말했다.

 "늦은 시간에도 깨어있네요."

 "......쯧."

 아저씨는 퀭한 눈으로 나를 째려보더니 봉투에 맥주를 다 담는 즉시 내 손에서 봉투를 낚아채 그대로 편의점에서 나갔다.

 삐로삐로삐로.

 그날 밤 새벽의 요정은 편의점에 찾아오지 않았다.


 "던힐라이트 하나 주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내 사고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어젯밤 그 아저씨는 누구였을까. 나는 여전히 그 생각에 빠진 채 던힐라이트를 꺼냈다. 그녀에게 건네면서 고개를 든 순간, 그러나 내 머릿속은 순간 창백해졌다.

 그녀의 볼에 나 있는 선명한 상처.

 뒤늦게 눈치 챘는지 "앗" 하고 후드로 얼굴을 더 푹 가려보지만 이미 내가 그 선명하게 긁힌 붉은 선을 본 뒤였다. 물론 작은 실수로 생긴 별 거 아닌 상처였을 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내 목소리가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리가 굉장히 조용하네요."

 "네."

 나는 말없이 맥주 세 병이 든 봉투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말없이 봉투를 받아 든 후 나가는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평소대로.

 하지만 무언가 잘못됐다.

 잘못됐다고 가슴 속에서 계속 외친다.

 쿵쾅쿵쾅, 심장이 점점 더 세게 뛰기 시작했다.

 온몸의 구멍에서 불쾌한 땀이 끈적하게 흘러나왔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킨 후 목소리를 쥐어 짜내어 겨우 입 밖으로 내놓았다.

 "저, 저기!"

 "네?"

 "그, 그러니까......."

 나는 다음에 이어야 할 말을 급히 찾았다.

 "어, 음, 그게, 혹시 하고 싶은 말 있으시면, 무슨 말이든 하셔도 괜찮...다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내 말을 들은 후 잠시 아무 반응도 안 했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걱정해주셔서."

 삐로삐로삐로.


 그 이후로 새벽의 요정은 편의점에 찾아오지 않았다.

 일주일 뒤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 나도 이제 그녀와 다시 만날 일은 더 이상 없었다.

 편의점 알바생과 손님A.

 우린 그런 얇은 관계 속에서 웃고 떠들었던 거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편의점 앞에서 잠깐 멈춰 섰지만, 이내 편의점을 뒤로 한 채 가던 길을 재촉했다.

댓글
  • 프로필사진 바람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작가님. 감정이입이 정말 잘 되었네요. 그녀를 붙잡았어야 했는데!
    제가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똑같은 걸 느낀 건 아니지만, 정말 편의점 알바를 하는 기분이었고.
    그녀를 기다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어요.
    재미있었어요.
    2018.04.11 17: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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