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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그 아이가 잘못한 거야.

천가을(千秋) 2018.11.11 09:05

“그러고 보니 옆 반에 E 알아?”


쉬는 시간, A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주제를 꺼내자 B와 C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모르는 D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누군데.”


“좀 조용한 애 있어. 그런데 걔가 왜?”


“내가 이번에 SNS 시작했는데 거기에 걔가 있더라고.”


A는 손에 들고 있던 바나나 우유를 빨아먹으며 말했다.


“처음에 뭘 해야 하는 건지 몰라서 헤매고 있었는데 거기서 우연히 E를 만난 거야. 마침 친구도 없어서 서로 팔로우 하고 친구가 됐거든? 그런데 걔 그 SNS에서는 나름 인기 많은 녀석이더라.”


“음, 그래?”


C는 별로 흥미 없다는 목소리로 맞장구쳤지만 A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래서 내가 ‘너 학교에선 이러지 않잖아’라는 식으로 아는 척 하니까 걔가 우리 둘이 같은 학교인 거 비밀로 해달라고 하더라고. 조금 기분 상하는 거 있지.”


“난 뭔지 좀 알 거 같은데.”


“응, 그러게.”


“아냐,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야. 찾아보니까 걔 지난번에 SNS 친구들이랑 오프 모임을 가진 적이 있더라고. 거기에 날 안 부른 거야. 이상하지 않아? 숨기고 싶어도 일단 우리 같은 학교 친구인 거 맞잖아. 이 정도면 그냥 대놓고 날 피하려는 거 아니야?”


B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SNS가 원래 좀 그런 성격이던데. 나도 예전에 해본 적 있었는데 거기에서 ‘실친은 블락’이란 말도 있더라고. 걔는 그래도 널 친구로 해준 거잖아.”


“으음, 그런가......”


A는 말끝을 흐리면서 빨대를 쭈욱 빨았다.




“이번에는 내가 확실한 증거를 찾았어.”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꺼내는 거야.”


며칠 뒤 A가 바나나 우유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꺼내자 B, C, D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설마 E 이야기야?”


“너 좀 이상해.”


“아니야, 이걸 들으면 너희들도 생각이 바뀔 거라고.”


A는 그렇게 말하며 헛기침을 했다.


“저번에 너희들이랑 이야기한 뒤로도 뭔가 수상쩍어서 그날 밤새도록 검색해봤거든. 그런데 찾아보니까 그 녀석 아무래도 계정이 한두 개가 아닌 것 같아. 서로 팔로우 안 되어있어서 처음에는 나도 좀 긴가민가했거든? 그런데 말투 같은 게 비슷하니까.”


“부계정 같은 거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부계정이 아니라 아예 다른 계정이라고. 글 내용도, 친구 목록도, 전부 달라.”


“응, 그런 걸 용케 찾았네.”


C가 적당히 반응해주자 A가 후후 웃었다.


“내가 좀 끈질기잖아. 걔 아이디로 구글에 검색하니까 50번째 페이지에 그 녀석이 초등학생 때 쓰던 블로그가 있더라고. 그 블로그에서 사용하던 이메일 주소였던 모양인데, 그 블로그에서 사용하던 닉네임으로 다시 검색하니까 또 다른 계정이 나온 거야. 뭔가 수상해서 걔가 자주 쓰는 단어 위주로 검색하니까 다른 계정들도 줄줄이 나오고.”


“그래서 그게 어쨌는데.”


“기다려봐, 아직 본론에도 안 들어갔어. 아무튼 그 계정들 보고 있는데 왠지 내 이야기 같은 내용이 있던 거야.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아는 척 하려고 한다, 같은 거. 요즘 그런 녀석 한 명이 있는데 자기는 너무 부담스럽다고, 애초에 걔가 왜 여기에 온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그런 이야기를 막 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그거 내 이야기 같지 않아?”


“글쎄-”


“물론 그 정도로 뭐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 그래서 내가 좀 더 찾아봤어. 역시나지만 그 녀석, 아무래도 나 말고 다른 사람들 뒷담도 엄청 한 것 같아. 심지어 이쪽 친구 목록을 아는 나로서는 누구인지 대충 특정 지을 수도 있는 그런 내용도 꽤 있었어. 우리 학교 애들에 대한 내용도 있었고. 3년 동안 그런 뒷담들을 엄청 해댄 거야. 그걸 다 뒤져보느라 그날은 한숨도 못 잤어.”


“으엑, 정말 끈질기네.”


“후후, 여기서 끝이 아니야.”


D는 칭찬의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발견한 계정들이 대부분 3년 전에 만들어진 거였는데, 딱 하나 굉장히 오래된 계정이 있더라고. 닉네임을 검색해보니까 꽤 유명한 계정인 모양인데 아무래도 어떤 일이 터져서 그 계정은 버려지고 다른 여러 계정들을 새로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아. 그게 무슨 일인지 알아?”


D는 침을 꿀꺽 삼켰다. A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친목질.”


“에이, 뭐야.”


“아니, 대단하지 않아? 그렇게 편파적으로 친구 사귀다가 터졌는데, 지금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거잖아. 결국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거겠지. 이걸 발견하고 나서 남아있던 잠도 싹 다 사라진 거 있지. 너무 기쁜 마음으로 이걸 전부 캡쳐하고 정리해서 그 녀석한테 보냈어.”


“보냈어?”


“응, 그러더니 그 녀석이 좀 당황하더라고. 처음엔 부정했지만 나중에는 전부 자기 계정이라고 인정했어.”


“그래서 걔가 물어봤어, 도대체 뭘 원하는 거냐고. 히히, 그래서 나랑 ‘진정한’ 친구가 되어달라고 했어. 그런데 아무래도 반응이 시원찮은 거 있지. 역시 그 녀석 반성하고 있지 않는 거야.”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 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A는 그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그래서 그 정리한 글을 SNS에 뿌렸어. 의외로 엄청 빨리 퍼지더라 그거. 역시 대단해. 아무튼 그걸로 그 녀석 계정들 전부 터지고. 어차피 또 새로운 계정 만들어서 오겠지만. 그때 한번 다시 부탁해야겠다. 그때는 좀 반성했으면 좋겠는데.”


아까부터 계속 말이 없던 B가 그제야 한 마디 꺼냈다.


“그러고 보니 오늘 E가 학교에 안 왔더라.”


“응, 맞아.”


A는 방긋 웃었다.


“그 아이가 잘못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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