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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조그마한 사고실험

천가을(千秋) 2018.11.13 03:12

“선생님, 깨어나셨습니까.”


다소 낯선 감각에 눈을 뜨자 하얀 옷을 입은 한 여성이 나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래도 여기엔 나와 저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방은 MS 그림판에서 기본 회색을 페인트로 채색한 느낌이었다.


“꿈인가......”


“그렇습니다.”


그는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아니, 그의 얼굴 중에서 입꼬리쪽 안면 근육만 기계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기 때문에 그건 웃었다고 하기 보다는 웃는 흉내를 냈다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꿈인 것치고는 엄청 생생하네.”


“그런 편이 훨씬 납득하기 쉬울 테니까요.”


여성은 그렇게 말한 뒤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짐작하셨겠지만 지금 당신의 정신은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저기, 이건 꿈인 거 맞죠?”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지금 당신의 정신은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최근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그런지 이상한 꿈을 꾸고 깬 적이 잦은데, 아마 이것도 그런 비슷한 거겠지. 여성의 말을 적당히 넘겨들으려고 했지만 둘뿐인 이 공간에서 여성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내게 두 손을 쫘악 펼치며 말했다.


“여전히 믿겨지지 않는 모양이군요. 1부터 10 사이 숫자 중에서 하나를 떠올려보세요.”


“하지만 이게 꿈이라면 내가 뭘 생각하든-”


“떠올려보세요.”


살짝 강압적인 목소리에 나는 움찔했다. 문득 꿈속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다는 미신이 떠올랐기 때문에 나는 여성에게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기로 작전을 바꿨다. 나는 눈을 감고 적당히 괜찮은 숫자, 7을 떠올리려고 했다.


할 수 없었다.


“혹시 당신이 떠올린 숫자는......”


여성은 기다란 손가락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또다시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100077인가요?”


그제야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정신은 정말 말 그대로 조종당하고 있던 것이다. 아무리 다른 숫자를 떠올리려고 해도 내 두뇌는 100077 이외의 수를 떠올리는 것을 거부했다. 그 수를 떠올리는 두뇌의 영역의 권한을 완전히 뺏긴 기분이었다. 열 번 정도 더 시도해봤지만 멀미가 올 것 같아 나는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윙윙 울리는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그에게 말했다.


“만약 내 정신을 조종할 수 있다면 너는 어째서 이렇게 나와 대화를 하고 있는 거지? 앗, 혹시 이 대화도 전부 정해진 대본일 뿐인 거야?”


“아닙니다.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선 증명하기 좀 난감하겠네요. 하지만 믿어주세요, 저는 당신을 세뇌하거나 조종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오늘 밤 저는 당신에게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드리기 위해 온 겁니다.”


“일자리?”


“그렇습니다. 일자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그런 당신을 위해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정말 간단한 일입니다. 고정된 월급도 보장해드립니다. 일이라곤 하지만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희도 당신을 터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 어떻게 봐도 당신 쪽이 유리한 조건입니다. 이건 거절할 수가 없군요.”


“아니, 잠깐만......”


나는 여성의 말을 멈춰 세운 뒤 검지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수상하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수상했지만 우선 부하의 정신을 온전히 조종할 수 있는 상사 아래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꺼림칙했다. 애초에 지금 그의 존재 자체가 여기에서 가장 수상한 것이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입을 열었다.


“내가 거절할 수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어떻게 봐도 당신에게 불리한 선택이지만요.”


“으음.”


일단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는 후계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전에 같은 일을 하던 사람이 불운한 사고로 떠나게 되어서 그 자리를 채워줄 사람이 지금 당장 필요하게 됐거든요...... 아, 물론 이 불운한 사고란 지금 당신에게 소개해드리는 일자리와 전혀 무관한 교통사고였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저희는 무작위 프로그램을 돌렸고 당신은 운 좋게 저희 프로그램에 당첨되신 겁니다.”


그리고 여성은 양손을 둥글게 모으더니 다시 양팔을 벌렸다. 그러자 그의 손 안에서 빨간 원기둥이 하나 등장했다.


“당신이 할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이 버튼을 관리하는 것.”


“아 이거 설마.”


“이 버튼은 오로지 당신의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버튼입니다.”


여성은 내 말을 자르고 계속 설명했다.


“이 버튼을 어떻게 하든 당신의 자유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버튼을 누르고 싶다면 누르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잠에 들면 됩니다. 그렇다면 버튼은 반드시 당신의 꿈에 등장하겠죠. 만약 누르고 싶지 않다면 그냥 평소처럼 살면 됩니다. 이 버튼은 누군가의 꿈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니까요.”


“이거 그 인류 자폭 버튼 그런 거지.”


“당신이 그 버튼을 가지고 있기만 해도 저희는 당신에게 정기적으로 월급을-”


“말 돌리지 말고.”


그는 입을 닫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 차가운 눈빛에 나는 순간 실수했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 여성은 쉽게 인정했다.


“이 버튼은 인체 내 미세플라스틱을 조종하는 발신기입니다. 미세플라스틱이라 해야 하나, 실은 나노봇의 일종인데. 미세플라스틱이란 인류가 바다에 투기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자외선을 받아 분해되면서 생긴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을 일컫습니다. 이 조각들은 플랑크톤이나 생선에게 먹히면서 먹이사슬을 타고 올라가, 현재 거의 대부분의 인간이 몸 안에 플라스틱 조각을 심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요.


그런데, 자세한 메커니즘은 설명드릴 수 없지만, 현재 바다에 표류 중인 이 수많은 미세플라스틱은 특정 신호를 통해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저희 연구팀이 발견했습니다. 더 나아가 인체에 심겨진 미세플라스틱 역시 조종 가능하다는 것을 최근 임상실험에서 보였고요. 지금 당신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이유도, 당신 뇌혈관에 있는 미세플라스틱을 이용한 결과입니다.”


“그거 참 무서운 이야기네.”


“이 버튼을 누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류의 일부분은 죽게 될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자리에서 부패되는 겁니다. 혈관에서부터 시작해 신체를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가 분해되어 최대한 고통 없이 죽게 됩니다.”


“나는 자살 명령 프로그램 같은 건줄 알았는데.”


“제가 감명 깊게 본 영화가 그런 식으로 죽어서.”


여성은 다시 한 번 그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낄낄 웃었다. 솔직히 좀 무서웠다.


“아무튼 일부분이 죽는다는 건 인류 멸망까지는 아닌 거네?”


“어쩌면 누구도 죽지 않을 수도 있고요, 열심히 하느님께 빌다보면.”


“하지만 반대로 누른 내가 죽을 수도 있는 거고.”


“보기보다 이해가 빠르시네요.”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앞에 부유하고 있는 새빨간 버튼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이런 걸 만든 거지?”


“궁금한 게 정말 많군요.”


날선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단순히 말하자면, 가능하니까 만들어진 겁니다. 만들어진 뒤에는 다시 돌이킬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관리할 사람이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런 편이 좀 더 재미있으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성은 내 대답을 기다리다가 먼저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당신에게 유리한 조건입니다. 방금 설명 드린 건 어디까지나 버튼을 눌렀을 때의 이야기. 하지만 버튼을 누르지 않고 계속 사신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매달 300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지 않으실 것 같지만, 꿈에서 깨신다면 당신의 통장에 100만원이 입금된 것을 볼 수 있으실 겁니다. 그건 선지급 비용으로, 당신이 이 일자리를 받든 말든 상관없이 드리는 겁니다.”


“거창해 보이는 것치고 월급이 엄청 많은 건 아니구나.”


“저희도 한가한 부자는 아니어서 말이죠.”


“그건 그렇고 이렇게 막 말을 해도 되는 거야?”


“어차피 당신이 이런 이야기를 밖에서 해본다고 한들 사람들은 유사과학 음모론 헛소리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애초에 미세플라스틱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고 부패시킨다는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들립니까? 그렇기에 이 버튼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겁니다. 어째서 저희가 이런 버튼을 꿈속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까?”


여성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해보았다.


문득 이전에 이 일자리를 맡았던 사람이 사고로 죽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여성은 이 일자리와 무관한 교통사고라고 말했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 일자리에 대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라면? 아니면 입막음을 위해 저쪽에서 비밀리에 처리한 거라면?


애초에 저 여성의 말 중 믿을만한 부분이 있는가?


내 앞에 있는 여성은 내 의심을 풀고 최대한 나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의 말 중 상당 부분은 지금 여기서 당장 보일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거절해야겠어.”


“이상한 사람이네요.”


“꿈속이라 그런 걸지도. 직접 만났다면 훨씬 믿음이 갔을 텐데.”


“보안을 위해서 이런 형태로 만나고 있는 것이지만, 그 의견도 참고는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여성은 다시 양손을 모아 버튼을 허공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가 꾸벅 인사하고 사라지려는 찰나 나는 그를 불러 세웠다.


“이제 다른 사람 찾으러 가는 거야?”


“그래야죠.”


“계속 그런 식으로?”


여성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차분하게 답했다.


“언젠가는 적임자를 찾을 수 있겠죠.”


여성은 고개를 끄덕인 후 그대로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회색 공간만 바라보던 나도 잠시 뒤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어플을 확인해보니 정말로 100만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하지만 입금주 이름을 보니 우리 부모님이었고, 나는 오늘이 마침 부모님이 용돈을 주시기로 한 날임을 깨달았다. 역시나인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 꿈은 다른 이상한 꿈에 비해서 상당히 생생했으나 싱거운 마무리 탓인지 금방 잊을 수 있었다. 종종 플라스틱 컵 줄이자는 광고를 볼 때마다 그가 말했던 미세플라스틱 이야기가 생각났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설령 그 꿈이 정말이었다고 해도 그것이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임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거실 TV를 틀었더니 마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순식간에 부패한 한 남성에 대한 속보였다.


순간 나는 내가 들고 있던 물 컵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았다. 송골송골 맺은 식은땀이 척추를 훑으며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 컵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보았다.


‘죄송합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그 문자와 함께 100만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람이 띠롱 울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문득 여성이 ‘이 버튼은 누군가의 꿈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누구의 꿈인가’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서 만약과 만약들이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걸 생각하기엔 모든 게 늦어버렸다. 확실한 건 그 버튼은 누군가의 꿈속에 있고 그 주인이 나는 아니란 것이다.


2018년 11월의 어느 쌀쌀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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