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인간이 무섭다.

 "이제 그만하고 학교 가자, 응?"

 친구A가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내게 말했다.

 "좀 치우고 살아, 냄새가 뭐야."

 친구B도 바닥에 널린 먹다 남은 과자 봉지들을 발로 한쪽으로 치우면서 방 안에 들어왔다. 방 안 가득한 썩은 냄새 때문에 그는 코를 막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부자리 여덟 장만 펼치면 바닥을 다 덮고도 남을 정도로 좁은 방. 이 좁은 공간이 내 활동공간이자 생활공간이었다.

 그야말로 나만의 세상. 이곳에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친구C는 편의점 봉투를 들고 여기 저기 쌓여있는 책들을 이리 저리 넘으면서 방에 들어왔다.

 "자, 오늘 자 간식이야. 진짜 이것만 먹어도 되겠어?"

 "응."

 나는 시선을 컴퓨터에 고정 시킨 채 짤막하게 대답했다.

 내 대답에 그녀는 편의점 봉투를 내 옆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난 정말 괜찮다니까. 정말이야."

 내 대답에 이번엔 친구A와 친구B가 크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소꿉친구 A(18, 여성).

 영원한 반장 B(18, 남성).

 편의점 알바하는 C(18, 여성).

 이 셋만이 내 세상에 허락된 인간들이다. 모두 신뢰할 수 있고, 내 목숨까지 맡길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친구들이었다.

 "벌써 그 일이 이후로 3년이나 지났어."

 "맞아. 좀 적당히 해."

 "아니야, 난 정말 괜찮아. 난 지금 이 생활이 좋아. 나 자신을 사랑해."

 내 바싹 마른 입술 사이에서 영혼 없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몇 시간 동안 화면만 바라본 걸까,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화면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눈을 비빈 후 다시 마우스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3년, 벌써 3년이나 지났구나.

 3년 전, 내 부모님은 살해 당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고약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거실에 들어오니 바닥부터 천장까지 붉은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마치 그로테스크한 PC 게임의 한 장면 같았다.

 그 한가운데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기 덩어리 두 조각이 거실 바닥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아, 이건, 그러니까, 그건가.

 알싸한 피 냄새 가득한 마루 바닥 위에 쓰러지면서 그날의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친구A가 말했다.

 "물론 그 동안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이제 정말 걱정 돼."

 "걱정해줘서 고마워."

 "진짜 평생 이렇게 살 생각이냐?"

 친구B가 쏘아붙였다. 그는 내가 학교 다닐 당시에 반장이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몸도 마음도 버티지 못할 거야."

 친구C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3년이나 버텨왔잖아.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셋의 표정은 결코 괜찮지 않았다.

 몇 초 간의 침묵.

 "나 먼저 갈게."

 먼저 가방 들고 일어선 건 친구B였다. 이 녀석은 벌써부터 입시 학원 다니느라 바쁘다.

 "나도 가야 될 거 같아."

 친구C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녀석은 요즘 아르바이트 때문에 시간이 남아돌지 않는다고 한다.

 둘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걸 보며 친구A는 당황해 하다가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나도 그만 갈게! 학교 안 가는 건......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해 줘."

 친구A는 슬픈 표정을 짓더니 재빨리 문에서 나섰다.

 화면을 바라보며 몇 초 멍 때리고 있다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세 명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부모님이 살해된 건 어린 나이의 내게 큰 충격이었다.

 어째서 등교하기 전에 어머니께 짜증을 냈을까.

 어째서 툭 하면 부모님이랑 싸우고 그랬을까.

 갖가지 후회들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믿지 않았다.

 "걔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집에 들어왔던 사람은 없었다면서. 애가 죽였네."

 "게다가 등교하기 전에 엄마랑 싸우는 소리도 엄청 크게 들렸대."

 "요즘 애들이 참 무서워서 어떻게 사냐."

 [학업 스트레스의 폐해? 부모를 살해한 아이]

 [갈 수록 심해지는 '중2병' 부모까지 죽인다]

 [부모를 잔인하게 죽인 중2... 우리 아이는?]

 사람들은 나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냥감을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

 다음 사냥감을 발견할 때까지.

 지옥 같은 몇 주가 지난 후, 사람들은 실수로 국물을 애기한테 쏟은 직원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인간이 무섭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무릎을 오므린 채 키보드를 두들겼다.

 친구B는 이미 입시 학원 때문에 나 같은 건 잊은 지 오래였다.

 친구C도 점점 바빠지는 아르바이트 스케쥴에 언제부터인가 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친구A는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며 울면서 나간 이후 다시 볼 수 없었다.

 아, 그럼 방금 세 명은 누구지.

 나는 두 눈을 크게 깜빡거렸다.

 머릿속이 물 먹은 스펀지로 꽉 찬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서 빼 아무렇게나 올려놓았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이어폰에서 새어 나왔다.

 2년 전, 부모님을 죽인 것은 평소에 원한을 품고 있었던 옆집 아주머니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베란다를 통해 우리 집으로 들어온 그녀는 부모님을 잔인하게 죽인 후 태연하게 사람들 사이에 숨어 나를 욕했다.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언제 나를 욕했냐는 듯이 옆집 아주머니에게 죽으라는 말을 하루에 수백 개씩 쏟아냈고, 얼마 안 가 아주머니는 우리 집으로 들어올 때 사용했던 그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인간이 무섭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는 지가 무섭다.

 그들이 잔인하게 물어 뜯고, 찢어발기고, 가루로 만드는 모습이 무섭다.

 나는 끌어안은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그로부터 3년이나 지났지만, 세상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를 믿어줬던 친구 세 명에게 내 세상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었다. 그들은 결코 나를 이해해주지 못했고, 얼마 안 가 나를 버렸다.

 나는 하얗게 빛나는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았다.

 "......나가 볼까."

 이유는 없었다. 단지 신선한 공기를 쐬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 그렇구나. 난 이미 죽었구나.

 이미 전원이 꺼진 지 오래된 컴퓨터 화면에는 까맣게 말라 비틀어진 시체가 비쳐 보였다.

 이부자리 여덟 장만 펼치면 바닥을 다 덮고도 남을 정도로 좁은 방을 가득 채우는 썩은 냄새.

 나 혼자 여기서, 이 좁고 썩어 빠진 꿈 속에서 살아온 거구나.

 시체의 눈두덩이에서 방금 눈물 자국 하나가 흘러내렸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