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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교실 이야기

「무존재의 증명」


-1-


 텅


 텅


 잿빛 교실에 묵직한 망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실에서는 반복적인 망치 소리와, 함수의 연속성에 대해 설명하는 수학 선생의 모노톤 목소리만이 들렸다. 여학생이 교실 뒤쪽에서 망치질을 계속 하고 있어도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그런 무관심에 신경 쓰지 않고 밧줄을 천장에 매달았다.


 그녀는 자살했다.


 그러나 수업은 계속되었다.






-2-


 "선생님, 유라가 자살했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지금은 우선 이 문제가 급해요."


 "하지만 유라가 죽었는데요?"


 "일단 이 문제를 모두 설명하고 나서 이야기 합시다."


 "하지만-"


 "학생."


 "……"


 "학생이 지금 공부 안 하고 딴 생각하고 있든 말든 여기 누구도 관심이 없어요. 혼자서 그러는 건 뭐라고 안 하겠는데 만약 이렇게 계속 수업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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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앞줄 창가 쪽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커터 칼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그었다. 커터 칼로 한번에 손목의 동맥을 끊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학생은 계속해서 자기 손목을 그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손목에서 붉은 피가 흘러 넘쳤다.


 그러나 수업은 계속되었다.


 남학생은 울부짖었다. 더 이상 인간의 목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목을 긁으며 거칠게 포효했다. 온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가끔 너무 고통스러운지 칼을 떨어뜨리고 몸을 웅크리기도 했다. 그의 얼굴과 옷이 눈물과 피로 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곧 칼을 줍고 손목을 계속 그었다.


 결국 수업이 끝날 때 남학생은 자신이 흘린 거대한 피 웅덩이 위로 쓰러지고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쪽을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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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그의 일기장 내용은 전부 같았다.






-5-


 지후가 자기 목을 송곳으로 찌른 그 날 방과 후에 나는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벌써 삼일 연속으로 우리 반에서 세 명이 자살했어요."


 "선생님 지금 바쁘니까 다음에 이야기하면 안 될까?"


 "지금 뭐 하시는데요?"


 "너희 시험 서술형 답지 중에서 불량 답안을 골라내고 있어."


 "다 비슷하지 않나요? 그리 복잡한 문제도 아니었는데."


 "완벽히 같아야지."


 골라내고 남은 답안은 전부 같았다.


 나는 다시 말을 걸었다.


 "벌써 삼일 연속으로 우리 반에서 세 명이 자살했어요."


 "음,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유라랑 호정이랑 지후가 수업 중에 자살을 했어요."


 "나는 아직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우리 반에서 세 명이-"


 "음, 미안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학교에서 자살을 했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네?"


 "그러니까, 우리 학교에서 자살한 사람은 한 명도 없어."


 "아…… 그러네요."


 "더 이상 선생의 시간을 뺏지 말고 그만 가 봐."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착각했었나 봐요."


 그리고 나는 교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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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우리 학교에서 자살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럴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자살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 친구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래야 정상이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죽을 수도 없다.


 어쩌면 나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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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교실을 채우는 학생은 반 밖에 남지 않았다.


 여전히 교실은 잿빛이었지만 예전보다 쇠 비린내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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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시간.


 셀 수 없는 명사에는 고유 명사, 물질 명사, 추상 명사가 있다.


 고유 명사에는 Yura, Hojung, Jihu와 같은 사람이나 사물의 고유한 이름을 말한다.


 물질 명사에는 일정한 형태가 없는, 부분과 전체가 같은 물질을 말한다.


 추상 명사는 proof, death와 같이 형태가 없는 추상적인 개념을 일컫는다.


 남학생은 자기 눈에 칼을 깊숙이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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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 시간.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에는 배경, 상황, 상대방에 초점을 두며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


 말할 때에는 분명하게, 확실하게, 그리고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말한다.


 말하는 이의 행동을 보며 말하는 이의 의도를 파악하자.


 한 여학생이 유리창을 깨고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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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시간.


 돌연변이란 유전 정보가 기록된 DNA분자가 여러 요인에 의하여 원본과 달라지는 것이다.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그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단백질에도 영향이 미치고, 그에 따라 유전 형질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러한 영향이 쌓이게 되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의 가능성을 주게 된다.


 돌연변이의 원인 중 자연적 원인으로 유전 물질 복제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있다. 이러한 자연 발생적 변이는 100만 번의 DNA복제 중에서 한 번 정도의 비율로 일어난다.


 다른 여학생이 연필 한 다스를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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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 시간.


 수학적 귀납법은 수학에서 어떤 주장이 모든 자연수에 대해 성립함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이다.


 우선 첫 번째 명제가 참임을 증명한 후, 다음으로 k번째 명제가 참일 때 k+1번째 명제가 참임을 증명하는 순으로 이루어진다.


 수학적 귀납법은 이름과 달리 귀납적 추론보다는 연역적 추론에 가깝다.


 귀납적 추리란 경험적 사실로부터 추리를 하고 경험적 사실로 참/거짓을 판단하는 방법을 말한다.


 한 남학생이 전기 드릴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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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시간.


 전체주의는 집단을 개인보다 중요시하고, 개인은 전체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이다.


 학교 같아, 그렇게 생각했다.


 개인주의 사회의 교육기관이 전체주의적이라는 것은 꽤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개인은 무엇인가.


 나는 학교라는 집단의 구성원인 한 개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죽을 수도 없다.


 나는 내 머리를 향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14-


 내가 마지막으로 본 건 '나'의 모습을 열 명 정도의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이었다.


 모두 '나'다.


 ……그래선 '나'가 아니잖아.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15-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텅 빈 교실은 그저 조용했다.






Q.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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