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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는 글 쓰기 아주 좋은 곳이다.

 가끔씩 차갑게 굳은 두뇌를 커피로 따뜻하게 녹이면서, 때 이른 크리스마스 캐롤을 따라 흥얼거리며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긴다. 보장된 적당히 조용한 분위기와 무료 와이 파이, 여기저기 배치된 전기 콘센트는 내가 이 카페를 좋아하는 가장 큰 세가지 이유다.

 그러나 글 쓰기 좋은 곳이라고 해서 반드시 글이 잘 써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현재 내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하아, 소설 공모전 마감이 한 달 뒤인데 아직 소재도 구상 못하겠어."

 나는 비어있는 워드 프로세서 화면에 홀로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머릴 싸매 쥐었다. 분명 오늘 양치질 하다가 좋은 소재가 떠올랐는데. 글 제대로 써보려고 오랜만에 이른 아침부터 노트북 들고 카페로 왔더니 커피를 주문하는 틈에 다 까먹어버린 것이었다.

 이른 아침의 카페는 한산했다.

 내 건너 앞에는 근처 회사에 다니는 사람인지 정장 입은 남성이 앉아있었다. 그의 위에는 고장 났는지 전등이 깜빡거리고 있었는데, 그 남자는 앞에 노트북을 켜둔 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들고 가만히 전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전등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깜빡거리는 전등은 묘하게 시야를 주목 시키는 최면 효과가 있다.

 그 옆자리에는 롱코트를 입은 중년 여성이 앉아있었다. 그녀는 오렌지 주스를 스읍 빨면서 누군가를 유심히 주목하고 있었다. 그 시선 끝에는 창가 쪽에 앉아 창밖을 두리번거리는 앳된 얼굴의 키 작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자켓 주머니 속 무언가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 셋에서 한참 떨어진 자리에는 이 근처에서는 쉽게 찾기 어려운 중절모를 쓴 남성이 커피를 마시며 카페 속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 근처에는 웃고 떠드는 아줌마 셋이 앉아있었다.

 은은한 원두 향이 맴도는 카페의 공기를 스읍 흡입했다. 놀랍게도 마음이 진정되고 차분해졌다. 나는 다시 빈 워드 프로세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봤자 나오는 건 없었다. 뭐라도 써야지.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열심히 두들기기 시작했다.




 10분쯤 후에 카페에 20대로 보이는 남성이 들어왔다.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는 남성을 보자마자 창가 쪽에 앉아 있던 여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현재야!"

 "아, 응. 미나, 안녕."

 남성은 여성을 보자 쑥스러운지 볼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여성은 에헤헤 웃으면서 벙어리 장갑을 낀 손으로 남성의 손을 잡고 자리로 끌고 갔다.

 "여, 여기엔 왜 부른 거야?"

 "내일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있잖아......."

 여성은 곧 가방에서 종이 무더기를 꺼내며 과제에 대한 대화를 시작했다.

 아, 청춘이구나. 그래, 이번 소설은 풋풋한 첫사랑을 다룬 로맨스로 가볼까?

 내가 키보드를 두들기는 동안, 두 사람을 지켜보던 중년 여성은 주스를 스읍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아까까지만해도 과제 이야기를 하던 그 여성의 떨리는 목소리가 카페 내에 울렸다.

 "하, 할 말이 있어!"

 "응?"

 순간 카페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그, 그게, 그러니까,"

 보는 나도 침을 꿀꺽 삼켰다.

 "나, 나랑......."

 여성은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다.


 "나랑 사귀어줘!"


 순간 카페에는 정적이 흘렀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 둘을 향해 쏠렸다.

 어, 어떡하지, 남성은 당황해 하며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였다.

 "나, 나는,"

 여성은 답답했는지 까치 발 들고 대답을 망설이는 남성을 과감하게 끌어안아 입을 맞췄다. 그제야 남성도 여성을 껴안으며 뜨거운 키스를 나눴다.

 카페의 전원이 기립 박수를 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아줌마도 미소를 머금은 채 눈물 한 줄기 흘리면서 다시 자리에서 앉았다.




 뜨거운 고백 이후 20분쯤 지나자, 앞자리에 있던 남성이 컴퓨터에서 무언가 작성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성 위의 전등은 언제 고쳤는지 제대로 불 켜져 있었다.

 그는 옆에 걸어둔 코트를 걸치고 두리번거렸다. 그는 컴퓨터를 조심스럽게 검은 슈트 케이스에 집어넣은 뒤 옷깃을 새운 채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중절모의 아저씨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자리를 급히 떠나려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역시 당신이군."

 당황한 그는 손에 들려 있던 슈트케이스를 중절모 아저씨에게 휘둘렀지만, 중절모 아저씨는 오히려 그 슈트케이스를 양손으로 잡은 뒤, 무릎으로 내리쳤다. 덕분에 안에 있던 컴퓨터가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숨 죽이고 아줌마들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꺅 소리쳤다.

 정장은 칫 혀를 찬 후 슈트케이스를 멀리 집어던졌다. 슈트케이스가 벽에 부딪히면서 안의 컴퓨터 부속품들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장은 중절모에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중절모는 휘두른 팔을 잡은 후 그대로 정장의 남성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남성의 등이 바닥에 정통으로 부딪히면서 '헉' 하고 공기가 폐에서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정장의 남성은 바닥에 짓눌린 채 꼼짝 없이 중절모의 남성에게 제압 당했다.

 쓰러진 남성은 콜록콜록 기침 하면서 말했다.

 "다, 당신, 정체가 뭐야......!"

 "아까부터 의심스러웠어."

 그는 중절모를 고쳐 쓰며 말했다.

 "당신 위에서 깜빡이던 전등, 그건 분명 모스 부호였겠지? 당신은 그걸 받아 적고 있었던 거고."

 "어, 어떻게.....?"

 중절모의 남성은 훗 웃었다. 그리고 소매를 걷어 팔목에 찬 은색 시계를 쓰러진 남성에게 보여줬다. 그는 시계를 보자 눈이 커지더니, 하하 웃었다.

 "꼼짝 없이 당해버렸네."

 "그래, 그러니까 여기서 잠시 자고 있어."

 그의 말이 마치자마자 시계가 번쩍 빛나더니 쓰러진 남성은 어느새 눈 감고 바닥 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의 위에서 내린 중절모 남성은 탁탁 손을 털더니 오랜지 주스를 마시면서 지켜보던 여성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여성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손목에도 같은 은색 손목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중년 여성은 또각또각 힐 소리를 내면서 창가 쪽을 향해 걸어갔다.

 "저기, 현재 씨?"

 현재라는 이름의 청년은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에 대해 어안이 벙벙했다.

 "현재 씨, 옆의 저 여자는 누구죠?"

 "오, 오빠?"

 "나, 나는 모르는 사람이야!"

 "어머, 현재 씨 그러시면 안 되죠. 저와 같은 밤 자리도 나눴잖아요."

 중년 여성이 후훗 웃자 미나의 두 눈이 커졌다.

 "오빠......?"

 "아, 아니야! 아니라고!"

 현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중년 여성에게 따졌다.

 "누구세요? 누구신데 저한테 이러시는 거에요?"

 "현재 씨, 이러시면 곤란해요."

 "아니, 진짜 누구세요?"

 "어라, 나는 현재 씨 아주 잘 아는데. 왼쪽 겨드랑이랑 엉덩이에 점이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도."

 중년 여성은 다시 후훗 웃자 현재의 얼굴이 붉어졌다. 현재의 두 팔이 떨리더니 중년 여성의 멱살을 잡았다.

 "진짜 누구세요, 왜 저한테 이러시는 거에요, 네? 전 진짜 당신이 누군지 몰라요, 전 이렇게 늙은 사람이랑 잠 자리 가져본 적도 없고요, 당신이 어떻게 제 점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만!"

 미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오빠, 그만 해!"

 거친 숨을 내쉬면서, 미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처럼 입술을 열었다 닫는 것을 반복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거칠게 가방과 종이 무더기를 챙기며 빠른 발걸음으로 자리에서 떠났다. 카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미나는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봐도 그녀가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멀어지는 것을 벙찐 채 바라보던 현재는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아, 아아, 아아......."

 중년 여성은 그제야 웃음 가득한 표정을 풀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그 말만 남기고 여성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중절모 남성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걸로 된 거죠."

 중절모 남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걸로 오늘 둘의 만남은 없었던 걸로 할 수 있어요."

 놀랍게도 둘의 모습이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키보드에서 잠시 손을 떼고 둘을 지켜보았다.

 중년 여성은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저희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건가요."

 "그것이 이 세계의 운명인 걸요. 우리의 사랑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어요."

 "하, 하지만, 이 세계의 운명이 저희 둘에게 달려있다니, 너무 불합리해요!"

 중절모 남성은 중년 여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는 훌쩍이면서 말했다.

 "우리, 마지막으로 그때처럼, 아니 오늘처럼 해요."

 "오늘처럼......?"

 그러나 중절모 남성이 말을 이해할 틈도 주지 않고 중년 여성은 그를 과감하게 끌어안아 입을 맞췄다. 그제야 중절모 남성도 중절모가 벗겨진 것도 모르고 그녀를 꼬옥 안은 채 뜨거운 키스를 나눴다.

 현재는 그 상황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다가 문득 그 옆 탁상 위에 USB가 있는 것을 보았다. 저기 쓰러져 있는 남성의 것인가. 현재는 일어서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그 USB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그 USB를 집어 들자마자 중절모 남성이 바로 그에게서 낚아 채 두 손가락으로 USB를 수백 개의 파편으로 부숴버렸다.

 "어이쿠, 모든 건 내가 이 USB를 주우면서 시작 됐거든. 미안하지만 이건 줄 수 없어."

 "세계 3차 대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단다, 꼬마야. 준비하고 있어."

 "50년 뒤, 세상은 네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달라질 거야."

 현재는 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중년 여성과 중절모 남성은 다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이 찬 손목시계가 점점 빛나기 시작했다.

 "갈까요, 현재 씨?"

 "그래요, 미나 양."

 눈 부신 빛이 카페를 감쌌다.

 눈을 한번 더 깜빡이자 둘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꿈이었던 걸까?

 나는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직 몇 문장 밖에 없는 워드 프로세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중얼거렸다.

 "이거,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나는 작성한 문장들을 전부 지운 후 노트북 전원을 껐다. 가져온 충전기와 자료들을 주섬주섬 가방 안에 집어넣은 후,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카페에서 빠져나왔다.

 가끔 현실이 소설을 너무 앞서나가서 너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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