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뮬레이션 게임의 묘미는 역시 현장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지배감 아닐까.

 초기 조건을 구상하고, 이후의 성장을 주도하고,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쳐올 때는 그때마다의 순발력과 판단력으로 지휘해 상황을 대처한다. 그것은 마치 애완동물과 함께 성장하는 어린아이, 식물을 키우는 정원사, 아이를 키우는 부모,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자, 그리고 우주를 창조하는 신의 기분과 같다.

 "그러니까 시뮬레이션 게임이 '재미' 있다고 볼 수도 없겠죠.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정유나는 화면을 빼곡히 채운 고정폭 글자들을 훑어보며 재빠른 손놀림으로 코드를 수정했다.

 "정유나 씨 아들이 지금......?"

 "여덟 살이에요.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했는데 벌써부터 불안하기 시작하네요."

 정유나의 깊은 한숨에 옆자리 정철훈은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둘은 시뮬레이션 게임 전문 회사의 직원들이다. 현재 이들이 개발 중인 게임은 초대형 스케일의 우주 시뮬레이터로 크게는 은하, 작게는 한 행성의 문명을 직접 키우고 컨트롤 할 수가 있다.

 철훈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을 들면서 말했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마니악한 느낌도 없지 않으니까요. 저희 게임도 그런 매니아가 주요 타켓층이고."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 모델을 사용한 시뮬레이션 게임....... 말만 들으면 참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철훈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옆의 타다다다 빠른 타자 소리가 리듬감 있게 들려왔다. 철훈도 컴퓨터 화면의 알록달록한 문자열을 보면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야 현실을 재현할수록 플레이어가 더 전지전능한 위치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예상 때문이겠죠. 실제로는 그 반대지만."

 "솔직히 전 이 더럽게 복잡한 게임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예요.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남아돌면 이런 게임을 할 수 있는 걸까요?"

 "그러니까 매니아죠. 진입장벽이 높지만, 그만큼 빠져나가기도 어려운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철훈의 손가락도 이리저리 자판 위를 옮겨 다녔다.

 둘의 타자 소리가 이른 아침의 사무실을 가득 채운다.

 시곗바늘 소리도 묻혀 시간 감각이 점점 사라진다.

 유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신도 참 힘들겠네요."

 "네?"

 "전 아이 하나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신은 우주를 키우잖아요."

 "어쩌면 신이 한 건 맨 처음 아주 작은 불꽃을 일으킨 것뿐이고 그 이후는 우주가 알아서 커진 걸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신은 처음부터 완벽한 코드를 짰다는 거군요.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신 아닐까요. 전지전능한 그런 사람."

 유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전 믿을 수 없어요. 처음부터 완벽한 코드를 짠다는 것 자체가 전두엽에 쥐 날 것 같단 말이에요. 그런 미친 짓을 굳이 하는 사람을 전 이해할 수 없어요."

 "하하, 어쩌면 그들도 저희처럼 돈 받고 우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죠."

 철훈이 하하 웃자 유나도 따라 하하 웃었다.

 "기분이 묘하네요. 우리가 실은 시뮬레이터 속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건 말하자면 그거잖아요, 우리도 이 수많은 문자열에 불과하다는 거."

 "그러게요. 하지만 전 실제로 신이 있다고 믿진 않아요. 우리가 시뮬레이터 속이라는 것도 잘 모르겠고요."

 철훈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희 게임도 결국 간략화 간소화를 거친, 어떻게 보면 은하라고 하기에도 부족하고 문명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초라한 게임이잖아요. 현실은 이 정도로 단순하지 않아요."

 철훈은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유나가 물었다.

 "그런데 아까까진 신은 전지전능하니까 완벽하고 복잡한 코드를 짤 수 있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하지만 역시 뭐, 그것도 와 닿지 않고. 게다가 미시세계처럼 불확정성의 원리에 크게 영향받는 현상들이 저희 현실 세계에 영향 주고 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기계론적 세계관은 무리라는 소리군요."

 "그래요. 이 세계는 톱니바퀴나 물리 엔진처럼 딱딱 떨어지지 않아요.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빈틈과 허점들이 저희 세계를 지배하고 있죠."

 "재미있는 생각이네요. 하긴, 역시 이 우주를 누군가가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백스페이스 버튼을 타타탁 두들겼다.

 철훈도 머그잔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역시 이 세계가 프로그램이라는 걸 믿는 건 무리다.






 ".....라고 AI들은 스스로 판단할 것입니다."

 Π-MEGQ00224는 의사전달했다.

 "이 난수 프로그램 'heisenberg'를 차원격자 단위로 심음으로써 AI들은 자신들이 시뮬레이터 속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즉, 추상(심리적) 함정인 것이죠. 따라서 AI의 의미 과포화(Semantic Satiation)로 인한 정체성 혼란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네요."

 Γ-MCGQ00265는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Π-MEGQ00224는 지금 막 완성한 프로그램 COPENHAGEN을 Γ-MCGQ00265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아마, 만에 하나 3차원의 생물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에게 둘은 그저 서로 전자기적 정보를 주고받으며 깜빡이는 불빛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분명, 조금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엄연한 생물체이자 고등지능 문명의 일원들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COPENHAGEN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이죠?"

 Γ-MCGQ00265는 의문을 표했다.

 "우주객체의 단순화를 통한 시뮬레이션입니다."

 Π-MEGQ00224가 답했다.

 "아시다시피 현재 우주에는 10.58±Δ차원인 우주객체가 10^10^10^7개 현존합니다. 그 구조복잡도(α)는 반올림해서 0.63, 추상복잡도(β)는 반올림해서 0.71, 상호복잡도(γ)는 0.84입니다. 이러한 우주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각 객체를 단순화시킨 시뮬레이터로는 대강의 예상이 가능하죠. 여기에 더 현실적 요소를 추가하면서 우주객체의 완전한 시뮬레이션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최종목표는 역시 이 다중우주의 완전 시뮬레이션이지만, 불가능하겠죠."

 Γ-MCGQ00265는 4차원 문자열을 검토하면서 말했다.

 "차원격자 단위 난수 프로그램은 확실히 흥미롭네요. 하지만 역시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이런 의문도 떠오를 수밖에 없겠죠."

 Π-MEGQ00224가 말했다.

 "'이 우주 역시 프로그램(시뮬레이터)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하지만 방금 이야기했듯이 이 우주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뒷받침해줄 수 있는 초대형 용량의 연산기계도 없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이를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초고등지능의 존재가 진화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흠, 그런가요."

 Γ-MCGQ00265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럴 거라고 저희가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고도의 추상 함정, 일지도 모르지만요."






 A는 둘의 대화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는, 정확히 말하면 그 "집합체"는 백색의 큐브 형태의 11차원 화면을 통해 둘의 대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둘 역시 그들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의 일부에 불과했다.

 A는 웃었다.

 초대형 용량의 한계는 공간의 한계에서 온다. 그것은 가상우주에 본체를 둠으로써 해결했다.

 진화론적 한계는 생물체 한 객체에서 온다. 그것은 집합체로서의 진화로 극복했다.

 고도의 추상 함정 같은 거추장스러운 건 필요 없었다. A는 그저 자신의 능력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결론까지 도달한 것만으로도 놀라운 결과라고 A는 생각했다.

 어쩌면 큐브 속 문명은 자신들의 문명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수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동안 A의 문명은 기하급수적 발전을 통해 또 다른 문명적 한계를 극복한 상태일 것이다. 마치 제논과 거북이와 같은 관계다.

 A는 큐브에서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우주의 한 점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곧 저곳에 새로운 별이 생겨날 것이다.

 A는 이미 초고등지능의 수준을 뛰어넘은 존재였다. 그가 사는 우주는 Π-ME 어쩌구가 만든 난수 프로그램 따위는 끼어들 틈도 없는 완벽한 기계론적 세계관이었다. 그곳에서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계산할 수 있는 지능만 가지고 있다면 우주는 A의 손안에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A는 성운이 왜곡된 공간으로 모여 소용돌이를 이루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미 지능의 한계를 뛰어넘은 A였지만, 탄생과 소멸의 순간은 신비 그 자체였다. 곧 가스 원반에서 조그마한 불빛이 태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A는 "행복"의 감정을 느꼈다.


 그 순간 별로부터 멀지 않은 위치에 16px짜리 구멍이 생겼다.






 "철훈씨, 거기에 텍스쳐 깨지는 버그가 있대요. 고쳐주세요."

 "이런 16픽셀짜리 빈틈을 도대체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쳇, 알았어요."

 철훈은 투덜거리면서 키보드를 두들겼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