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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이 멈췄다.

 순식간에 온몸의 피가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사방은 창문 하나 없이 어두운 방이었다. 파이프를 통과하는 액체 소리, 피스톤이 왕복하는 소리, 삐걱삐걱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흐릿한 머릿속에서도 반복적으로 울려퍼졌다. 기계장치의 비릿한 쇠냄새가 무의식으로 멀어지는 나를 깨우듯이 내 코를 쿡쿡 쑤셔왔다.

 결박된 팔 다리에서 힘이 스르륵 빠졌다.

 의자에 묶인 채, 점점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보이는 것은 내 심장을 움켜쥔 그녀였다.

 그녀의 옷과 머리가 내 피로 점점 붉은 색으로 물들어갔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생명이란 건, 단순하구나."

 그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간단한 손동작으로도, 인간은 죽는구나. 생명이 끝나는구나."

 그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마치 노래처럼 들려왔다.

 나는 떨리는 동공으로 그녀의 미소를 바라보았다.

 손을 뻗어 그녀의 새하얀 얼굴을 향했지만, 내 손은 결코 닿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는, 나의 그런 나약한 모습이 우스운 건지, 후훗 하고 웃었다.

 아름다운 미소다. 나는 불투명해지는 머릿속에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순백의 옷을 입은 은발의 천사와 같은 모습을 한 그녀에게 나는 한눈에 반했었다.

 나는 말라가는 입술을 겨우 열었다.

 "......"

 그러나 입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뻐끔거렸다.

 그녀는 쿡쿡 웃었다. 그녀가 손에서 힘을 살짝 살짝 뺄 때마다 차갑게 식은 피가 온몸을 한 바퀴 도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안개 같은 어딘가에서 헤맸다.

 "너는 정말 약해."

 그녀의 차가운 말들이 나를 관통했다.

 "너는 정말 추해."

 온 몸이 내 피로 더럽혀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심장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심장은 강력한 근육힘으로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그녀에게 내 심장은 겨우 말랑말랑한 햄스터와도 같았다. 내 심장이 귀엽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다시 쿡쿡 웃었다.

 그녀가 무섭다.

 머릿속이 점점 새하얘졌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곧 끝날 내 생명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생각한다. 뇌에 산소 공급이 끊겨 사고가 멈추기까지 걸리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불합리하게도 너무나 짧은 시간. 그러나 한 생명의 불꽃이 꺼지기엔 충분히 긴 시간. 그때 동안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단 하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씨익 웃었다.

 그녀는 인간의 상식이라는 나약한 상자를 간단히 깨부순 존재였다.

 이미 시야는 뿌옇게 흐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내게 다가와 바짝 밀착해 차갑게 식은 내 몸을 꼬옥 안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등 뒤에서 뻗어 나온 피투성이 호스들을 가지런히 모아 한 손에 담은 후, 내 등 뒤에 그 호스들을 정성스럽게 꽂기 시작했다.

 "너는 이제 영원히 내 피로 살아가는 거야."

 그녀의 속삭임이 메아리치면서 온몸에 따뜻한 온기가 등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다시 뚜렷해지는 정신 사이로 그녀의 심장 소리가 콩 콩 콩 들려왔다. 그녀의 심장이 뛸 때마다, 내 안이 그녀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온기가, 그녀의 사랑이, 그녀의 영혼이, 혈관을 타고 내 심장에 도달한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 얼굴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입을 맞췄다.

 우리는 이제 하나가 된다. 살얼음처럼 불안정한 관계 위에서, 오직 어지럽게 엉킨 몇 가닥의 호스들에만 의존해서, 나와 그녀는 사랑을 나눈다.

 생명을 유지해간다.

 생명이란 건 단순하니까.

 생명 = 사랑.

 한 남자를 미치도록 사랑했던 한 천사와, 그녀를 죽을 정도로 사랑했던 한 시한부 과학자가, 마지막의 마지막에 만들어 낸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


 그녀의 등 뒤로 피투성이 날개가 마침내 활짝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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