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침에 사물함을 열어보니 쿠키크림 막대과자가 있었다.

 "......뭘까요, 이건."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하얀 상자를 꺼내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발신자가 적혀 있지 않은 게 왠지 수상해 보였다. 흔들어보니 안에 분명 무언가가 들어있긴 했다.

 "누군가 실......수로 넣진 않았겠지."

 설마 그렇다 해도 내가 먹을 거지만.

 나는 뒤돌아 반을 둘러보았다. 어떤 애는 책상에 막대과자 상자들을 쌓아 놓고 있었고, 어떤 애는 막대과자를 반 애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서로 교환하는 학생들도 있는가 하면 누구 몰래 줄 건지 주변을 힐끔 힐끔 살피면서 상자 위에 뭔가 적는 여학생도 있었다.

 "아, 오늘이구나."

 11월 11일.

 막대과자의 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막대과자를 선물해준다는 기념일로, 실은 제과회사의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지만 다들 그걸 알고서도 왠지 모르게 즐기게 되는 날이다. 그야말로 바보 대잔치, 돈낭비 대잔치다. 그래도 우린 중학생이니까, 중학생답게 상술에 걸려주자고요.

 나는 1교시 영어 필기 노트를 사물함에서 꺼내며 막대과자를 치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 자리에 가서 앉아 내 앞자리에 앉은 혜인이를 검지로 툭툭 건드렸다. 혜인이가 내게 뒤돌아봤다.

 "응, 지연아 왜?"

 "이거, 너도 받았나 해서."

 내가 쿠키크림 막대과자를 꺼내 보이자 혜인이는 자기 책상 위에 놓인 서너 개의 막대과자들을 보여줬다.

 "오늘 막대과자 날이잖아. 하나씩은 다 받을걸?"

 "하나도 못 받는 사람도 있지만."

 나도 이 정체불명의 막대과자가 유일하고.

 "내 말은, 너도 사물함 안에 막대과자가 들어있었냐는 거야. 보통은 책상 위에 올려놓잖아."

 "아~ 사물함? 아직 안 열어봐서 모르겠는데."

 혜인이는 내 말 듣고 나서 자기 사물을 총총 걸어갔다. 잠시 후, 그녀는 자리에 돌아와 내게 아몬드 막대과자를 보여줬다. 나는 그녀의 손 위의 초록색 과자 상자를 살펴보았다. 역시 발신자는 적혀있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가 반 전체에게 나눠준 건가?"

 "글쎄? 희진아!"

 혜인이는 근처에서 수다 떨고 있던 희진이를 불렀다.

 "응, 왜?"

 "너도 사물함에 이런 거 있었어?"

 "아까 봤을 땐 없었어."

 "응, 땡큐."

 혜인이는 다시 나를 향했다.

 "안 받은 애들도 있나 봐."

 "누가 준 건지 모르겠지만. 너도 받은 걸로 봐서는 고백 과자도 아니고."

 혜인이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같이 으쓱이면서 과자를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별 거 아니겠지."

 "응. 아 참, 이거."

 혜인이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 책상 위에 막대사탕을 올려놓았다.

 "이건 어제 교과서 잠시 빌린 거."

 "됐다니까, 몇 분만 잠깐 빌린 걸로는."

 "어차피 몇 백원 밖에 안 하는 거니까 그냥 받아."

 혜인이는 헤헤 웃으며 내게 엄지를 척 보였다. 나도 그냥 피식 웃었다. 혜인이는 원래 이런 구석이 있다. 빚진 것에 대해서는 갚으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같이 지내왔지만, 혜인이의 이런 성격은 여전한 듯하다.

 잠시 때아닌 옛날 추억에 빠져 "그때도 이랬지" 같은 할머니스러운 생각에 잠겨있었을 때, 그러나, 사건은 터졌다.


 "누가 내 영어 공책 훔쳐간 거야?"






 우리 학교 사물함은 보안이 취약한 편이다.

 자물쇠를 걸어 놓아도 사물함 뒤에는 환풍구 같은 구멍이 뚫려있어서, 사물함을 기울여서 그 뚜껑을 열고 손을 집어넣으면, 어떻게든 안의 내용물을 꺼낼 수가 있다. 물론 이런 힘들고 눈에 띄는 도벽 행위는 누구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반대로, 작정하면 누구든 남의 사물함에서 훔쳐갈 수 있다는 뜻이다.

 영어 공책을 도난 당한 학생은 우리 반 영어 1등 김규식이었다. 동그란 안경에 바가지 머리는 누가 봐도 공부에 매달릴 것처럼 생긴 학생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이 암기인 우리 학교 영어 시험은 그 누구도 김규식을 따라갈 자가 없었다.

 김규식은 아침부터 방방 뛰면서 소리 질렀다.

 "야, 누구냐 이거? 사물함 열어보니까 어질러져 있길래 봤더니 영어 공책이 사라져 있잖아!"

 "아침부터 시끄러워 죽겠네."

 "너냐? 너냐고!"

 정말 아침부터 저런 모습이나 봐야 한다는 제 자신이 너무 불행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규식을 향해 다가갔다.

 "너냐?"

 "아니 너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러는데."

 나는 열려있는 그의 사물함을 바라보았다. 김규식의 성격이면 노트와 교과서가 딱딱 정리되어 있어야 되겠지만, 그의 사물함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꺼냈다 집어 넣다를 반복했는지 몇몇 교과서의 책등에는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나 있었다.

 "남의 사물함 뒤지지마!"

 "날뛰지 마, 있는 단서도 안 보일 거 같으니까."

 내가 김규식을 쏘아보자 그는 윽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쯧 혀를 찬 후 다시 사물함을 향해 눈을 돌렸다. 눈매가 무섭다는 말은 이제 지겨울 정도로 자주 들었다.

 수많은 공책들과 교과서들을 파헤치던 중, 나는 부자연스러운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어라, 이건?"

 나는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은 사물함 맨 뒤에서 무거운 교과서 더미와 사물함 벽 사이에 짓눌려 구겨진 빨간 막대과자 상자였다.

 나는 김규식에게 막대과자를 보였다.

 "이거, 네가 넣은 거야?"

 "내가 그런 걸 넣을 거 같냐?"

 "그냥 확인차 물어본 거야."

 나는 막대과자 상자를 김규식에게 넘겼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상자의 상태가 사물함 뒤에 넣어야지만 나올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물어볼 것도 없었다.

 나는 내 사물함으로 자리를 옮기고 열어보았다.

 예상대로 내 국어 필기 노트가 사라져 있었다.

 확인 한 후에는 바로 옆의 혜인이의 사물함을 열어보았다.

 역시나 사물함 안에는 그녀의 수학 필기 노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혀를 쯧 찬 후 두 사물함을 모두 닫았다.

 "뭐 알아낸 게 있는 거야?"

 김규식이 말하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그리고 나는 내게 시선이 집중된 반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이건 아마도.......

 "......우리 말고 이 엽기 도난 사건을 당한 사람이 있다는 건 알 것 같아."






 1교시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각자의 사물함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우리 반에서 필기 노트를 도난 당한 것은 총 다섯 명이었다.

 정유진의 사물함에는 사회 필기 노트 대신 노란 막대과자 상자가 있었다.

 송지수의 사물함에는 과학 필기 노트 대신 분홍 막대과자 상자가 있었다.

 김규식의 사물함에는 영어 필기 노트 대신 빨간 막대과자 상자가 있었다.

 혜인이의 사물함에는 수학 필기 노트 대신 녹색 막대과자 상자가 있었다.

 그리고 내 사물함에는 국어 필기 노트 대신 하얀 막대과자 상자가 있었다.

 "일단 과자는 제대로 들어있어."

 정유진은 과자 상자를 뜯어 안의 봉지를 보여줬다.

 부서진 막대과자들이 좀 있었지만 상태도 그럭저럭 양호한 편이었다.

 "누군가의 장난일까?"

 송지수가 말하자 김규식이 화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건 분명 우리들의 시험 공부를 방해하기 위한 고도의 함정이라고."

 실제로 필기 노트를 도난 당한 과목들은 각각이 특기인 과목이었다. 안 그래도 학교 내 상위권 학생들이 몰려있는 2학년 1반, 그 중에서도 탑5인 우리들의 노트가 도난 당한 것이었다. 이건 대놓고 우리들을 노렸다고 해석될 수 있었다.

 막대과자의 날을 노린, 막대과자 엽기 도난 사건.

 "누가 한 짓일까요, 탐정님?"

 혜인이가 나를 보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살짝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혜인이는 피식 웃었다.

 "지연이 귀여워."

 "안 귀엽거든."

 자,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려고 할 때쯤 2교시를 알리는 종이 쳤다.

 나는 혀를 쯧 찬 후 말했다.

 "점심시간에 다시 모이자. 그때 되면 아마 생각날 거 같아."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인 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도대체 나를 어디까지 믿는 거야, 이 녀석들은.

 "부탁할게, 탐정님?"

 "그러니까 아니라고."

 혜인이는 쿡쿡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나 역시 한숨을 푹 쉬며 내 자리로 돌아갔다.






 2교시는 사회시간이었다.

 늙은 할머니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우리들에게 프린트를 나눠줬다. 프린트를 뒤로 다 돌린 후, 수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책상 위에 엎드리는 친구들이 보였다. 사실 사회시험은 전부 사회 프린트에서 나오기 때문에 수업을 안 들어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긴 하다. 게다가 수업 자체가 사회 프린트를 거의 그대로 읽는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나 조차 필기의 필요를 못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프린트가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는 점?

 사회 시험에서 지금까지 전부 100점 맞은 정유진은 정보해석력이 뛰어나다. 이것은 수업 내의 지식을 암기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정보들을 해석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해내는 데 탁월하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외로 까다로운 사회 서술형 시험들도 그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그의 능력 덕분인지 정유진은 국어도 나만큼이나 잘하는 편이었다.

 정유진이 받은 과자는 노란 막대과자. 튜브형 과자 안에 초콜릿 필링을 채운 과자였다.


 3교시는 수학시간이었다.

 대머리 중년 선생님은 들어오신 후 졸린 목소리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시작한 지 5분 만에 벌써 코를 고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일명 수면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이 선생님의 목소리는 듣기만 해도 지루해서 금방 잠이 오기로 유명하시다. 그걸 본인도 알고 있는지 설명을 하다가도 뒤를 돌아보신 후 "어이구, 오늘은 별로 안 자네?" 하고 껄걸껄 웃으실 때도 있다. 그때마다 이미 절반쯤 초토화된 교실에서 남은 학생들은 선생님을 따라 지친 목소리로 하하 웃는다.

 다행히도 수학 시험은 쉬운 편에 속했다. 교과서에 나온 문제의 수준을 거의 벗어나지 않으며, 시중에 나온 문제집만 풀어도 85점 이상은 기본적으로 받을 수 있다고 뼛속 깊이 문과인 내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험도 90점 이상은 '선택받은 자'들만 올라갈 수 있는 경지였다. '골든 문제'라고 불리는 5점짜리 문제가 객관식으로 하나, 주관식으로 하나가 나오는데, 이 문제는 난이도가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왠만큼 수학 잘한다고 자부하는 학생들도 쉽사리 맞추기 어려워했다. 보통 이런 문제는 시간 부족으로 틀리기 마련인데, 계산이 빠른 혜인이는 골든 문제 이외의 문제들을 전부 푸는 데 걸리는 시간이 별로 안 걸리기 때문에 골든 문제를 풀기 넉넉한 시간이 항상 남는다고 한다.

 혜인이가 받은 과자는 녹색 막대과자. 초콜릿 위에 아몬드가 솔솔 뿌려진 막대과자로 혜인이가 특히나 좋아하는 막대과자이기도 했다.


 4교시는 과학시간이었다.

 "다음 주 기말고사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냐!"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이 뚱뚱한 아줌마는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는 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시청각 자료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들도 수업 중간 중간에 설명해주신다. 그 내용들 중에는 선생님 본인이 "시험에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하시는 내용들도 있으며 그 내용들은 대부분 시험에 정말로 나온다. 그러니 한번 집중을 놓치면 시험 문제가 하나씩 날아갈 수도 있다. 단점이라면 그런 곁가지 상식들 때문에 수업이 산만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는 점?

 그럴 때마다 송지수의 필기 실력이 부럽게 느껴진다. 수업의 내용들을 빼 먹지 않으면서, 내용들의 배치를 적절하게 해 산만한 수업이라도 한눈에 보기 좋은 필기로 바꾸는 능력. 송지수의 필기의 덕을 본 적도 한두 번 있었는데, 보면 볼 수록 그녀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송지수 본인도 평소에 과학에 대해 아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물어보면 바로 바로 답해준다.

 송지수가 받은 과자는 분홍 막대과자. 딸기 초콜릿을 바른 막대과자로 송지수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그래서 범인이 누구야?"

 성격 급한 김규식이 먼저 물었다.

 "그래, 이런 식이면 필기가 계속 밀리게 된다고."

 송지수도 불평했다.

 "반 애들 불러 모으는 게 좋을까?"

 정유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진정해 봐. 어차피 나도 답하기 곤란하고."

 "범인이 누군지 모르는 거야?"

 김규식이 화 내자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뭐 그런 식이야."

 "넌 아직 노트가 필요 없어서 제대로 생각 안 하는 거지?"

 "뭔 소리야 5교시가 국어인데."

 김규식의 멍청한 소리를 더 듣기 싫어서 나는 얼른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이 범인은 다음주로 넘어가기 전에는 공책 돌려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

 "네가 어떻게 아는데?"

 나는 내 하얀 과자상자의 뒷면을 보여줬다.

 그곳에는 '잠깐 빌려가겠다고 전해주세요. 며칠 뒤에 돌려드릴게요.'라고 적혀있었다.

 "하, 그걸 믿냐?"

 "그럼 넌 믿지 말고 받지도 말던가. 지금 막대과자 받은 것도 당장 버리고."

 정유진이 깨달았는지 "아," 소리를 냈다.

 "혹시 그러면 막대과자를 사물함에 넣은 건?"

 "응. 잠시 빌려가는 대신에 그 비용이라고 해야 하나 그 대용으로 넣은 거지. 그냥 빌려가기에는 미안하니까."

 "그러면 그렇게 말하지."

 송지수는 기분이 오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끄럽거나 곤란한 거겠지. 아무튼, 우린 범인이 남긴 막대과자를 먹으며 기다려주자고."

 "그런 식으로 어물쩡 넘어갈 거냐?"

 "막대과자 버리라고 그러면."

 내가 다시 째려보자 김규식은 깨갱 물러섰다.

 사건 종료. 뒷맛이 찝찝했지만 친구들은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거짓말쟁이."




 혜인이는 쿡쿡 웃으며 말했다.

 "아까 보여줄 땐 뒷면에 아무 것도 안 적혀있었잖아."

 혜인이는 내 과자상자 뒷면에 적혀 있는 그 문구를 가리켰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잘 넘어갔잖아, 범인 씨."

 "호오, 탐정님이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지 너무 궁금한데요?"

 "단순해. 이런 짓을 할만한 녀석은 너밖에 없기 때문이야."

 공책 빌려가는 대신에 빼빼로를 남긴다니, 빚 지기 싫어하는 그녀다운 발상이었다.

 "흐음, 나는 다른 녀석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너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어."

 "실수?"

 "응."

 나는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그건 네가 자기 자신의 수학 필기 노트를 훔쳐갔다는 거야."

 "자기 자신의 노트는 아무나 훔칠 수 있었어."

 "하지만 아무도 수학 필기 노트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아."

 혜인이는 몇 초 벙찐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우와 정말이네, 나 정말 바보인가 봐."

 "멍청이."

 "그런데 사회 필기 노트도 필요 없지 않아?"

 "걘 사회만큼 국어도 잘 해서 내 국어 필기 노트가 필요 없어, 멍청한 너와는 달리."

 "칫, 지연이 얄밉다."

 혜인이는 웃으면서 내 볼을 쿡쿡 질렀다.

 다들 분위기 무섭다는 나를 이렇게 귀여운 생물 대하듯이 하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춰지는 걸까. 단지 오래 알고 지내왔을 뿐인, 귀엽고 우스운 학생A?

 "사실 이대로 훔친 채로 있다가 시험 직전에 돌려줄 생각이었지만, 지연이가 이번 주 내로 돌려 달라고 했으니까 어쩔 수 없네. 에이 아쉬워라."

 "참 너다운 발상이네."

 시험 공부를 방해한 대신에 빼빼로로 미리 갚는다니, 얼마나 비뚤어진 생각인가.

 하지만 혜인이는 예전부터 그런 구석이 있었다. 빚진 것에 대해서 갚으려고 하는, 대신 뭐든 빚져도 상관없는 듯한 그런 성격.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그녀는 이런 식이었다.

 "하이고야, 난 화장실에 가야지."

 그녀는 기지개를 피면서 교실 문을 향했다.

 "혜인아."

 "응?"

 그녀가 나가기 전에 나는 그녀를 불러세웟다.

 "그, 그러니까, 사실 한 가지 안 말한 게 있어."

 혜인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른 애들이 받은 과자는 1000원짜리였어."

 나는 심호흡을 한 후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 건 1500원이었어. 혹시 이유가 있는 거야?"

 "으음~ 글쎄?"

 혜인이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척하더니 내게 성큼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내 턱을 잡아당기더니 내 입술 위에 그녀의 것을 포개었다.

 "......."

 "......."

 그녀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 감촉이 느껴지는 순간, 온 세상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그녀는 입술을 떼낸 후 나를 보며 헤헤 웃었다.

 "알아서 잘 생각해 봐."

 그녀는 그대로 교실 문으로 나갔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나간 문을 향해 벙찐 채 바라보았다. 볼에 손을 대 보니까 불처럼 뜨거웠다.

 "......쳇."

 나는 혀를 찬 후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엉뚱하고, 비뚤어지고, 속은 엉큼한 혜인이었지만, 난 역시 이런 그녀를 싫어할 수가 없었다.

 과연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아까의 그것도 그녀가 평소에 자주 하는 장난의 일부일 뿐이었던 걸까?

 막대과자 만큼이나 부러지기 쉬운 관계 위에 우리 둘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