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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학교 이야기

「몽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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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전교생은 강당에 모여 교장 선생님의 훈화와 기타 공지를 듣는다. 강당엔 가면을 쓴 학생들로 가득하다. 같은 복장과 같은 헤어 스타일. 심지어 약물을 이용해 키까지 같은 학생들을 구분하는 유일한 방법은 교복 앞뒤의 번호이다.


 번호 1919호는 생각한다.


 이 학교의 시스템에 굴복한다는 것은 내 청춘의 아까운 시간을 그저 쓸데없는 없는 곳에 버리는 거잖아. 이래선 꿈도 희망도 없어.


 나는 내 꿈에 내 청춘, 내 모든 것을 걸겠어.


 스스로 멋진 생각이라고 평가한다.


 1919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달린다.


 교장의 훈화와 선생의 외침을 뒤로 한 채 1919호는 강당의 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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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는 아직 밤이 오기 전인 30년 정도 전일 거야."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훈화. 아마 그 부분쯤에서 1919호는 강당에서 나갔을 것이다. 필수 교육 기간 6년 동안 전면 기숙사제가 된 이후 1919호는 한 번도 학교 건물을 나가본 적이 없다. 그리고 1919호는 어렸을 적 기억이 남아 있는 그 곳으로 가기 위해 학교 건물 밖을 향해 달린다.


 아직 건물을 나가기 위해선 기다란 복도와 수많은 계단을 지나야 한다. 게다가 뒤에선 선생들이 따라오고 있다. 그러면 뭐 어때, 멋진 청춘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걸. 1919호는 이를 악물고 계속 달린다. 선생도 이를 악물고 뒤쫓는다.


 당신의 어렸을 적의 꿈을 기억합니까.


 1919호는 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어렸을 적부터 생각했다. 자신이 아끼던 풍선이 하늘에 뭉게뭉게 핀 구름 사이로 사라질 때 처음 그 꿈을 가지게 되었다. 푸른 하늘을 날고 싶다. 매우 유치해 보이는 꿈일지도 모르지만 1919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 꿈은 생생하다.


 복도의 차가운 공기도 생생하다.


 반복되는 복도 풍경을 보며 1919호는 잘도 이런 곳에 갇혀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복도의 모든 부분은 서로 같다. 부분은 곧 전체다.


 마치 우리처럼.


 이젠 그런 생활은 안녕이다, 1919호는 웃으며 속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 모두 안녕!


 칙칙한 교복도, 1919호는 하얀색 교복 겉옷을 벗어 던진다.


 바가지 머리도, 1919호는 하늘색 머리 끈으로 꽁지를 만든다.


 무표정 가면도, 1919호는 하얀 가면을 바닥에 던지고 밟는다.


 개성 없는 학생들도, 감정 없는 선생들도, 자유 없는 생활도, 1919호는 달린다.


 모두들,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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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섬이 그렇게 아름다울 줄 그때 처음 알았단다."


 복도에 울려 퍼지는 낮은 톤의 교장의 목소리. 아마 그 부분쯤에서 1919호는 반복되는 교실을 모두 지나 과학실을 지나고 있었을 것이다. 학교의 과학실은 매우 넓다. 전교생이 들어갈 정도로 넓다. 그만큼 과학은 중요하다. 여러 세대 교차가 일어나고 기술 혁명이 계속되는 이 시대에 과학은 매우 중요한 학문이다. 문과를 멀리하고 이과를 중요시하는 교육 정책 덕분에 인류는 완벽한 이성적인 사고에 근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한다.


 결국 배우는 건 하나 같이 쓸모가 없잖아, 1919호는 생각한다.


 현대 물리학사는 배우지만 비행의 역사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미적분 공식은 알려주지만 비행할 때의 규칙은 아무도 모른다.


 연소의 원리는 알려주지만 비행사를 향한 자신의 불타는 열정은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이 쓸모가 없다면 인류는 이렇게 발전하지 않았겠지. 비행기가 이륙하는 원리, 대기 층을 이루는 구성 성분, 구름의 종류와 성질. 만약 1919호에게 지금 당장 이 주제에 관해 30분 동안 설명하라고 하면 필요한 핵심을 모두 설명할 자신이 있다.


 설명할 줄은 알지.


 이론은 알지만 정작 실전 경험은 없다.


 이래서는 배운 것 마저 쓸모가 없잖아. 1919호는 결국 6년 간의 학교생활이 지나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잠시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학교가 이상한 걸까, 내가 이상한 걸까.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금까지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어.


 푸른 하늘을 향해 1919호는 계속 달린다.


 그리고 1919호는 건물 밖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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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더 이상 그 꿈을 꿀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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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 비행한 곳은 마다가스카르 상공이었어."


 아버지의 말씀이다. 아버지에게 비행사에 대해 물어본 그날 아침을 1919호는 생생히 기억한다. 같이 공원을 산책하면서 1919호는 아버지의 비행담을 들었었다. 그때가 그리운지 이젠 칙칙한 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쓸쓸하게 하늘이 얼마나 푸른색이었는지 묘사를 했었다.


 푸른 하늘.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푸른색은 결국 무슨 색을 말하는 걸까.


 하늘은 칙칙한 회색이다.


 회색 하늘은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산물이라고 한다. 심각한 대기 오염과 오존층 파괴로 인류의 존속이 위협을 받자 인류는 하늘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구조물로 지구를 감싸기로 결정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인류는 안전하다.


 회색 하늘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산물이다.


 과연 그럴까.


 아버지를 따라 하늘을 바라보며 1919호는 생각했었다. 자신도 저 회색 하늘이 열리면 언젠가는 구름에 뒤덮인 아름다운 마다가스카르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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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푸른 하늘이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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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문 밖의 풍경은 회색이었다.


 1919호는 문을 연 채 가만히 있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잖아. 1919호는 생각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밤'이었다. 하늘은 그들이 비행하기도 전에 이미 문을 닫았다.


 1919호는 회색 머리끈을 풀고 손바닥 위에 올려보았다.


 결국 내가 꾼 꿈은 뭐였을까.


 교문 옆에는 교장 선생님의 흑백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의 그는 비행사였다.


 "…언젠가는 구름에 쌓인 마다가스카르의 그 아름다움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강당에서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천 여 명의 비행사들이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같은 꿈을 꾼다.


 거짓과 같은 꿈을 꾼다.


 그리고 꿈과 함께 1919호는 다시 학교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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