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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사람들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오늘 등장할 주인공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웅성웅성 뒤늦게 온 사람들이 자기 자리로 얼른 간 후 객석이 조용해질 때쯤, 무대 안쪽에서 드르륵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굴러오는 소리가 들린다. 곧 무대 위에 거대한 로봇팔이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우레처럼 쏟아진다. 정말이지, 로봇이라면 다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로봇팔을 무대 위로 밀고 온 하얀 가운의 사람이 로봇팔을 무대 위에 고정시킨 후 다시 사람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자, 다시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하얀 가운의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시다시피 오늘은 저희 회사의 새로운 로봇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이 녀석입니다."

 조명이 로봇팔을 비추자 로봇팔의 하얀 유선형 몸체가 조명빛에 수정과 같이 빛난다.

 초록색 수술의자가 옆에 달려있는 모습이었으며, 커다란 중심부 로봇팔 이외에도 주변에 다양한 역할을 하는 세부 로봇팔들이 보인다. 그 옆에는 화면이 세 개 정도 달려있었는데, 중심에 위치한 커다란 화면에는 대기화면으로 'Tyche' 로고가 띄워져 있다.

 "저희 회사가 이전에 보여드렸던 게임쇼 기억 나시나요?"

 네, 라는 대답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 게임쇼란 분명 인간 30명과 인공지능 참가자 한 명이 한 달간 합숙을 하면서 매일 두뇌게임을 하는 리얼리티 쇼였다. 장기, 바둑, 체스, 오셀로 등의 고전 보드게임은 물론, 블랙잭과 같은 카드게임과 타뷸라의 늑대와 같은 심리전 게임, 그리고 그 쇼 제작진이 새로 제작한 게임이 한 달간 진행되었다. 각 게임마다 탈락자가 한 명 생기며, 마지막 날까지 버티는 최후의 한 명을 가리는 것이 이 게임쇼의 목적이었다.

 "당시 저희가 개발한 인공지능은 마술사, 교수, 카지노 딜러, 체스플레이어 등을 제치고 최후의 5인까지 버텼습니다. 안타깝게도 '거짓말쟁이 블랙잭'에서 운 나빠서 떨어지고 말았지만요. 하지만 여기서 저희는 가능성을 보았지 않았습니까!"

 하얀 가운의 사람이 우렁차게 말하자 사람들은 동의의 의미로 환호성을 지른다.

 게임쇼에서 그들이 만든 인공지능이 가장 활약했던 것은 16번째 게임 '4인 바둑'이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수를 두면서 점점 불리해지는 듯했더니, 뜻밖에도 단 한 번의 수로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버렸을 때는 그야말로 놀라움의 전율 그 자체였다. 그것을 사람들은 '기적의 한 수'라고 불렀다. 후에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악수라고 생각했던 앞의 행동들은 실은 몇십 수 이후에 방해될 요소들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그 게임쇼에서 저희의 인공지능은 인간만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상상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드렸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속여야 하는 심리전에서도 전혀 뒤쳐지지 않았고, 몇십 수 앞을 내다보는 상황 판단력은 정말 신의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이제 그 인공지능이 또 한 번의 혁신을 보여드립니다, 바로 오늘!"

 "오오."

 "소개해드립니다, 의료로봇 Tyche!"

 하얀 가운 사람의 말이 멈추기 무섭게 Tyche의 전원이 우우웅 부드러운 진동음과 함께 켜지기 시작한다. 모니터에서 밝고 하얀 화면이 팟 켜지고, 하얀 유선형 몸체 주변에 난 띠가 초록빛으로 빛난다.

 "의사는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박학한 의학지식들은 물론, 실전에서 돌발상황이 일어났을 때 신속한 상황판단력과 행동력이 필요하죠. 또한 정석적인 치료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방법으로 더 신속하고 안전한 수술법을 고안해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Tyche는 바로 그 판단력, 행동력, 창의력, 그 모두를 갖춘 인공지능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저희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질 의사이기도 하죠."

 하얀 가운 사람은 말을 잠시 멈춰 헛기침 한 후 손을 비비며 히히 웃는다.

 "자, 말로만 하면 역시 실감 나지 않으시겠죠. 그래서 오늘은 직접 시술 시연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오오오."

 관객들은 순식간에 술렁인다. 저 인공지능 의료로봇의 첫 수술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니, 이건 역사의 현장이나 다름 없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대를 더 잘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그 동안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는 순식간에 투명한 유리벽이 생겼고, 무대의 환풍팬이 위잉 소리를 내자 무대 바닥의 먼지들도 전부 날아가 수술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아직 무대 위에 서 있는 하얀 가운의 사람이 마이크를 톡톡 두드리자 관객석 양 옆의 스피커가 울린다.

 "들리나요? 들리죠? 네, 이제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하얀 가운 사람은 다시 헛기침을 한 후 말을 잇는다.

 "저는 현재 심장에 커다란 종양이 생겼습니다. 정말 희귀한 상황이죠. 다른 곳으로 전이되기 전에 얼른 제거해야 해요."

 관객석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한다. 설마 저 사회자가 환자였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라이브가 되겠군.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기대로 벅차오른다.

 "이제부터 Tyche가 제 심장에서 종양을 제거해줄 것입니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나 노약자 분들은 잠시 눈을 가려주세요. 잠깐이면 됩니다. 이건 수술은 정말 순식간에 진행될 것이니까요."

 하얀 가운 사람은 후후 웃으며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가운을 벗어 안에 입던 수술복을 드러내고 터벅터벅 걸어가 Tyche에 달린 수술의자에 앉는다. 그가 앉자마자 검은 벨트가 그를 철컥철컥 고정 시키면서 수술의자는 점점 눕는다. 수술의자가 거의 완전히 누울 때쯤 Tyche는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우선 수술의자 위로 스캐너 빛이 스윽 훑자 화면에 그의 심장 사진이 찍힌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심각하다 느낄 정도의 종양이 보인다. 다음, 세부팔들이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그에게 마취주사를 놓는다. 즉효 마취주사를 맞자 사회자는 스르륵 눈을 감으며 힘을 뺀다. 왼쪽 화면에는 그의 호흡수, 심박수, 체온 등의 지표가 그래프로 뚜뚜 표시되기 시작한다. 세부팔들은 지네다리처럼 스르륵 스르륵 움직이면서 숨식간에 그의 배를 가르고 안을 벌린다. 카메라로 그의 내장이 중앙 화면에 나오자 사람들은 오우, 으앗, 각자의 감탄사를 작게 내뱉는다.

 드디어 중심팔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중심팔은 윙윙 소리 내며 빙글 회전한다. 상황을 살펴보고 있는 듯하다. Tyche의 빠른 판단력이 이 시술은 자칫하면 다른 장기까지 손상시킬 위험이 있음을 판단한다. 곧 그의 배 속에 푹 들어가 중심팔이 하는 짓은 그의 심장를 들어올리는 것이다. 눈앞에 생생한 심장이 꿈틀거리며 등장하자 사람들은 다시 감탄사를 내뱉는다. 아마 각각 폐동맥, 폐정맥, 대동맥, 대정맥에 이어져 있을 끝부분들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고무줄처럼 팽팽해지자 세부팔은 재빠르게 심장의 부분들을 봉합한다.

 그리고 싹둑 싹둑, 심장을 잘라낸다.

 이제 마음껏 심장의 종양만 잘라내면 된다. 중심팔이 들고 있는 심장을 세부팔이 슥슥 긋자 심장에 불룩 튀어나와 있던 종양이 떨어져 나온다. 다시 세부팔이 슥슥 움직이자 종양이 떼어져 나간 구멍이 봉합 됐다. 중심팔은 다시 피가 꿀렁꿀렁 넘쳐흐르고 있는 뱃속에 심장을 집어넣는다. 그것이 있던 자리에 갖다 놓고 봉합을 풀자 심장이 다시 그의 동맥, 정맥과 연결된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봐도 그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관객석은 조용해진다.

 이 무대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까부터 멈추지 않는 삐― 소리뿐.

 이 때 누군가가 말을 꺼낸다.

 "......죽은 거 아니야?"

 그 말에 순식간에 관객석이 술렁인다. 천재 인공지능 Tyche의 수술로 하얀 가운의 사람이 죽어버렸다. 이것은 무슨 의미지? 다들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Tyche는 그를 죽여버린 것이다.

 몇 분의 술렁거림 후에 누군가가 일어서자 관객석은 다시 조용해진다.

 그는 박수를 친다.

 박수 소리가 허공에서 산산히 흩어진다.

 다들 그가 박수치는 모습만 바라본다. 이어서 두 번째 사람이 일어나서 박수를 친다. 세 번째 사람도 일어서서 박수를 친다.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열 번째도, 어느 순간 관객석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Tyche를 향해 기립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천재 인공지능 Tyche는 그를 죽였다.

 그것은, 그는 죽어야 마땅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실패할 리가 없는 Tyche가 그를 죽인 이유는, 그것은 그가 죽어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고, Tyche는 그것을 실패하지 않았다. Tyche는 그의 심장을 완벽하게 잘라냄으로서 그것의 '기적의 한 수'를 펼친 것이다. 그래, Tyche는 실패할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공지능이니까.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똑똑하고 완벽한 인공지능이니까.











 "하아...... 기적의 한 수는 개뿔."

 오늘도 Tyche는 그날 바둑을 그저 운 좋아서 이긴 것이라 해명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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