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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경쟁 이야기

「그러나 나비는 아니다」


-1-


 어두운 방.


 500여명의 학생들은 그 안에 있었다.


 시작부터 그들은 그 방에 갇혀있었다.


 그리고 모서리 쪽 천장에서 비춰지는 한 줄기의 빛.


 출구.

 

 어느새 학생들은 서로를 밟으며 천장으로 오르고 있었다.






-2-


 나는 계산기계다.


 카페인을 연료로 하는 계산기계다.


 나의 역할은 회색 건물 안에서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다.


 기계의 성능은 신속성과 정확성으로 판단되며, 이는 약 오십 번의 테스트를 통해 점수로 기록되어 최종적으로 평가된다.


 그렇게 불량품을 골라내고 최후의 정품만이 시장에서 팔린다.


 불량품은 처분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시 테스트의 반복을 거쳐야 한다.


 어차피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계산했는지 구매자는 신경 쓰지 않는다.


 당신의 성능과 가격을 보고 구매할지 말지 판단한다.


 실제로 팔리는 기계들은 정품들 중에서도 별로 없다.


 안 팔리는 기계들은 정품이라도 즉시 처분 된다.


 "뭐야, 그럼 결국 처분 된다는 거잖아."


 글쎄. 미적분이나 벡터 같은 어려운 계산을 할 줄은 알아도 미래를 계산할 순 없으니까.


 "계산 시도는 해 봤어?"


 했지.


 "그래?"


 했기는 했는데, 결과는 계속 0이었어.


 "…"


 결국, 미래는 계산할 수 없었어.






-3-


 밤 12시가 지나서야 나는 그 회색 건물에서 나올 수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2시까지 있으라고 했지만 그 방에 더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았다. 솔직히 학원에서는 몇 시간 공부를 했는가 보다는 얼마나 공부를 한 건 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을 위해 몇 시간씩이나 일을 하시고 몇 십만 원씩이나 버리신다.


 덧붙여서 이렇게 돈을 학원에 퍼다 쓰는 건 다 내 탓이라고 그러셨다.


 아무렴 어때.


 12시라서 차도가 좀 한적할 줄 알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자녀들을 집에 바래다 주는 차들로 가득했다. 교통 체증을 피해서라도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할 걸 그랬나. 하지만 그 하얀 방에서 혼자 문제를 더 풀라고 하면 난 반드시 거절 할 것이다.


 나는 똑같아 보이는 차들 가운데 아버지의 차를 발견하고 그 안에 탑승했다. 수많은 불빛과 경적 소리를 지나 집으로 도착한 나는 곧바로 방에 들어가 책상에 책을 펼쳤다. 복습과 예습 준비다. 언젠가 학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났다.


 "남들이 놀 때 공부해라. 남들이 잘 때 공부해라."


 그러면 언제 놀고 언제 잡니까.


 "대학 가면 마음껏 놀고 잘 수 있으니까 지금은 공부해."


 저 대학에 갈 순 있나요 한숨을 푹 쉰 후 나는 두꺼운 수학의 정석을 펼쳐 한 장씩 넘겼다. 너무 많이 봐서 이젠 문제들까지 기억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틀리는 문제는 항상 틀렸다.


 나는 공책을 반으로 접고 틀렸던 문제를 다시 풀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실력이 늘겠지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문제를 풀었다.


 시계의 시침이 4를 가리킬 무렵 나는 이미 책상 위에서 자고 있었다.






-4-


 어두운 방.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주변에 학생들이 많았지만 어차피 어두워서 누군지 잘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내 얼굴을 보지 못한다.


 빛이 나는 쪽을 보니 이미 학생들이 서로 밟고 밟아 높은 탑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얼굴이 없는 그들을 밟고 점차 탑 위로 한 발짝씩 움직였다.


 이 방에서 나가겠어.


 그렇게 모든 학생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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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에 앉아있는 학생들 중에서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학생들은 정작 몇 명 없을 것이다

다 알기 때문이다.


 모두 엎드려서 자거나 창밖을 보거나 학원 숙제를 하고 있다. 선생님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무표정 뒤에는 그런 선생을 향한 비웃음이 있었다. 그러나 태도 점수에 들어가는 발표는 적극적으로 임한다.


 마치 스피드 게임처럼.


 답은 모두 알기 때문에 점수는 빨리 손드는 쪽이 가져간다.


 총 10번의 발표 기회 중 무려 4번이나 가져간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계속 이렇게 꾸준히 발표를 해왔으니 아마 발표 횟수는 내가 가장 높을 것이다.


 태도 점수는 총 발표 횟수가 가장 많은 순으로 나열하여 2등 내려갈 때마다 1점씩 깎는다.

그리고 1등, 만점은 바로 나와 내 옆자리였다.


 지금부터가 진짜 경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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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탑은 바닥 쪽에 수백 명이 받치고 있었고 정작 위쪽에는 몇 십 명밖에 없었다. 마치 깔때기를 뒤집어 놓은 듯한 형상이었다.


 내 위치는 깔때기 목 중간 부분이었다.


 내 주변에는 이제 학생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나가기 위해서는 이 학생들을 밟고 올라가야 했다.


 나는 잽싸게 그들을 밟고 꼭대기를 향해 오르고 올랐다.






-7-


 가끔 보면 계산하다가 지쳐서 결국 김을 내는 기계들을 볼 수 있다.


 딱히 우리보다 계산을 많이 한 건 아니다.


 단지 처음부터 그들은 그렇게 망가질 운명이었다.


 망가진 기계들은 즉시 처분이다.


 결국 다 정해져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을 때, 한 기계가 스스로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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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몇 학생들이 아래의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분명 즉사다.


 죽으면 지금보단 편하겠지.


 그러나 죽기는 싫다.


 나는 내 몸에 난 수십 개의 상처들이 지르는 비명들을 무시하고, 밟히고 밟히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지르는 절규를 무시하고, 더 높이 올랐다.


 우리를 내려다 깔보는 한 줄기의 빛을 향해.






-9-


 잊을 만하면 나오는 뉴스가 청소년 자살률 관련 뉴스이다.


 듣자 하면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인지 2위인지 하는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 자랑스러운 기록이네.


 그만큼 우등생들을 더 잘 분별해낸다는 거니까.


 불량품들은 알아서 물러선다.


 살아남은 몇 만이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 받게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


 뉴스의 그래프가 가리키는 숫자를 보면 오히려 저렇게 낮았어? 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솔직히 이 정도로 경쟁을 밀어 붙이면 하늘에서 학생들이 우수수 떨어져도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10-


 가끔 심하게 밟혀서 손가락이 부러진다던가, 발을 헛디뎌서 떨어질 뻔할 때에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회의감도 든다.


 사실 이런 탑 따위 안 오르면 편하잖아.


 하지만 이제 와서 포기할 순 없다.


 지금까지 수백 명을 밟아왔고, 앞으로 조금만 더 오르면 출구인데 지금 와서 포기할 순 없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항상 출구로 나왔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같은 결말이잖아."


 꿈도 희망도 없는 뻔한 결말.


 나는 잠시 오르는 것을 멈췄다.


 오르든 내리든 결과는 결국 같다.


 결국 같아?


 나는 다시 손을 뻗어 남학생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가 끔찍한 비명을 질렀지만 이젠 그런 소리도 익숙하다.


 일단 오르고 보자고.


 결과가 0이더라도, 미래는 계산할 수 없으니까.






-11-


 오늘은 담임 선생님께 중요한 말을 드리러 갔다.


 옆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쓴 컨닝 페이퍼를 한 손에 들고 나는 다른 손으로 교무실 문을 열었다.


 이 시대에 무슨 컨닝 페이퍼냐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불안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결국 옆자리의 남학생의 시험지는 100점에서 0점으로 추락했다.


 나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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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에서 계산하던 기계의 전원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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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탑 위쪽에서 남학생 한 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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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적표의 등수가 모두 1을 가리키고 있을 때에는 기쁨보다는 허무함이 들었다.


 결국 내가 한 모든 것은 이 종이쪼가리 한 장을 위해서였다.


 뭘까 이건.

 

 내가 한 모든 것들 중 남는 건 결국 이 기록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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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매자는 성능과 가격만을 보고 우리를 판단한다.

 

 그러니 당연히 항상 최고 기록을 찍던 나는 팔릴 수밖에 없었다.


 그게 당연해?


 주변의 폭발 잔해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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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제일 꼭대기에 올라 빛이 나오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뜨겁게 달궈진 전구가 잡혔다.


 그러니까, 출구에서 나왔더니 아무것도 없었다는 결말이 아니었다.


 나올 출구조차 없었다.


 이 방은 결국 출구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평생 가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몸에서 힘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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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상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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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곧 있으면 난 팔리게 된다.


 그렇게 결말이 난다.


 그렇게.


 …그렇게 순순히 팔려줄까 보냐.






-18-


 떨어지면서 나는 밟고 밟히는 학생들을 보았다.


 마치 무수히 많은 애벌레들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애벌레는 커서 나비가 된다.


 흠, 그거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인데 말이지.


 어차피 흔하디흔한 어딘가의 헛된 희망론인게 뻔하다.


 나는 학생들을 향해 외쳤다.


 "도대체 너희들은 무엇을 위해 저 탑을 오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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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정말 말도 안 되게,


 정말 순식간에,


 나는 바닥에 도착했다.






-20-


 폭발한 기계의 잔해는 다른 기계의 작업이 방해 받지 않도록 치웁시다.






-21-


 결국 학원 선생의 말이 맞았다.

 

 대학 가면 정말 원하는 만큼 잘 수 있었다.


 정말이네.






-22-


 바닥에 쌓인 학생들은 조용히 자고 있었다.


 마치 고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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