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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달이 떴던 밤 다음 날, 용사 세바스찬 에반스가 죽었다.

 보름달의 기운을 받겠다고 자신의 영혼구슬을 마당에 올려놓았던 그날 밤, 누군가가 그의 영혼구슬을 박살낸 것이었다.

 세바스찬의 일행은 차갑게 식은 용사의 몸에 패닉해 가면을 쓴 탐정에게 얼른 연락을 취했다. 용사가 평소에 가면 쓴 탐정과 어렸을 때부터 엄청 친한 친구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가면 탐정은 세바스찬의 일행의 안내를 받고 그 일행이 사는 저택에 들어왔다. 저택은 마당을 ㄷ자로 감싸는 구조였다. 대칭적인 구조의 중앙은 거실이었으며, 거실은 바로 현관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당으로 향하는 유리문도 거실에 있었다. 거실 양 옆으로는 방이 각각 2개씩이 있었다. 거실에서 마당을 바라보는 방향 중심으로 오른쪽은 가장 안쪽부터 용사와 여전사 엘리자베스의 방이었다. 둘은 약혼한 사이였다. 왼쪽은 안쪽부터 수인도적 카젤, 늙은 마법사 메르딘의 방이었다. 메르딘은 일행의 길잡이였으며, 카젤은 일행이 여행중에 합류했다고 한다.

 용사는 거실 소파 위에 쓰러져있었다.

 가면 쓴 탐정은 셋이 용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장갑 낀 손으로 용사의 몸을 여러 군데 만져봤다. 상처는 없었지만 차갑게 식어버린 용사의 몸은 어떻게 봐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각자 영혼구슬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깨지면 그 주인 역시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탐정은 우는 건지 용사의 시체 앞에서 잠시 얼굴을 감싸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심호흡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킨 탐정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셋을 향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한 사람씩 면담하겠습니다."






 우선 이 살인사건의 범인은 저택에 있던 그들일 수 밖에 없었다.

 저택은 보호 마법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외부 사람이 쉽게 저택에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설령 겨우 들어왔다고 해도 경보음 때문에 저택 내 사람들이 알아챘을 것이다.

 한편 그 저택의 마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실을 거쳐야 했다. 우선 방은 마당 반대쪽에 있었기 때문에 방에서 바로 마당으로 가는 방법은 없었다. 복도는 마당을 향해 유리창이 나 있었지만 열리지 않는 구조였기 때문에 복도에서 마당으로 가는 방법도 없었다. 거실에는 용사가 있었지만 그때 당시 그는 소파 위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거실에서 마당으로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우리 중에 한 명이 용사를 죽였다니 믿기지 않아."

 카젤이 유리문에 기대 마당을 바라보며 말했다.

 탐정은 각 방에 들어가 짧은 시간동안 조사를 한 후, 용사의 방에 들어갔다.

 탐정이 용사의 방에서 개인 취조를 잠시 준비하는 중안 세 명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바닥 위에 앉아 있던 메르딘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아마 그가 있었다면......"

 "'걱정 마, 너희는 모두 대단한 놈들이니까! 반드시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거야,' 라고 했겠죠."

 엘리자베스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곧 참고 있던 울음을 쏟아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분위기를 더 침울하게 만들었다. 메르딘은 가만히 바닥만 바라보았고 카젤도 아무 말 없이 분한 듯이 유리문을 쾅 두드렸다.

 용사는 항상 격려와 칭찬의 말로 일행을 이끌려고 했다. 그의 실력은 엄청 대단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다름아닌 순수한 그의 성품 덕분이었다. 그와 대화해본 사람들은 전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고 한다. 그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고, 셋은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다 됐습니다."

 침울한 공기를 깨고 듣기 싫게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오자 셋은 전부 고개를 탐정 쪽으로 돌렸다.

 "누구부터 하실 건가요?"

 그 말에 처음에는 다들 망설여했지만, 카젤은 침을 꿀꺽 삼킨 후 손을 들었다.

 "내가 먼저 할게."

 탐정은 고개를 끄득였다.

 카젤은 둘의 눈치를 살짝 살피며 탐정을 따라 용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용사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긍정적인 사람이었어. 어떤 불운이 있어도 다음 기회가 있다며 우리를 격려해줬지. 세바스찬은 항상 우리를 믿는다는 말을 강조했어. 서로를 믿어야 우리가 뭉칠 수 있다면서 말이야. 아무튼 좋은 사람이었어. 떠돌이였던 나를 일행에 넣어줬으니까. 가끔은 겁쟁이일 때도 있고 어리버리 할 때도 있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아, 특이한 점이라면 밤마다 뭔가에 불안해 했던 거 같아.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있다고 그랬어. 난 그게 뭔지 평생 모르겠지만."

 "......어젯밤은 어땠죠?"

 "용사가 영혼구슬을 정원에 올려둔 뒤 각자 방으로 갔어. 용사는 거실에서 잤고. 아, 맞아, 조금 있다가 목 말라서 잠시 거실에 나왔었어. 세바스찬은 자고 있었고 영혼구슬도 부서지기 전이었지만, 그때 거실에서 나는 엘리자베스를 봤어. 못본 척 하긴 했지만 아마 메르딘의 방으로 가는 길이었을 거야. 그래...... 둘은 사실 예전부터 뭔가 수상했지. 엘리자베스는 세바스찬과 약혼했는데도 언젠가부터 메르딘에게 좀 더 친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어."

 "그 외에 짐작되는 건 없나요?"

 "있지, 이건 비밀인데, 나는 메르딘이 범인이라고 생각해. 메르딘은 길잡이인 주제에 자기가 나서려는 거 있지. 그 두 눈은 권력에 목말라 하는 눈이야. 나를 믿어, 내 수인으로서의 촉은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으니까. 메르딘은 세바스찬을 자기의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그래서 하나씩 뺏는 거겠지. 돈도, 약혼자도, 이제 리더의 자리까지. 아마 세바스찬을 죽인 것도 그런 게 아닐까?"

 "......네, 감사합니다."






 잠시 후 카젤은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하며 용사의 방에서 나왔다.

 엘리자베스는 카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유리창에 기댄 채 주저 앉아 푸욱 한숨을 쉬었다.

 엘리자베스는 안절부절하게 다리를 떨면서 둘의 눈치를 살폈다.

 "다음에 나오실 분?"

 탐정의 목소리가 들리자 엘리자베스는 살짝 망설이다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 제가 할게요."

 탐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자베스는 침을 꿀꺽 삼킨 후 도망치듯이 재빨리 탐정을 따라 용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용사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제가 한 눈에 반한 사람이었죠. 지금은 깨져서 볼 수 없지만, 그의 영혼구슬은 정말 이슬처럼 투명했답니다. 세바스찬답게 순수하고 강한 백색 마력도 느껴졌어요. 깨져버린 영혼구슬은, 아시다시피 보통 구슬로 돌아가 버리지만....... 그러고 보니 탐정 님도 강한 마력의 소유자시군요. 이래 봐도 전 마법사 글리데린의 직계 후손이거든요. 탐정님은, 아아, 가면 뒤에 엄청 슬픈 표정이 있을 것 같아요. 탐정님에게서 깊은 흑색 마력이 느껴져요."

 "......이런 저런 일이 있었거든요."

 "그러게요. 마음의 상처가 깊어요."

 "우선은 이 사건에 집중해 주세요. 어젯밤은 어땠나요?"

 "그게요, 실은 저 어제 살인 현장을 목격한 걸 지도 몰라요. 어제 잠깐 피곤해서 공기 쐬러 방에서 나왔을 때 카젤을 봤거든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용사의 짐에서 금화와 아이템들을 훔치는 중이었죠. 그리고 저는 기억해요. 그날 보름달은 엄청 밝았거든요. 카젤의 오른손에는 그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단검이 있었어요. 어쩌면 훔치는 장면을 우연히 깬 세바스찬에게 들켜서 우발적으로 죽인 게 아니었을까요?"

 "우발적으로...... 말이죠."

 "만족스럽지 않으신 듯하네요."

 "아닙니다. 계속해주세요. 카젤에 대해 좀 더 짐작되는 건 없나요?"

 "딱 봐도 카젤은 믿을 수 없는 녀석이에요. 그의 두 눈은 약삭빠른 여우의 눈이에요. 분명 앞에선 웃고 뒤에선 단검으로 찌를 녀석이죠. 그 녀석, 평소에 메르딘이랑 자주 싸웠어요. 메르딘처럼 과묵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자주 싸운다는 건 분명 카젤 쪽이 문제 있다고 봐야 하겠죠. 훔치는 건 기본이고, 거짓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기분 나쁜 놈이에요. 저는 세바스찬이 왜 그런 놈을 감싸주는 건지 모르겠어요. 서로 믿는 게 중요하다면서, 가장 신뢰랑 어울리지 않는 놈을 감싸주다니요."

 "그런가요."

 "네. 하지만 어쩌면 세바스찬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요. 밤마다 그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거든요. 제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죽음보다도 두려운 것'이 있대요. 분명 세바스찬도 카젤의 거짓말에 대해 알고 있던 거에요. 하지만 섣불리 건드리면 일행에 분열이 올까봐 차마 그러지 못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네, 감사합니다."






 엘리자베스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용사의 방에서 나왔다.

 엘리자베스와 카젤의 시선이 순간 만났지만 둘은 서로의 시선을 피해 눈을 돌렸다.

 메르딘은 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항상 굳어있는 그의 표정은 좀처럼 무슨 생각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마지막 분."

 탐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메르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옷에 주렁주렁 달린 부적들이 서로 부딪히며 영롱한 소리를 냈다.

 용사의 방으로 들어가는 메르딘의 발걸음 소리가 어째선지 무겁게 들려왔다.






 "용사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그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정제되지 못한 다이아몬드 원석과도 같았다. 그는 자신의 잠재력을 모른다. 가끔씩 마력으로 인형 만들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장난을 치곤 하지만, 나는 그가 그런 애 같은 장난보다 더 대단한 마법을 부릴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어젯밤은 어땠나요?"

 "용사는 마당에 자신의 영혼구슬을 보란 듯이 올려놓았다. 그건 우리들을 향한 신뢰의 표시이기도 하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짓이었지만, 그만큼 그는 동료 간의 신뢰를 우선시했다. 그런 바보 같은 점이 우리를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가 항상 의지하게 되는 건 바로 그런 바보스러운 점이 아닐까 싶었다."

 "......."

 "하지만 그 두 애송이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사람의 신뢰라는 것을 단순한 계약서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 녀석들이다. 계약서는 찢거나 불 태우면 그만이다. 그래서 한 놈은 밤 마다 용사의 물건을 훔치고, 다른 한 놈은 용사에게 약혼 맹세를 한 주제에 용사가 심심하다는 이유로 항상 새로운 재미를 찾아 나섰다. 둘은 오래 전부터 그래왔고, 서로 그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둘은 서로 계약을 맺었다. 서로에 대한 비밀을 지킨다는 계약. 그러나 내 눈을 속이지는 못한다."

 "......."

 "그날 밤도 그랬을 것이다. 특히 엘리자베스라는 자를 세바스찬은 조심했어야 했다. 엘리자베스는 이미 그를 버린 지 오래다. 어리석은 용사는 여전히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엘리자베스의 마음은 이미 식어버렸다. 엘리자베스는 친구에겐 마음 따뜻한 동료지만, 그 외에겐 차가운 여전사다. 만약 용사가 엘리자베스에게 그녀가 한 짓에 대해 추궁했던 적이 있다면, 이미 마음 식은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의 영혼구슬을 박살 냈을 것이다."

 "그렇군요. 짐작 가는 건 더 이상 없나요?"

 "......용사는 항상 걱정스러워 했다. 자신이 이 일행을 이끌 자격이 있는 지를 항상 고민해 왔다. 나는 그건 쓸데 없는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내게 말했다.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있다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지 나는 잘 모르겠다."

 "네, 감사합니다."





 찰랑찰랑 소리와 함께 메르딘이 용사의 방에서 나왔다.

 둘은 메르딘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굳은 상태였다.

 어느새 밤이 된 저택 안으로 밝은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 후 탐정이 방에서 나왔다.

 그는 셋을 불러 용사의 시체에게서 떨어져 유리문 앞에 서도록 했다. 유리문 앞에 선 셋은 그들 앞에서 무릎 구부리고 용사의 상태를 살펴보는 탐정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한참 후에 탐정의 불쾌한 낮게 깔린 목소리가 가면에서 새어나왔다.

 "용사는 항상 고민해왔습니다."

 그의 몸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용사는 믿었습니다. 좋은 말, 좋은 행동, 좋은 생각으로 일행을 이끈다면 아무 걱정 없이 뭉칠 수 있을 거라고. 용사는 신뢰야 말로 서로를 뭉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고민했습니다. 정말 그것이 옳은가? 일행 내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도 했지만,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잘 안 됐는지 그는 밤마다 고통을 호소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와 친하게 된 거죠."

 탐정은 깊은 한숨을 내신 후 말을 이었다.

 "용사에게는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불신'이었습니다. 일행이 자신을 믿고 있지 않는 거였다면? 믿는 척만 하고 뒤에서는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었던 거라면? 그런 의심이 용사의 마음 속에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용사는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신들을 믿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의심은 점점 커졌고, 그것은 확신이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순수하고 긍정적이고 믿음직스러운 용사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름달이 떴던 그날 밤, 한계에 다다랐던 그날 밤, 용사는 마침내 결심했습니다. 복수를 하자고."

 탐정은 셋을 향해 뒤를 돌았다.

 그의 가면이 스르륵 떨어지면서 그 아래에 숨겨져 있던 얼굴이 밝은 달빛을 받으며 드러났다.


 그것은 용사 세바스찬의 활짝 핀 웃음이었다.


 "역시 너희들은 대단한 놈들이었어!"

 셋은 아무 말 없이 용사를 바라보았다.

 용사는 셋을 보며 미소를 짓더니 푸풉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와하하하하!"

 "어째서......."

 "하하하! 와하하하하!! 진짜 웃음 참느라 고생했다! 크하하하하!! 아우, 이상한 목소리 내느라 목 너무 아팠어, 으헉, 헉, 으하하하하하!"

 셋은 배꼽 잡고 웃는 용사를 경악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참을 웃은 뒤에야 진정한 용사는 너무 웃어서 눈가에 묻은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너네들 정말 멍청하다 그치?"

 "하, 하지만......."

 "메르딘, 만약 내가 마력으로 인형을 만들 수 있다면, 마력으로 시체 인형은 간단히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메르딘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지만 가짜 시체는 금방 들키지 않나?"

 "아이고 메르딘. 그렇게 내 위치를 탐냈으면서, 그래서 내가 굉장히 강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걸 알면서도 계속 숨겨왔으면서, 어째서 그 강한 마력으로 너희들쯤은 간단히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한 거야?"

 메르딘은 받아들일 수 없는지 고개를 계속 저었지만 용사는 피식 웃고 엘리자베스에게 다가갔다.

 "아아, 엘리자베스, 넌 역시 아름다워."

 "오, 오지마!"

 용사는 콧방뀌 뀌었다. 그는 메르딘과 엘리자베스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그날 밤 메르딘이랑 너랑 같이 잔 거 다 알아. 근데 둘 다 시치미 뚝 떼고 말하더라? 웃겨 죽는 줄 알았어."

 "무, 무슨 소리를......."

 "괜찮아 엘리자베스. 난 여전히 널 사랑해. 너와 난 약혼했으니까."

 "너 같은 미친 놈이랑 약혼할 리가!"

 용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 그럼 너가 용사를 죽인 걸로 할까?"

 엘리자베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마 지금쯤 내가 죽었다는 소문은 온 동네에 쫘악 퍼졌겠지. 그리고 셋 중 한 명은 범인이야. 응, 그래, 네가 범인인 걸로 하자."

 "가짜 시체로 언제까지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 거 같지?"

 엘리자베스는 반박했지만 용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 때는 내가 진짜로 죽으면 되니까. 내 영혼구슬을 스스로 박살내서. 네가 죽였다는 유언과 함께."

 "하, 하지만 이 둘은 진실을 알고 있어. 하! 증인이 두 명이나 있네?"

 용사는 웃었다.

 "불쌍한 엘리자베스, 아직도 우리들 사이에 신뢰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너희 셋의 비밀을 알고 있어. 만약 이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퍼지는 건 순식간이겠지? 흐음, 카젤부터 한번 시험해볼까? 네가 훔친 금액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자. 아마 나한테서만 그렇게 많이 훔친 게 아닐 걸?"

 "하, 하지마!"

 카젤은 격렬히 고개를 저었다. 용사는 쯧 혀를 찼다.

 "그건 그렇고 정말 멍청하네. 간단히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셋 다 헛다리만 짚고 말이야. 특히 엘리자베스는 우발적 사고라고 하는 부분 너무 웃긴 거 있지."

 "무슨 소리야......."

 "만약 정말로 카젤이 훔치는 장면 들켜서 우발적으로 나를 죽였다면 저 멀리 정원 가서 영혼구슬 부술 바엔 직접 나를 찔렀겠지, 안 그래?"

 "너 설마 내가 범인이라고 했어?"

 "서, 설마."

 "난 너희 셋이 무슨 말 했는지 잘 알고 있는데."

 용사는 쿡쿡 웃었다.

 "아아, 역시 내가 틀렸어. 서로를 하나로 뭉치는 건 신뢰 따위가 아니었던 거야. 서로에 대한 불신이야말로 우리를 하나로 뭉쳐주지. 그걸 내가 왜 이제야 알았을까."

 용사는 그렇게 말하며 양팔을 쫘악 펼쳤다.

 "그러니까, 자, 나의 동료들이여."

 용사의 가슴팍에는 이미 깊은 검은 색으로 물들어버린 그의 영혼구슬이 목걸이에 매달려 있었다. 셋 중 하나가 손을 뻗어 저 영혼구슬을 부순다면 아마 지금 용사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럴 수 없었다. 그가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셋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용사는 씨익 웃었다.


 "내일 토벌 일정을 지금부터 짤 건데, 혹시 빠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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