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08 죽이는 이야기

「아는 사람 이야기」


-1-


 "자살하려는 사람은 모두 정신병자이다."

 -에스키로르(1838)-






-2-


 7월 4일 새벽 2시 34분.


 창문으로는 달빛이 새어 나오고 있어 신비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나는 부엌 한 구석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가족들은 모두 자고 있어서 집안은 아주 조용했다.


 마치 모두 죽어버린 듯이.


 "아아, 정말 죽기 좋은 날이구나."


 내 손에는 식칼이 들려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식칼의 날을 내 쪽을 향해 들고 있었다.


 달빛을 받아 날이 반짝 빛났다.


 나는 한번 깊은 심호흡을 했다.


 온 몸의 긴장이 풀렸다.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나는 칼로 내 배를-






-3-


 "나는 그녀가 자살할 때까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소녀이다. "

 -톰 리븐, Party-






-4-


 "자살하고 싶다."


 그 말을 처음 꺼낸 건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원활하지 않은 교우 관계, 노력만큼 나오지 않는 학업, 그리고 그것들을 매일 부모님에게 숨기느라 피폐해진 정신 상태. 이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건지 그날 따라 나는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심코 그 말을 입에서 꺼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지만 실로 유쾌했다.


 요즘 힘든 일 있어? 라던가, 괜찮아? 라던가, 그러지 마……라던가, 혹시 우리가 도울 일은 없을까? 라던가, 에이 설마……라던가, 다 헛소리지. 라던가 좀 있으면 나아질 거야! 라던가.


 그런 반응 등등.


 지금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더라도, 아니 오히려 불쾌하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그때는 확실히 유쾌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야, 모두가 내게 관심을 가져 줬으니까.


 이후 그것은 관심을 받지 못했던 한 외톨이의 새로운 관심 받는 방식이 되었다.






-5-


 "피 흘리는 화면을 언제나 제일 먼저 컬러로 내보냈던 채널 40의 전통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시청자 여러분들께 자살하는 모습을 눈앞에 펼쳐 보여드리겠습니다."

 -크리스틴 처벅 (Christine Chubbuck)-






-6-


 그 이후 틈만 나면 나는 "자살"이란 단어를 습관처럼 꺼냈다.


 샤프랑 펜으로 손등을 찍으면 새빨간 핏방울이 동그랗게 손등 위에 맺혔다.


 커터칼로 손목을 슥슥 긁을 때마다 손목에 붉은 줄이 생기면서 기분이 서늘해졌다.


 물론 친구들은 이제 모두 이런 퍼포먼스에 익숙해졌고, 내가 아무리 "자살"이라는 단어를 노래하고 다녀도 진짜로 자살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양치기 소년이다.


 그러나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은 더더욱 커져 갔다.






-7-


 "넌 정말로 죽고 싶니?"

 "아무도 죽고 싶어서 자살하지 않아."

 "그러면 왜 그런 걸 하는 거야?"

 "왜냐하면 그들은 고통을 그만 받고 싶거든."

 -티파니 디바톨로, How to Kill a Rock Star-






-8-


 자살하고 싶은 욕구가 절정에 다다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중학교 2학년은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친구가 없었다.


 성적도 나빴다.


 부모님과 자주 다퉜으며 틈만 나면 동생을 괴롭혔다.


 나는 정말로 '살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당연히 살고는 싶다.


 하지만 만약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그런 생각들을 매일 매시 매분 매초마다 했다.


 "내가 죽으면 뉴스에 나올까?"

 "내가 죽어도 누가 신경을 쓰기는 할까?"

 "내 장례식장에 과연 누가 올까?"

 "내가 죽으면 모두들 행복하겠지."

 "내가 죽더라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을 텐데."


 생각할수록 아팠다.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암울한 망상을 키워갔다.


 손등에는 찍어 내린 흉터 자국들이 가득했고, 손목에는 칼로 긁은 상처 자국들이 선명했다.


 틈만 나면 교실 커튼 줄에 목을 칭칭 감았으며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할 때까지 줄을 꽉 조이기도 했다. 눈을 가만히 감고 기다리다가 갑자기 공기가 폐에 들어가지 못하고 턱 막히는 감각은 중독성 있었다.


 하지만 이젠 죽을 정도로 아파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


 가끔씩 "관심을 줘야지 자살을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차피 난 못하잖아."라며 자조적인 미소로 스스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9-


 "내 생각엔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자살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관한 토론을 끝내기 위해서인 것 같다."

 -수잔나 케이센-






-10-


 모두가 자고 있는 한밤 중에 나는 방에서 혼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냥 갑자기 억울했다.


 고여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는데, 어째서 결과는 이런 걸까, 스스로를 탓하고 가족을 탓하고 친구도 탓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신에게도 탓해봤다. 나도 친구를 갖고 싶었고, 나도 좋은 성적 받고 싶었고, 싸우고 싶어서 부모님과 다툰 것이 아니며, 나도 좋은 형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는 그냥 너무 억울했다.


 나는 눈물을 닦고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텅 빈 복도를 걸으며 부엌 쪽으로 향한 나는 식칼을 하나 뽑았다.


 지금은 7월 4일 새벽 2시 27분.


 "아, 정말 자살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칼로 내 배를 찌르지 못했다.






-11-


 "어차피 난 못하잖아."

 -XXX-






-12-


 칼을 배로 향한 채 계속 눈물만 뚝뚝 흘렸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눈물을 닦으며 나는 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쩌면 나는 내가 자살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등장해주길 바랬던 건 아닐까.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칼을 다시 있던 자리로 꽂아 넣었다.


 나는 겁쟁이다.


 단지 죽는 것이 무서워 결국 고통의 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겁쟁이의 최후.


 양치기 소년의 최후.


 나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용기 없는지 실감하면서 나는 다시 침대 위에 누워 울었다.






-13-


 "자살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살해의 욕구, 살해당하려는 욕구, 살려는 욕구."

 -메닝거-






-14-


 그 이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별로 자살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살 충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해서 가끔 너무 힘들 때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절대로 자살 시도를 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하지도 못할 것 생각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살아 있으려고 노력 해야지.


 나는 얕은 흙탕물 위에서 바동거리며 살아가는 생긴 물고기다.


 그런 헛소리를 해보며 나는 나 자신을 가뒀다.






▷후기

열기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