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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XXXX 이야기

「힙노스의 미궁」


-1-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두가 자고 있었다.


 집에 있는 모든 전등은 꺼져 있었고, 부모님이랑 동생은 모두 소파 위에서 코 골고 있었다. 우리 집 개도 그 옆에서 눈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죽은 건 아니겠지? 숨소리가 들리니 죽은 건 아니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니 분명히 충전 다 했었던 핸드폰도 꺼져 있었다.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길거리로 나가보았다.


 얼마 전까지 걸어 다녔을 행인들은 모두 길거리 위에 쓰러져 있었다.


 신호등의 불도 꺼져 있었고 차들도 모두 멈춰 있었다.


 이래선 마치 이 도시가 자고 있는 것 같잖아.


 그리고 나는,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2-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선 집에 돌아온 나는 동생을 격하게 흔들었다.


 "얼른 깨 봐. 사람들이 다 자고 있어."


 동생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눈을 게슴츠레하게 떠서 나를 쳐다보았다. 허공을 바라보는 공허한 눈빛이었다.


 "일어 나."

 "형…… 갑자기 왜 그래……"


 동생은 잠에서 덜 깬 듯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 봐."

 "귀찮아 왜 그래……"

 "그냥 나 따라와 봐."

 "싫은데……"

 "아이, 얼른!"


 하지만 동생은 몸을 반대쪽으로 돌려 나를 등지고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나는 그 옆의 부모님을 깨우기로 했다.


 "엄마, 아빠, 일어나 보세요."

 "어……? 갑자기 왜 그래……"

 "봐요, 모두 다 자고 있어요."

 "무슨 꿈 같은 소리야…… 엄마는 좀 더 잘게……"


 그 후로 엄마를 계속 흔들어 보아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결국 가족을 깨우는 걸 포기했다. 다시 길거리로 나가보았다. 어차피 이 도시, 아니 이 세계는 자고 있기 때문에 전과 다를 건 없었다.


 멍하니 서서 길거리를 보고 있으니 내가 깨어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났다.


 그러니 이 세계를 깨우는 것도 나다.






-3-


 학교에 가보니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모두 교실에서 자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난 왜 학교에 안 갔더라.


 학교를 돌아다니다 나는 기이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교실에 산더미처럼 쌓인 학생들의 산이었다.


 서른 여명의 학생들은 서로 엎치고 덮치고 뒤엉켜 쓰러져 있었다.


 이 교실에서 오직 한 명만이 이 고기 덩어리 산에 삼켜지지 않았다.


 그건 바로 나였다.


 나?


 맞아, 여기는 내 교실이었다.


 우리 교실은 선생님들 사이에서 학생들이 서로 잘 어울리는 반이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이 교실에는 '공기' 하나가 존재한다는 것.


 '공기'는 조용히 고기 덩어리 산을 쳐다보았다.


 지금 보니 학생들은 서로 잘 어울리는 게 아니라 서로 헐뜯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기'는 근처에 있는 송곳 하나 들고 회장 녀석의 목에 꽂았다.






-4-


 다음으로 본 반의 학생들은 모두 목매달고 있었다.


 아니다, 모두들 자고 있을 뿐이다.


 아니다, 이 반에는 아무도 없다.


 그저 텅 빈 교실이다.






-5-


 나는 조심스럽게 교장실을 열었다.


 교장선생님은 주무시고 계셨다.


 그의 옆에는 괴상하게 생긴 장치가 멈춰있었다.


 보아하니 그 장치는 복사기인 것 같았다.


 우리 모두는 그 복사기를 거쳐야 했다.


 그리고 교장의 입맛에, 대학의 입맛에, 사회의 입맛에 맞는 학생이 된다.


 다시 보니 그 장치는 우리 학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학교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걸 배우고, 모두 같은 걸 보고 느끼며, 모두 같은 정답을 외우고, 모두 같은 꿈을 꾼다.


 모두 같은 그 꿈은 내가 꾸는 걸까, 학교가 꾸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그 꿈을 꾸는 걸까?


 왠지 모르게 장치를 부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왔던 길 그대로 조용히 교장실을 나갔다.






-6-


 운동장에 쌓여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언젠가 봤던 지옥 풍경 수채화가 떠올랐다. 학생들 모두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마치 그 고통을 더 느끼려고 하는 듯이 그들의 팔은 모두 위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하늘이다.


 학생들이 서로를 밟으며 만든 탑의 꼭대기는 과연 하늘에 닿았을까?


 나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에 돌아온 것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학생들이었다.


 아하, 꼭대기에는 아무 것도 없구나!


 비가 내리는 운동장을 나는 유쾌하게 가로질렀다.






-7-


 학교를 나오고 나서 나는 집 옆의 교회에 가 보았다.


 아직 종교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했다.


 교회 문을 열어보니 드넓은 방이 펼쳐졌다.


 그 방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단 한 명을 위한 교단이 있었으며, 그곳에는 목사님처럼 보이는 사람이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돈뭉치를 든 채 자고 있었다. 성경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방의 나머지는 모두 무한히 늘어져 있는 의자들로 채워져 있었다. 의자 앞에는 성경이 하나씩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의자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혼이 나간 듯이 보였다.


 나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교회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나는 교회를 나갔다.






-8-


 걸어도 걸어도 펼쳐지는 세계는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세계는 결코 걸어서 정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나 말고 깨어 있는 다른 사람이 있지 않을까?


 만약 이 세계가 정말로 나만이 깨어있는 잠의 미궁이라면 끔찍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모든 이가 잠에서 깨어나기 싫어하고, 잠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그야말로 잠에게 수동적인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끔찍할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잠들어 있었던 게 아닐까?






-9-


 편지를 쓰기로 했다.


 편지를 써서 곱게 종이 비행기로 접고, 하늘을 향해 던질 계획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나마저 자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전세계가 잠들어 있고, 오직 나만이 깨어 있다면, 그건 깨어 있는 내가 비정상이라는 뜻일까? 너무 비상식적이다.


 이 세계가 비정상적이다.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잡생각을 모두 잊기 위해 편지 쓰기에 몰두했다.


 나에게는 이제 편지밖에 없다.


 아아, 비현실적인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행동이 매우 현실적이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펜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편지는 갈수록 헛소리로 가득해졌다. 편지의 말 속에 나는 나를 가뒀다.


 잠 속에 갇힌 사람들과 헛소리 속에 갇힌 나.


 나는 아직도 깨어있는가?






-10-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런 곳에서 나 혼자만 깨어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마치 이 전세계가 우리 반 친구들인 것처럼 느껴졌다.


 '공기'는 좌절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만,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했다.


 인정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


 내 편은 아무도 없다.


 어째서 나는 이 고독의 족쇄에 묶여야 하는가.


 왜 나만 잠들지 않은 거지?


 억지로 자려고 해도, 나만이 깰 수 있다는 사실이 자꾸만 나를 깨운다.


 그래, 차라리 모든 걸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부엌에서 식칼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칼로 내 배를 찌르는 시늉을 했다.


 겁쟁이는 살아갈 자신도, 죽을 자신도 없었다.


 대신 다시 헛소리 속에 자기 자신을 가두었다.






-11-


 글을 쓰기로 했다.


 글만이 내가 존재한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내가 생각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 나는 더욱 헛소리를 풀어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망상에 미쳐갔다.


 글을 써서, 그래서, 무언가 변한 게 있을까?


 글쎄.






-12-


 존재증명.


 친구 이야기.


 교실 이야기.


 학교 이야기.


 경쟁 이야기.


 신 이야기.


 속이는 이야기.


 가두는 이야기.


 죽이는 이야기.


 다음은 뭐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13-


 꿈에서 깬 나는 멍하니 벽을 쳐다봤다.


 부엌에서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아아, 그렇구나.


 처음부터 자고 있었던 건 이 세계가 아니었어.


 모두가 잠들어 있다는 착각 속에 갇혀 깨어나기를 거부했던 건 바로 나였다.


 나는 마침내 이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아무도 모르게 웃었다.


 제목은, 그래, 그렇게 하자……





 "깨어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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