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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치질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울 속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칫솔을 입에서 빼고 입안 가득 물고 있던 치약 거품을 뱉어낸 후 거울 속 나를 향해 손을 들었다.

 "안녕."

 그러면 거울 속의 나도 내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아무도 없는 방, 나의 아침은 나 자신에게 인사하는 걸로 시작한다.





 오늘 하루 수업도 유익한 건 하나도 없었어.

 나는 침대에 드러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 벽지 무늬를 아무 의미 없이 관찰하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책상 위 노트북 화면에는 이미 워드 프로세서 띄워져 있었다. 나는 키보드를 두들기며 첫 문장을 썼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웠다. 다시 첫 문장을 썼다. 이것도 아니다. 나는 백스페이스를 계속 두드렸다.

 결국 새하얀 화면에는 한 글자도 적혀있지 않았다.

 하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타기 위해 서랍장을 열었다. 낡은 머그잔에 인스턴트 믹스를 한 봉지 쏟아 넣고 뜨거운 물을 붓자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가 김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 몸은 이미 카페인에 길들여진 지 오래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을 들고 나는 베란다를 향해 걸어 창문을 열었다. 바깥은 추웠다. 아, 추운 날씨에 대해서 써볼까. 그러나 생각나는 주제가 없었다. 들고 있는 커피를 바라보았다. 새까만 독물에 비친 내 모습은 피곤해 보였다. 커피에 대해서는 예전에 썼다가 지운 적이 있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깜깜해진 바깥은 네온사인과 건물불빛이 야광색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잠들지 않는 거리에 대해서 생각했지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건 중학생 작문 대회에도 나올 법한 뻔하고 흔한 이야기 밖에 없었다.

 "......오늘도 패스해야 되나."

 나는 오들오들 떨며 창문을 닫고 다시 책상 앞으로 갔다.

 아직도 화면은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백지였다.

 한때 내게 새하얀 백지란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말해줬던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무 것도 적지 못한다면 백지는 결국 백지에 불과했다. 백지 상태인 머릿속에서 백지 위에 쓸만한 걸 생각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정말 날이 아닌가 보다.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위에 누웠다. 가만히 있으니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 내는 소음이 미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눈을 감고 몸에서 힘을 쭉 뺐다. 푹신한 매트리스에 몸이 파묻히는 느낌이 좋았다. 이대로 매트ㅣ스 속으로 영영 먹혀 아무 것도 안하고 싶었다.

 눈을 감으면 오늘이 지나기 전엔 다시 뜨지 못할 걸 알면서도, 내 의식은 점점 뭉게뭉게 안개가 되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소설을 쓰는 데에는 각자 동기가 있을 것이다.

 위대한 심리학자는 그 동기를 커다란 몇 가지 종류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소설의 수만큼 소설을 쓰는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복잡하게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내 성격도 담겨있다.

 첫 소설을 완성한 건 고등학생 때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 단지 영어연극 조별과제로 냈다가 기각 당한 아이디어를 살짝 각색한 것이었다. 결과물에도 꽤 만족했던 나는 소설에 대해 쉽게 생각했다. 단지 머릿속 아이디어를 글로 풀어내면 소설이었고, 그래서 소설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의미 없는 낙서도 그림이듯이, 내가 쓴 소설도 난잡한 텍스트의 나열에 불과했다. 그걸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로 나는 소설을 마치 일기장처럼 써왔다.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학교 생활, 주변에서 강요하는 경쟁과 그로 인한 학업 스트레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부당함을 표출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나 자신. 소설은 내 자신의 모습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었고, 동시에 얄팍한 말장난 뒤에 나 자신을 숨길 수 있는 피난처였다. 그 시절에 쓴 아홉 편의 단편을 읽으면 지금도 그 시절 반항기 가득했던 사춘기 때의 내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나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나약하고 철이 덜 든 내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다음 날 아침에도 나는 어푸어푸 세수 하다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결국 어제 써보려고 했던 단편은 소재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자정을 가리키는 종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거울 속에 비친 사람은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를 피곤한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우리는 동시에 손을 들었다.

 "안녕."

 "안녕."






 내가 소설 연재 사이트에 대해서 알게 된 건 아홉 편을 완성하고 나서 1년 뒤의 이야기였다.

 거기서 연재하기 시작한 소설은 한 남고생과 그를 병적으로 사랑하는 네 명의 히로인이 등장하는, 소위 '라이트노벨'이라고 말하는 장르의 소설이었다. 사실 이전에 "나름의 영웅적 가치관을 가진 정의로운 남고생이 실패를 딛고 성장하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런 도덕 교과서 같은 소설은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설이 뭘까 과자 뜯어 먹으며 고민하던 나는 연재 사이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소설들이 특정 소재를 공유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병적 사랑 히로인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내 소설이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런 히로인을 좋아한다. 그건 아마도 나 자신이 그 정도로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안쓰러운 무의식적 소망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처음에는 쓰면서 꽤 즐거웠다. 나 자신도 그런 취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설 속 주인공에 자신을 이입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쓸 수 있었다. 나름의 반전 결말과 거기에 담긴 메세지도 있었다. 물론 모든 소설이 반전이나 메세지가 담겨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내 소설이 누군가에겐 신선한 충격이고, 누군가에겐 의미 있는 소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소설은 저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타임킬링용으로 즐길 수 있는, 빈 껍데기 오락 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후반부로 갈 수록 나는 내 집필 속도가 예전답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키보드를 두들기면 두들길 수록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나를 가로막으려고 했다. 그건 두 가지 모순적 자아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기에 불가피한 결과였다. 사람들은 내 소설을 가볍게 즐기고 있었고, 나 또한 그렇게 즐기면서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쓰고 싶은, 무겁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결말을 결코 쓸 수가 없었다. 그건 독자에 대한 배신이었다. 결말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의도했던 반전은 어쩔 수 없이 넣었지만, 거기에 어떤 중요한 의미를 담으려는 욕심은 최대한 줄였다. 그 결과 내 소설은 잘 가다가 뜬금없이 의미심장한 구린 반전으로 끝을 내는 어중간한 소설이 되어버렸다.

 완성된 소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게 정말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이었는가? 나는 왜 이 소설을 쓰려고 했지? 그제야 나는 이 소설이 단지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시작했던 소설이었음을 생각해냈다. 나는 분수에 맞지 않게 인기몰이용 소설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건 나름의 자업자득이었다.






 오늘은 간신히 소재를 떠올릴 수 있었다.

 동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괜찮은 단편이 나올 것 같았다. '불꽃 속에서 타오르는 환상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는' 성냥팔이 소녀를 현대의 권위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이 걸려있는 일에도 자신의 부, 명예, 그리고 권력의 환상에 사로잡혀 포기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리기로 결정했다.

 마침 창밖을 바라보니 하얀 눈이 동네를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겨울인가.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작년 겨울은 내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연재 사이트에서 완결냈던 그 소설은, 비록 초라하고 추했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을 공들인 만큼 버리기에도 아까웠다. 마침 겨울의 공모전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소설을 고쳐서 세 출판사에 각각 작품을 넣어봤지만 결과는 모두 1차 탈락이었다. 아마 그들도 내 소설의 어중간한 스탠스를 꿰뚫어본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프로를 상대로 눈속임을 시도하려 했던 어설픈 아마추어에 불과했다.

 그 후로는 꽤 긴 공백기간을 가졌었다. 세 차례의 실패는 어설픈 동기로 시작한 내 창작활동에 의구심을 갖게 했다. 나는 소설로 사회의 불합리한 모순을 고발하려는 정의감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소설로 돈 벌어 먹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내게 소설은 굳이 따지자면 취미활동에 불과했다. 단순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한 가지 수단이었으며, 방향성 없이 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나약한 중얼거림이었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부터 이미 꽝이지만.

 그리고 이야기는 현재로 흘러온다.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마음 먹고 꾸준히 단편을 쓰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다. 미친 척하고 하루에 한 편씩 써보겠다고 다짐했었다. 당연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예전에 썼던 아홉 단편들을 마치 그날에 쓴 단편인 것처럼 포장하며 자기합리화를 했다. 어차피 못할 건 알고 있었다. 매일 단편 소재를 생각해내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생각해낸다 해도 그걸 글로 옮겨 적는 건 별개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의외의 성과는 있었다.

 예를 들면 고등학생 때 썼던 아홉 편의 단편이 얼마나 난잡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느낄 수 있게 된 것. 고쳐야 할 군더더기 문장들도 많이 보였다. 아직은 그 문장들을 어떻게 해야 부드럽게 수정할 수 있는 지 모르겠지만, 십중팔구는 그 문장을 지우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됐다.

 또 다른 성과는 쓰는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낀 것. 소재를 떠올리고, 그것을 어떻게 요리할 지 이리저리 구상하면서 그것을 최대한 잘 살릴 수 있는 문장으로 쓰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힘들고 지치는 작업이었지만 그만큼 완성할 때의 보람은 컸다. 가끔씩 단편에 대한 칭찬을 들으면 괜히 어깨가 으쓱여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다시 그날의 '먹먹함'과 조우해야 했다. 단편쓰기로 날마다 쌓이던 피로가 마침내 터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어차피 아무도 읽지 않을 소설, 써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지금까지 30여편의 단편을 쓴 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키우기도 했다. 단지 쓸데 없는 불안이 아니라 실제로도 소재를 생각해내는 것도 전보다 많이 어려웠다. 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 원동력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형용할 수 없겠지만,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사막 위 버려진 국도에서 달리다가 엔진이 다 떨어진 고물차와 같은 심정이었다.

 세 문단 정도 쓴 후, 나는 잠시 의자 등받이에 기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에게는 이 소설 역시 예전만큼 잘쓴 단편이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알고서도 이 소설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기 위해 세면대로 향했다. 찬 물로 얼굴을 적시니 안개처럼 두리뭉실 했던 두뇌 속도 차츰 선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들면 거울 속의 내가 언제나 있는 그 자리에 서 있다.

 "잘 쓰고 있어?"

 나는 물었다.

 "너는 이 소설에 사회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거야?"

 "소설 속에 담고 싶어하는 그건 잘 드러나고 있어?"

 "이 소설을 읽은 그 친구들은 저번처럼 또 칭찬해 줄까?"

 "과연 이 소설도 뻔하고 흔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거울 위에 물을 뿌렸다. 거울 속의 나는 얼룩덜룩해지면서 형태를 잃었다.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소설을 이어나갔다.






 다시 거울 앞에 돌아왔다.

 "잘 완성했어?"

 나는 물었다.

 예상대로 내가 쓰려고 했던 그 소설은 이도 저도 아닌 빈 껍데기가 되고 말았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건 나에 대한 실망감인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인지 알 수 없었다. 소설 속의 내가 완벽하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화가 났다. 거울이 쩌저적 깨지면서 크고 작은 조각 수천 개로 변했다. 각각의 조각에는 모두 내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아홉 편의 단편을 떠올렸다. 그 후 연재 사이트에서 썼던 그 소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 40편 가까이 쓴 단편들을 생각했다.

 크고 작은 내 모습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거울이 더 작은 조각으로 쩌저저적 깨졌다.

 오른손 주먹이 아파왔다. 내 작은 마음 조각들이 박혀 새빨간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나는 거울의 내 모습이 더 이상 내 모습처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더 화를 냈다.

 이제 내게 아침마다 인사를 해줄 그 사람은 없었다.

 나를 소설에 대한 강박관념 속에 가둘 그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나 자신은 내가 살고 있는 그 어느 곳에 항상 있으며, 내가 있는 곳엔 언제나 나도 있을 것이다. 거울 속의 나는 그저 나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핸드폰 속 자신의 모습을 볼 때도,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도, 심지어 꺼져 있는 컴퓨터 화면 속 나의 흉측한 얼굴을 볼 때도, 나는 괴로워할 것이다.

 내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내 오른 주먹을 왼손으로 감싼 후 화장실에서 나왔다. 평생 감싸며 살아갈 것이다.

 기승전결이 아직 없는 프롤로그 뿐인 내 이야기에 잠시 한 줄을 비워 놓는다.

댓글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16.12.01 02:41
  • 프로필사진 천가을(千秋) 감사합니다!
    이 기분을 어떻게 말씀 드려야 할 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장문의 댓글을 받은 것도 처음이고.

    포기하지 않고 창작활동을 계속 하는 것으로라도 보답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2016.12.01 09: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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