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단편 소설

Honey-colored Sea under the Moonlight

천가을(千秋) 2017.02.18 07:24

나는 나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야,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뒤로 묶고, 가죽 고글과 기름투성이 작업복에 얼룩덜룩한 멜빵바지까지 입은 내 모습은 영락 없는 꽁지머리 기계공이었으니까. 물론 여성이 기계공을 하지 마라는 법은 없었지만, 이 나라에서 여성 기계공을 찾는 건 모래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다. 나도 가족과 함께 살 때는 하루에 몇 번이고 "제발 여성답게 살아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그 자식 얼굴 앞에 타르에 얼룩진 가운데 손가락을 당당히 펼쳤다.


나는 힘을 꽉 준 스패너로 커다란 너트를 조였다. 이마에서 땀이 기름범벅인 볼을 타고 주르륵 내려왔다. 나는 더러운 소매로 땀을 스윽 닦은 후 다시 한 번 더 너트를 조였다. 조인 부분을 손가락을 깡깡 쳐보니 잘 조여졌는지 기분 좋은 울림이 들렸다. 만족한 나는 한 번 더 땀을 닦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고를 가득 메운 고철덩어리들이 잠시 쉬러 가는 나를 배웅해줬다.


깊은 산 속에 위치한 이 저택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래 버려진 산장이었던 것을 내가 개조해서 살고 있는 중이다. 집안의 대부분의 것들은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덕분에 구멍투성이었던 집 전체가 거대한 톱니바퀴 투성이가 되어버렸다. 물론 그쪽이 훨씬 멋지고 아름답기 때문에 나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다 고친 거야?"


거실의 커다란 소파에 드러눕자 하긴스가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말로 대답하는 대신 그를 끌어안고 볼에 키스 했다. 비록 늠름한 체형인 것도, 잘생긴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하긴스를 좋아했다. 주근깨투성이 얼굴도, 살짝 튀어나온 말랑한 뱃살도, 걸걸한 그의 목소리도 전부 사랑스러웠다.


하긴스는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잠시 쉬고 있어, 매쉬 포테이토 해줄 테니까."


"어제도 매쉬 포테이토 먹었잖아!"


하긴스는 부엌으로 가면서 낄낄 웃었다.


"이건 고효율 식품이라면서 감자만 왕창 산 메리 잘못이야."


"감자로 할 수 있는 요리는 매쉬 포테이토 말고도 많은걸."


"미안해, 난 메리처럼 창의적이지 않아."


하긴스는 귀여운 앞치마를 둘러맨 후 휘파람을 부르며 포대기에서 감자를 세 개 꺼냈다. 감자를 씻는 모습을 보던 나는 피식 웃고선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삶기 좋게 감자를 썩둑썩둑 자르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왠지 행복했다. 나는 몸을 옆으로 뒹굴며 잠결에 중얼거렸다.


"하지만 감자는 이제 지겨운 걸......."


얼른 저 감자 놈들을 해치워야겠어.










이 나라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썩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한다. 그건 일부러 '매드 사이언티스트'라고 구분해서 부르는 멸칭에서부터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과학자와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차이점은 가우스 왕립과학회 가입 여부였다.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학회에서는 조금이라도 수칙에서 벗어나는 연구라고 판단되면 더 알아보지도 않고 바로 연구자에게 "학회에 남을 것인가, 연구를 계속할 것인가"란 선택지를 준다.


나는 그런 선택지조차 받지 못했지만.


"어째서 여왕의 나라라는 곳이 여성 과학자를 인정하지 않는 거지?"


나는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파이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투덜거렸다. 옆에서 깃펜과 메모지를 들고 있던 하긴스가 말했다.


"원래 윗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 똑같거든. 남자든 여자든 품위를 먼저 찾지."


"여성 과학자의 어디가 품위 없다는 거야!"


"글쎄, 만약 카리아나 여왕님이 지금 메리의 모습을 본다면 기겁하실걸?"


내가 뭐 어때서, 라고 따지려던 나는 내가 입고 있던 옷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저기 얼룩지고 바랜 옷은 확실히 품위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아마 이걸 입고 거리에서 우연히 여왕 자식이랑 만나면 그 자리에서 비명지르면서 쓰러지겠지.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이야, 그거 참 볼만하겠는걸."


"안돼 메리, 참아야 해."


하긴스는 내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난 파이프가 느슨한 곳을 조인 후, 피식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말했다. 하긴스는 내가 조인 곳을 메모장에 기록하면서 말했다.


"그런데 메리는 그거 들었어? 가우스 왕립과학회 국법 수정안."


"아아, 그 망할 개자식들."


나는 학회 이름만 듣고 바로 쯧 혀를 찼다. 안 그래도 보수적인 그 학회가 이번에는 과학자의 생물학 실험을 전면금지 시키는 국법을 제안했다는 것이었다. 허가증을 받은 학회 의학자도 학회의 감시하에 실험해야 하며, 모든 실험활동 내용은 기록되어야만 한다.


"그 자식들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야."


나는 구부러진 쪽이 찢어져버린 파이프를 끙차 벽에서 떼어냈다.


"어떤 미친 놈이 여왕한테 자기 실험에 필요하다면서 왕족만이 기를 수 있는 견종을 달라고 징징거렸다면서."


"메리라면 그의 행동을 옹호할 줄 알았는데."


새로운 파이프를 들면서 내가 말했다.


"나는 쓸데 없는 연구는 하지 않아. 몇 번이고 말했지만 나는 너를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으니까."


"나 때문에 너무 무리하지는 마."


나는 새로운 파이프를 벽에 고정시킨 후 소매로 땀을 슥 닦았다.


"아냐, 이건 내가 좋아서 선택한 거니까."


그렇게 말하고선 나는 하긴스에게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너도 날 떠나지 마, 하긴스."


"떠나지 않아, 메리."


하긴스도 미소를 지었다.


그의 왼손 약지에는 톱니바퀴 모양의 은색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었다.


덩치만 큰 라디오는 생물학 실험을 위해 시체를 사용하는 미친 사람에 대한 뉴스를 하다가 이내 잡음만 토해냈다. 가끔씩 "시체도난," "현상수배" 같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이 들렸지만 나는 라디오 소리가 거슬려서 꺼버렸다.


"나중에 저것도 어떻게든 손 봐야겠어."


"지금은 뭐하는 중인데?"


방금 갓 구운 쿠키를 접시채로 들고 온 하긴스가 내게 질문했다. 나는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은 후 콜록콜록 기침하며 말했다.


"보다시피, 콜록, 용접 중이지."


"이 커다란 실린더는 도대체 뭐야?"


하긴스가 가리킨 내 옆에는 O2라고 적힌 커다란 가스통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산소통을 꽁꽁 두드리면서 웃었다.


"여기에 액체상태로 압축한 산소가 들어갈 거야."


"산소가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 거야? 우리가 지금 숨 쉬는 것도 모두 산소 아니야?"


"들숨의 일부가 산소일 뿐이야. 그리고 연료를 태울 때도 산소가 필요해."


나는 가스통을 바닥의 커다란 밸브에 용접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매캐한 연기가 폴폴 피어올라 용접 중인 좁은 창고를 가득 매웠다. 나는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다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고글을 끼고 마스크를 썼다. 하긴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며칠 전에 잃어버린 환풍기 리모콘를 용캐 찾고 바로 작동시켰다.


나는 가죽장갑 낀 손으로 엄지를 척 세웠다.


"땡큐, 하긴스."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걸."


하긴스는 내 옆에 쿠키 접시를 내려놓았다. 나는 마스크를 살짝 벗고 쿠키를 한입 베어물었다. 이미 많이 식어버렸지만 달달하게 씹히는 초코칩은 내 두뇌에 곧바로 포도당을 공급시키기에 충분했다. 하긴스도 쿠키를 하나 집어 입 속에 넣었다.


"그래서 산소통이 왜 필요하다고?"


"흠, 글쎄."


하긴스는 입 안 가득 쿠키를 우물우물 씹으며 창고를 훑어보았다.


"이 집은 언제 완성되는 거야? 요즘 굉장히 많이 뜯어고치는 것 같던데, 난 메리와 달리 멍청해서 메리가 하는 작업을 이해하지 못했어."


"차차 알게 될 거야, 하긴스. 완성되면 꼭 알려줄게."


고글 속에서 내가 하긴스에게 윙크하자 하긴스도 귀엽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 집이 완성되면, 모든 것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










머리끈을 풀자 붉은 빛이 감도는 갈색머리가 커튼처럼 어깨 아래로 펼쳐졌다. 항상 머리 위에 걸치고 있던 고글도 빼고, 몸에 밴 기름자국도 깨끗이 씻어내고, 옷장 안 속에 고이 모셔둔 주황색 드레스를 몸 위에 걸쳐보자, 어머니께서 아름답다고 칭찬하셨던 오래 전의 내 모습이 거울 속에 있었다.


나의 모습을 보았던 남성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그렇게만 입고 다닌다면 내가 바로 청혼했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계공이자 매드 사이언티스인 나에게, "어째서 그렇게 입지 않느냐"고 말했다. "네가 갖고 있는 아름다운 외모를 기름때 속에 썩힐 거냐"고 내게 말했던 한 남성은 드레스에 패인 가슴골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하긴스는 마을에서 내게 드레스를 입으라는 말을 하지 않은 유일한 남자였다.


"네가 스패너를 돌리면서 흘리는 땀이 굉장히 아름다웠어."


그것이 하긴스가 내게 설명해준 '첫눈에 반한 이유'였다.


하긴스가 내 드레스의 모습을 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그에게도 몇 번 보여준 적이 있었고, 하긴스는 내가 "어때?"라고 물어볼 때마다 쑥쓰럽게 웃으면서 "정말 아름다워"라고 답해줬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드레스를 입으라고 더 강요하지 않았고, 그런 하긴스에게 나는 매일 감사함을 느꼈다. 기름투성이 내 모습이 나에게는 '진짜 나'였고, 하긴스는 유일하게 '진짜 나'를 받아들여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만은 세간이 말하는 '여성'이 되어보고자 한다.


나는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톱니가 손끝에 까끌까끌한 감촉으로 느껴졌다. 이것은 둘의 평생의 약속을 새긴 우리만의 약혼 반지였다. 손가락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너무 긴장한 건가, 두근대는 심장을 꼬옥 누르면서 나는 천천히 복도를 걸어나왔다.


그곳에는 정장을 입은 하긴스가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드레스의 치마를 살짝 들어보며 하긴스에게 씨익 웃었다.


"나 오늘 어때?"


"굉장히 아름다워, 메리."


나는 하긴스에게 달려가 그의 두꺼운 손목을 붙잡았다. 영문도 모른 채 내게 붙들려 끌려온 하긴스는 복도 끝의 커다란 스위치를 마주쳤다. 그것은 작은 레버였는데, 이것을 아래로 내리면 비로소 내 완성작이자 야심작이 작동된다. 나는 하긴스를 올려다보았다. 하긴스와 나는 서로를 마주보며 손을 겹쳤다. 그리고 그 손을 레버 위에 올려놓았다.


똑똑.


"현관에서 들렸는데. 누군가 온 모양이야."


"지금 이 시각에, 이 깊은 산속에 누가 온다고?"


나는 의문의 불청객에 의아했지만 하긴스와 같이 현관을 향했다. 현관문 앞에 서자 또 다시 밖에서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먼저 현관문을 열려고 하자 하긴스가 제지했다.


"느낌이 안 좋아, 메리는 뒤로 물러서."


하긴스 말대로 살짝 물러선 나는 하긴스가 현관문을 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천천히 열린 문 뒤에는 굉장히 익숙한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왜 왔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긴스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누구세―"


"안 돼!"


"당신들, 움직이지 마!"


내가 팔을 뻗는 동시에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하긴스의 팔이 뜯겨져 뒤로 날아가버렸다. 가만히 서 있던 하긴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더니 다시 앞에 서있는 남성에게 질문했다.


"어째서......?"


그러나 그 남성은 그에게 다시 총구를 겨눈 뒤 정확히 그의 정수리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의 턱 위가 전부 날아가 바닥 위에 쿵 하고 떨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하긴스도 그 총격에 뒤로 쓰러지면서 저 뒤로 미끄러졌다.


나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


"왜, 왜 이런......."


"아가씨가 메리 프랑켄슈타인인가?"


그 남성, 경찰은 내 얼굴을 자료 속 얼굴과 대조해보면서 질문했다. 하지만 나는 목이 턱 막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메리 프랑켄슈타인, 개리 하긴스가 불의의 사고로 죽자 그의 시체와 함께 마을에서 도망쳐 산 속에서 살기 시작함. 그리고 하긴스의 시체에 오토마타(자동기계)를 심어 산 자를 흉내내게 한 괘씸한 죄를 저질렀으니, 너 자신도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잘 알고 있겠지."


"아, 아니야......."


겨우 대답을 뱉어보았지만 그것마저 거짓말이었다.


바닥에 흩어진 수많은 작은 톱니들과 전선가닥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 뒤에 쓰러져있는 하긴스의 턱 위는 지금도 전기 스파크를 타닥타닥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내 두뇌는 그것을 부정하라고 자꾸만 명령했다.


"메리 프랑켄슈타인, 어서 우리를 따라와."


"......어째서 온 거야."


"메리 프랑켄슈타인."


"우린 이제 막 시작을 했는데."


"저 시체덩어리는 처음부터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어, 메리 프랑켄슈타인! 네가 그의 두뇌에 '자신을 사랑하라'고 주입시켰을 뿐이지, 안 그래?"


"아니야!"


"추하고, 더럽고, 거짓 뿐인 사랑을 계속하고 싶은 건가? 이것은 사자에 대한 모독인 동시에, 살아있는 자에 대한 모독이다! 기계장치는 결코 살아있는 것이 아니야, 메리 프랑켄슈타인. 생명이란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거지."


"닥쳐!"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지, 어서 나와 메리 프랑켄슈타인!"


"어째서!"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 앞을 가로막은 남성들의 총구가 전부 나를 향했다. 나는 숨을 헉 들이쉬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았다. 비록 신을 믿지 않는 나였지만, 지금은 나의 기도가 닿길 바라면서. 몇 초 뒤, 고막을 울릴 정도로 큰 발포음이 저택 안을 뒤흔들었다.


"......아아."


나는 눈을 조금씩 떴다.


죽지 않았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 앞에는, 그럴 리가 없지만, 하긴스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한팔 뿐인 그 몸으로, 얼굴도 없는 그 몸으로, 그는 마지막으로 포기할 뻔한 나를 구해줬다. 내 품 안에 털썩 쓰러진 하긴스의 혀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징그럽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하긴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물이 자꾸만 넘쳐 하긴스의 몸 위로 뚝뚝 떨어졌다. 결국 나는 하긴스의 몸을 끌어안고 펑펑 울고 말았다.


"하긴스, 내가 미안해! 지금까지 내가 정말 미안했어! 나, 나는, 너의 그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네 품에 안기고 싶었는데......, 다시 한 번 '땀이 아름답다'는 너의 말이 듣고 싶었어....... 하긴스, 이 저택에서 지금까지 나를 사랑한 건 너가 아니라 내가 꾸민 거짓된 마음이었니? 너의 순수한 마음을 기계장치로 더럽힌 나를 용서해줘......."


"으......, 으어......."


하긴스의 목에서 성대를 긁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아이......."


스피커가 아니라, 직접 목으로 내는 소리.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하긴스, 혹시 말할 수 있는 거야?"


그 소리는 갈 곳을 찾더니 곧 스피커의 잡음과 함께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입천장이 사라져 발음을 할 수 없는 그가 내게 말을 전달하기 위해 목 안쪽에 부착된 스피커를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그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메리......, 메리 프랑켄슈타인......."


잡음이 섞인 하긴스의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하나뿐인 팔을 덜덜 떨면서 들어올리더니 내 드레스를 붙잡았다. 나는 다시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제발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메리, 내가 이 저택에서 살면서부터......"  


정말 과분한 기도지만, 제발 이번 한 번만 부탁해요.


"아니 그 전부터......."


제발.


"그리고 지금까지 생각한 것이지만......."


제발, 그가 저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어."


"아아......."


눈물이 다시 넘쳐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드레스를 붙잡은 하긴스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역시 메리는 드레스가 아니라 작업복을 입어야 해."





마지막 힘까지 다 쓴 하긴스가 툭 쓰러지면서 그가 붙잡은 드레스가 찌익 찢어졌다. 그 찢어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러나 우유빛 맨속살이 아닌 기름투성이 작업복이었다. 드레스의 감촉이 도저히 익숙하지 않아 작업복 위에 드레스를 걸쳐입었던 것을, 하긴스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그는 익숙한 기름냄새를 내 옷에서 맡았던 게 아닐까.


어찌 되었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그들은 나를 경계하며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올리고 눈을 찔끔 감았다. 그래,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부터가 우리 둘이 꿈 꿔오던 인생의 시작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쉰 후 드레스를 그들 앞에서 확 찢어버렸다. 주황색 천쪼가리가 되어버린 것이 현관에서 흘러들어온 바람을 타고 복도에서 팔랑팔랑 춤을 췄다. 나는 그들 앞에서 씨익 웃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보시지."


곧바로 뒤돌아 저택 안으로 달리기 시작한 나를 경찰들이 뒤에서 탕 탕 쏘았지만, 나는 코너를 휙 돌아 아슬아슬하게 총알을 피했다. 경찰들은 내 집 안으로 들이닥쳐 나를 쫓기 시작했다. 나는 벽에 설치한 파이프 중 하나를 드라이버로 쿡 찔렀다. 뜨거운 스팀이 폭발적으로 새어나오면서 바로 뒤에서 쫓고있던 경찰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보일러를 쓰지 못하겠지만 어쩔 수가 없겠네.


어느새 나는 복도의 끝까지 달렸고, 내 뒤에는 경찰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뒤돌아보았다. 그들은 다시 총을 장전하고 나를 향해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레버 위에 손을 올렸다.


"메리 프랑켄슈타인, 당장 그것에서 손을 떼."


"총을 쏴보던가. 나는 이것을 내릴 거야."


"당장!"


내가 레버를 아래로 당기는 순간 저택 전체가 쿠구궁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한 명이 총을 쐈는지 탕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진동과 함께 넘어진 덕분에 총알은 내 볼을 스치고 뒤의 벽에 깡 부딪히면서 스파크를 일으켰다. 진동은 좀처럼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경찰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간신히 무릎과 팔로 자신의 무게를 버티면서 나를 향해 노려보고 있었다.


"메리 프랑켄슈타인, 무슨 짓이냐!"


"무슨 짓인지 알고 싶어?"


나는 이를 악 물고 레버 옆에 달린 빨간 버튼을 꾹 눌렀다. 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끼리릭 올라가더니 어느새 바깥 공기가 저택 안으로 세차게 불어닥쳤다. 경찰들은 거센 바람에 겨우 눈 뜨고 밖을 바라본 후 기겁하고 말았다. 나는 바람에 내 목소리가 묻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꺄하하 웃으면서 경찰들에게 소리 질렀다.


"잘 봐, 이것이 너희들이 사랑하는 칼리아나 여왕의 나라 풍경이니까!"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있는 밤하늘 구름 아래에 펼쳐진 것은 조그마한 전등 빛이 모여 이룬 꿀색 바다였다.


아마 지금 여긴 상공 1km 정도 되지 않을까. 그 코 높은 칼리아나 여왕보다 더 높은 밤하늘이라, 하긴스와의 허니문으로는 아주 좋은 곳이구나. 나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의지하고 있던 레버에서 조심스럽게 손을 뗀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짝 다리가 후들거리긴 했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다시 여왕에게 돌려보내주지."


나는 기겁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몸을 움츠리고 있는 경찰들을 하나씩 발로 차 저택 밖으로 떨어뜨렸다. 점점 멀어지는 비명소리들이 굉장히 유쾌하게 들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경찰은 용케 용기를 내서 내게 총을 겨눴다.


"메, 메리 프랑켄슈타인, 당신은 절대로 용서 받지 못할 것이다! 다시 땅에 내려오는 순간, 그것이 네놈의 끝이라고 생각해라!"


"다행이네, 우리 둘은 평생 너희를 내려다보며 살 거니까."


나는 마지막 경찰까지 밖으로 밀어낸 후 다시 벽을 닫았다. 끼리릭 소리를 내며 벽이 내려오다가 쿵 하고 닫히자 "으악!" 하는 짧은 비명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아마 그 자식이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바닥을 붙잡고 있었나보다. 하지만 이제 그의 손가락은 다시는 총을 쥐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죽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는 레버를 가운데 위치에 놓았다. 그러자 저택의 진동이 멈췄고 나도 제대로 서 있을 수 있었다. 이제 이 저택은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계속 이 높이에서 망할 놈들을 내려다보며 떠있겠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니까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


"......하긴스."


뒤늦게 그를 떠올린 나는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질질 끌면서 현관에 널부러져 있는 하긴스에게 다가갔다. 아직 열려있는 현관문으로 그를 이루고 있던 작은 부품들이 떨어지면서 마치 별가루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차갑게 식어버린 그의 몸뚱아리를 껴안으며 볼을 비볐다.


"하긴스......, 날 떠나지 않기로 했잖아."


그의 몸에 달린 하나 뿐인 팔을 만지다가 나는 그의 약지에 끼어져 있는 작은 반지의 감촉을 느꼈다. 아직 그가 죽기 전에 나와 그가 새긴 평생의 약속.


현관 밖으로 서서히 아침해가 뜨고 있었다.


오늘, 우리 둘은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