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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8)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8)

 

들어가기 전에, 저는 원작을 읽지 않았습니다.

사실 주변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서 저도 작년에 사놓긴 했지만 동방 책장에 꽂아놓고 읽는 걸 미룬 지 어느새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런 책을 샀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읽을 생각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씩 동아리 사람들이 빌려가서 읽었을 뿐, 정작 책을 산 본인은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실사 영화가 나오고 올해 애니메이션이 나왔을 때도 별로 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진 않았습니다. 그저 동방에서 혼자 심심하게 뒹굴고 있다가 친구가 영화 보러 간다고 해서 따라간 것이고, 그 영화가 우연히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였을 뿐입니다. 어쨌든 이 아래로는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으로서의 감상이므로, 그걸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르는 아웃사이더 판타지

 

우선 초반부터 내용이 소위 말하는 아싸 판타지라는 점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친구 하나 없는 남자 주인공에게 반에서 인기 많은 미소녀 히로인이 어째서인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원작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만 봐서는 너무 뜬금없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학원물 라이트노벨에서 흔한 도입부이긴 합니다. (요즘 트렌드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소외당하던 남자 주인공이 적당한 계기로 미소녀 히로인에게 연애 플래그라는 걸 꽂아서 이러쿵저러쿵 해프닝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 책들은 내용 자체가 가볍기 때문에 그럭저럭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히로인의 장례식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만남 부분은 어째서인지 대충 넘어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어째서 그 주인공이어야 하는가, 어째서 히로인은 처음부터 주인공에게 강한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가, 납득하기 힘든 물음들을 가득 안으면서 이야기는 그렇게 진행됩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끝날 쯤에 그 물음들이 해결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후 히로인이 주인공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계기에 대한 설명이 나오긴 합니다만, 역시나 납득은 가지 않습니다. ‘신경 쓰이는 아이다 재미있는 아이다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식의 과정은 위에서 말한 학원물 라이트노벨에서나 기대할 법한 매커니즘이지, 설마 여기서 보게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합니다. 친구가 없는 남학생과 반에서 인기 있는 여학생이 엮인다는 현상 자체가 말도 안 되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소 과장이 들어간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야 합니다. 애초에 친구로서의 매력이 없기 때문에 친구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히로인이 주인공에게서 어떠한 매력을 찾는다면, 그건 보통 사람은 찾을 수 없는 매력이어야 하고, 따라서 히로인 자신도 보통 사람과는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보통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둘의 관계입니다.

정말 말 그대로 아싸 판타지군요.

아싸 판타지는 단지 만남에서뿐만이 아닙니다. 둘의 관계가 진행되면서도 적극적인 건 여학생 쪽입니다. 남학생은 귀찮은 척하면서 여학생의 적극적인 대시를 적당히 튕깁니다. 이것도 라이트노벨을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구도인데, 말하자면 거의 반드시 주인공이 변태거나 히로인이 변태인 겁니다. 이전에는 전자가 주류였다면 요즘은 후자가 주류인 느낌인 걸까요. (최근 몇 년간 라이트노벨을 못 읽어서 요즘 트렌드를 전혀 모릅니다.) 특히 아싸 판타지의 경우, 본인은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해봤자 기분 나쁘기만 하기 때문에 일부러 여성 쪽에서 먼저 대시하는 상황을 만드는 겁니다. 여기서 주인공이 적당히 튕겨주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이로써 저쪽에서 먼저 무방비하게 대시해왔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브레이크 걸어주는 쿨한 주인공이란 자기합리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은 그냥 자신이 아싸라서 인간관계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뿐인데! (막말)

정리하자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사쿠라는 굉장히 편리한 히로인이란 느낌입니다. 편리함을 넘어 유리함까지 느껴집니다. 사쿠라는 분명 많은 아싸들에게 사랑 받을 것입니다.

 

 

 

무미건조한 장면들, 죽어있는 인물들, 부자연스러운 연결

 

그리고 작품 전체적으로 등장인물들이 인형, 혹은 무대 장치 같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마치 각 인물에게 배역이 하나씩 있고, 자신의 배역을 마칠 때마다 무대에서 그대로 내려온다는 느낌. 예를 들어 사쿠라의 전 남자친구는 주인공과 사쿠라에게 화해시키는 계기를 준 후 그대로 리타이어 합니다.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이 세상에서 일부러 배제당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물론 결국 주인공과 사쿠라, 두 사람이 이 이야기의 중심이지만, 그런 걸 감안해도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너무 없었어요.

캐릭터성 자체도 굉장히 꾸밈이 많다고 느꼈어요. 원작에선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말이나 행동들이 너무 허구 속 인물같이 느껴졌어요. 특히 말투나 대사에 적응하기 너무 힘들었는데, 작가가 인기 많은 여학생은 이런 말투를 쓸 것 같다” “친구 없는 남학생은 이런 대사를 쓸 것 같다하고 상상했을 이미지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았어요. 성우 연기 탓인지 잘 모르겠으나, 현실 사람들은 그런 말투와 대사를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치 하나의 인형 연극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인지 작품의 중요한 순간들에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어요. 마치 적당히 잘 돌아가는 태엽장치 보는 기분. 전체적으로 무미건조해서 작품의 깊이를 느끼기 너무 힘들었어요. 굳이 비유하면 페이스북에서 책 홍보하기 위해 사건들을 나열한 카드 뉴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여기서 이렇게...?” 싶은 부분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대부분은 위에서 지적한 아싸 판타지 때문이었고,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있었네요. 예를 들어 사쿠라의 친구 쿄코가 주인공에게 위협하는 부분에서 왜 주인공이 저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거지?’ 같은 생각밖에 안 들었고. 주인공이 참지 못하고 사쿠라를 울렸다가 다시 화해하는 부분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따라가기 힘들었어요. 어린왕자 연출은 정말 물음표 그 자체.

그리고 가장 머리를 긁적였던 부분은 작품 내 가장 큰 반전이 나왔을 때였습니다. 우타노 쇼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말했지만 "독자를 배신하는" 반전이 항상 훌륭한 반전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네요.

그래요, 사쿠라의 죽음에 대해서도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어요. 물론 사쿠라를 그런 식으로 죽인 것은 작품의 주제의식과 연관시키기 위함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해서 좀 뜬금없었어요. 으음, 작위적이라는 말이 좀 더 어울리겠네요. 이미 작품 내에서 수차례 묻지마 살인 사건에 대한 뉴스를 일부러 보여준 시점에서 대충 예상할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복선을 심은 것을 포함해서, 이런 히로인의 죽음 자체가 굉장히 꾸며진 것처럼 느껴졌어요. 우리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것치곤 운명의 개입이 상당히 들어간 모양입니다.

작품 내에서 등장인물의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하는가는 여전히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이전에는 작가가 창조한 세계와 인물이므로 작가가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는 주의였습니다만, 글을 쓰면 쓸수록 점점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충격적인 반전, 혹은 개인적인 쾌락을 위해 자신의 인물들을 쓱싹 처리하는 것이 작가 본인은 즐거울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한 독자의 반응까지 작가가 억지 부릴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런 방식 자체가 그 인물의 죽음을 가볍게 느끼게 만든다는 점, 등등.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각자의 가치관 차이, 취향 차이에 따른 문제인 것 같군요.

 

 

 

도식화된 감동버튼

 

(여기부터는 스스로도 자신 없는 부분이기에, 궤변이다 싶으면 알아서 넘어가주세요.)

제가 처음으로 제 돈으로 직접 사서 읽어본 라이트노벨이 미아키 스가루의 ‘3일간의 행복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어째서인지 도서관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만화책이나 라이트노벨 조금씩 읽어보는 정도였는데, 3일간의 행복은 직접 읽어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때가 아마 고1이었던 것 같은데.

고백하자면 좀 울었어요. 상당히 마음에 드는 책이었습니다. 4년 전에 읽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 안 나지만, 천천히 감정을 쌓아올리다 마지막에 터뜨리면서 여운을 주는 방식이 인상 깊었어요. 미아키 스가루란 작가에게 흥미가 생겼고, 이후 그의 다른 책들이 정발되자마자 곧장 서점에 달려갔었습니다.

미아키 스가루의 책들은 좋았어요. 모두 여운이 짙게 남는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서로 비슷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제가 읽은 게 ‘3일간의 행복,’ ‘스타팅 오버,’ ‘아픈 것아, 아픈 것아, 날아가라였는데, 제가 그 책들을 읽고 감동을 받는 그 포인트, 그 방식이 묘하게 겹치더라고요. 자기복제라고 하던가요. ‘3일간의 행복의 다른 버전들을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3일간의 행복이후로 그런 비슷한 감성의 라이트노벨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이전까지 라이트노벨에 그다지 관심을 안 가져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최근에 교보문고 갔다가 놀랐던 점이 이전에는 라이트노벨 코너에 있었을 책들이 일본문학 코너에 전시되어있었단 점이었어요. 분명 어떠한 트렌드가 지금 만들어지고 있고, 거기에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도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보면서 ‘3일간의 행복을 떠올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그런 비슷한 감동 방식을 느껴서 그런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요, 클리셰를 넘어서 어떤 도식화된 감동버튼을 가지고 있는 기분입니다.

이것이 특별히 좋다, 혹은 나쁘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런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이 지금도 나오고 팔리는 거겠죠. 하지만 그런 식으로 도식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원본의 열화판, 열화판의 열화판들만 재생산하는 장르들도 있기 때문에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힘드네요. 어쩌면 지금 그 열화의 나선이 이미 시작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그래도 읽을 사람들은 읽으니까. 제가 더 뭐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 같지는 않네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나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으로서의 감상입니다. 분명 영화이기에 생긴 한계점들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정된 시간 내로 이야기를 압축하고 묘사를 생략하다보면 무미건조해지고 개연성이 부족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죠. 그럼에도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끔찍한 영화였냐 하면 그건 아니었어요. 작화도 좋았고요, 불꽃놀이 연출도 좋았어요.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장면들도 처음에는 많이 거슬렸는데, 적응하고 나니까 사쿠라가 나름 귀여웠어요. 그런데 이걸 제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로 하고 싶진 않고요. 최근 몇 달간 영화를 못 보다가 우연한 기회로 보게 된 건데, 얼른 다른 영화를 봐야겠다 싶었던 그런 영화였습니다.

, 중간고사 때문에 리즈와 파랑새 못 본 게 아직도 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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