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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책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 탐정은 독자 대신 사고해준다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冷たい密室と博士たち)]

모리 히로시 지음





"모든 것이 F가 된다"를 잇는 S&M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그만큼 전작과의 비교가 불가피하다, 2권이란 그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다. 형에게 비교 당하는 동생 같은 것이다. 특히 그 형이 명문고 명문대 나온 천재일 경우, 동생이 받는 압박감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은 그런 동생이다. 고등학교에 오니까 형을 아는 선생님들이 어째서인지 당신을 첫날부터 기대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유명한 형의 동생이니까 분명 무언가 특별한 걸 보여줄지도 몰라. 하지만 기대와 달리 천재의 동생은 범재였다. 그때부터 비교의 늪은 시작된다.


그러나 정말로 이 작품은 범재인가? 사실 동생에게도 요리쪽에 천부적 재능이 있을 지도 모른다. 다만 그 비교 기준이 학교 성적이라 마치 평범한 아이처럼 보일 뿐이다. 어쩔 수 없다, 올백 시험지의 임팩트는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니까. 그러나 분명 그 둘은 각자 다른 벡터의 천재다.


확실히 "모든 것이 F가 된다"에 비교하면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은 수수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근미래적인 오버 테크놀로지도 나오지 않고, 비쥬얼적으로 쇼킹한 장면도 별로 없다. 마가타 시키처럼 비밀스러운 인물도 없고, 작중 배경도 외딴 섬의 연구소가 아니라 평범한 국립 대학교다.


그러나 그만큼 이 작품은 각기 다른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의 메커니즘에 집중한다. 더욱 정통 본격 미스터리에 가까워진 작품이다.


이 책의 진가는 사이카와의 추리에서 나온다.


문제에 대해서 우선 경계 조건을 확인하고, 가능한 가설을 세운다. 모순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충족시킬 가설로 다시 고친다. 그렇게 계속 검토하고 수정하다보면 어느새 '그럴싸한' 답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접근 과정을 사이카와 교수가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대학 강의를 청강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즉 전작이 사건의 화제성에 비중을 뒀다면, 이번 작품은 추리의 치밀함에 집중한 인상이다.


물론, 여타 추리소설이 그러하듯, 탐정의 추리란 것은 결코 논리적이지는 않다. 주어진 증거들을 가지고서 우리들은 얼마든지 그럴듯한 이야기를 더 지어낼 수 있다. 주어진 점들을 지나는 그래프를 그릴 때 무한히 많은 곡선을 그릴 수 있는 것처럼.


그럼에도 사이카와의 추리가 치밀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납득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그럴듯한 이야기"는 작중에서 모에나 기타 교수가 한번씩 이야기 한다. 분명 모든 점들을 지나는 곡선이지만, 사이카와는 거기에서 부자연스럽게 생기는 꺾임을 지적한다. 사이카와의 해답은 부자연스러운 답을 배제하고 남은, 모든 점을 지나는 가장 깔끔한 곡선이다.


사이카와 교수가 해설하는 장면은 마치 우리에게 '사고의 길'을 보여주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한걸음 한걸음 그가 문제에 접근해나간 길을 따라 같이 걷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그 답에 도착해있다. 도중에 샛길이나 건너뜀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이카와 교수의 해답에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추리소설의 매력은 독자가 직접 추리한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탐정이 대신 사고해준다는 점에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S&M 시리즈에서 그나마 인간적인 드라마가 동기로 나오는 거의 유일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작중에서 사이카와가 범인의 절박함을 떠올리고 상상하는 묘사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작가 본인도 이건 뭔가 아니라고 느끼긴 했나 보다. 이것이 S&M 시리즈에서 완성된 첫 작품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어째서 다른 작품들에서는 범인 동기가 그렇게 다뤄지는지 왠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