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 외/시

이어폰

이어폰

천가을


이어폰 오른쪽이 망가졌다.

신 나는 음악을 들어도 절반만 신 난다.

절반만 신 나면 결코 들뜬 상태가 될 수 없어.


양쪽 다 들릴 땐 몰랐는데.

길 가면서 폼 나게 한쪽만 꽂고 다닌 적도 있었지.

그땐 한쪽만 들린다는 게 이렇게 불편한지 몰랐는데.


아아 눈을 감으면,

강렬한 비트와 현란한 기타 연주 속에 내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절반만 들리는 내 마음 속의 소리.

나머지 절반은 아무리 외쳐도 들리지 않아.


하지만 절반만 들을 수 있기에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오른쪽에 낮게 깔린 묵직한 베이스 소리.

시끄러운 기타 소리에 묻힌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아니면 다가오는 자동차 소리라던가,


      그리고 이제야 들을 수 있는,

너의 목소리.

'그 외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후의 밤하늘과 유성우  (0) 2018.11.21
이상한 나라  (0) 2018.05.13
이 전봇대는 사람을 죽입니다.  (0) 2018.05.13
죽음을.  (0) 2017.09.14
종말예행연습  (0) 2017.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