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천가을
이어폰 오른쪽이 망가졌다.
신 나는 음악을 들어도 절반만 신 난다.
절반만 신 나면 결코 들뜬 상태가 될 수 없어.
양쪽 다 들릴 땐 몰랐는데.
길 가면서 폼 나게 한쪽만 꽂고 다닌 적도 있었지.
그땐 한쪽만 들린다는 게 이렇게 불편한지 몰랐는데.
아아 눈을 감으면,
강렬한 비트와 현란한 기타 연주 속에 내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절반만 들리는 내 마음 속의 소리.
나머지 절반은 아무리 외쳐도 들리지 않아.
하지만 절반만 들을 수 있기에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오른쪽에 낮게 깔린 묵직한 베이스 소리.
시끄러운 기타 소리에 묻힌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아니면 다가오는 자동차 소리라던가,
그리고 이제야 들을 수 있는,
너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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