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터스컷(ディレクターズ・カット)]
우타노 쇼고 지음
밀실살인게임 읽고 크게 실망한 뒤로 크게 신경 안쓰고 있던 작가였지만, "살인을 생중계 합니다"란 부제목을 보고 '이 녀석 또 이상한 거 썼나보다' 생각하면서 집었다. 처음부터 깔 생각으로 책을 산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까겠다.
일단 이 책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그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탐정은 없고 대신 머리 이상한 놈들만 가득하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에는 추리소설 전매품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의 전말" 파트가 존재한다. 반전이랍시고 사건의 흑막이 나와서 이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한창 스토리가 클라이막스를 향해 고조되고 있을 때, 설명충 흑막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서 굉장히 연출된 길고 긴 설명을 시작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다고 생각해보자. 팍 식는다. 밀실살인게임 때도 느꼈지만 독자를 배신하는 반전이 언제나 좋은 반전은 아니다. 오히려 어이없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음을 우타노 쇼고는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캐릭터성도 문제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외톨이 남성이 어쩌다보니 살인을 저지른다. 분노대상은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여성이라던가 달갑지 않게 구는 가게 사장, 혹은 매번 딴 남자와 자고 오는 엄마. 참으로 얄팍하다. 어딘가 이런 유형의 캐릭터를 양산하는 공장이라도 있는 걸까. 다른 캐릭터도 마찬가지. 성격도 뻔하고 행동패턴도 뻔하고. 그런 것치곤 매력적인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굉장히 무미건조한 느낌이다. 어차피 나락으로 떨어질 캐릭터들, 어떻게 되든 솔직히 나한테 상관없는 캐릭터들. 으음, 이미 단물 빠진 껌 계속 씹고 있는 기분.
분명 우타노 쇼고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문제의식을 다루고 싶어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이나 매스컴이 이슈를 다루는 방식이라던가. 요즘 젊은 세대의 어둠이라던가. 그런 흔한 이슈들. 하지만 그 문제의식은 소설의 조미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고, 그래서 그 문제의식에 대한 작가 나름의 답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 문제의식마저 이상한 반전에 너무 집중해서 그냥 증발했다. 작가의 메세지가 그래서 뭐였는지 결국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가 처음부터 깔 생각으로 읽었기 때문에 나온 감상이고, 그런 걸 감안하고 읽으면 디렉터스 컷은 의외로 읽을만한 책이다. 일단 인터넷과 매스컴, SNS의 묘사가 훌륭하다. 한 이슈가 어떻게 다뤄지고 그것이 어떻게 증폭되는지 잘 보여줘서 이런 점은 참고해야겠다 생각했다. 앞부분의 인성문제 있는 청년들과 찌질한 살인범 파트만 참고 읽는다면, 뒷부분은 인터넷과 매스컴을 촉매재 삼아 이야기가 폭주하기 때문에 상당히 즐겁다. (물론 그 끝에는 찬물 끼얹는 엔딩이 기다리고 있지만.) 뭐, 어쨌든 내가 뭐라 해도 우타노 쇼고는 또 찬양받고 있겠지.
하지만 밀실살인게임은 쓰레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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