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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시

중력은 내 친구 중력은 내 친구 천가을 오늘도 추락하는 꿈을 꾼다 수많은 은하를 가로질러서 마침내 더러운 흙먼지로 환원되는 눈을 떠보면 바닥이다 언제나 아래만 보고 살고있다 민달팽이처럼, 착 달라붙어서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저 새까만 밤하늘이 좋았어 뻣뻣한 목뼈를 우두둑 꺾으면서 가끔씩 하늘을 바라본다 다시 아래를 본다 어느 정도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바닥이 발에 닿고 있고 하늘은 머리 위에 높게 떠있고 그래, 날개가 없는 인간에게 영원한 비행을 선물해주자 하나둘 신호에 맞춰 발돋움하면 오늘도, 추락하는 꿈을 꾼다 더보기
별똥별 별똥별 천가을(千秋) 그날, 별 하나가 떨어졌다 소년의 소원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새하얀 천사처럼, 혹은 악마처럼 세상은 한 번 멸망하고 다시 새롭게 태어났다 무자비하게 살육하던 짐승들도 그의 손에 죽임당한 수많은 사람들도 그리고 그 시체 위에서 아무 것도 모른채 평화롭다고 외치던 그 사람들도 모두 재가 되어 사라졌다 홀로 남은 소년은 보았다 양심과 죄책감이 사라진 세계에서 앙금처럼 남은 그들의 죄의 무게 더보기
보물선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외로운 전염병 외로운 전염병 천가을 외톨이는 옮는다 같이 놀자고 뻗은 두 손이 날카롭게 너의 팔을 할퀸다 너도 이제부터 외톨이다 나도 여전히 외톨이다 외톨이는 퍼져나간다 새로운 자극에 굶주린 사람들 피라냐같이 달려들어 물어뜯지만 남는 건 앙상한 해골과 여전히 외로운 사람들 외톨이는 여깄다 모두가 여기 있지만 모두가 외톨이라 외톨이는 여깄다 더보기
최후의 밤하늘과 유성우 최후의 밤하늘과 유성우천가을(千秋) 당신은정제되지 않은 단어들을어설픈 형태로 똘똘 뭉쳐서언덕 아래로 굴린다 더러운 흙먼지이끼와 곰팡이사이사이에 이리저리 끼면서점점 비대해지는 자아와불쾌한 갈색 덩어리 마침내 절벽 끝에서힘차게 날아오른다수백 명이 쏘아올린수천 개의 덩어리들 당신은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지만거대한 그림자가 시야를 가리고짓눌려버린 고깃덩어리 누군가 배설한 더러운 생각 아래에수만 명이 깔려 죽었다. 더보기
이상한 나라 이상한 나라 천가을(千秋) 내 몸 어디에도‘날 마셔요’란 말은 없었지만,너는 아랑곳하지 않고나를 벌컥벌컥 마셨다. 몸이 줄어든 너는울면서 나를 향해 탓했다.이상한 약을 마신 네 이야기에온 세계 사람들이 주목한다. 하지만 텅 빈 채 덩그러니 버려진 나를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 더보기
이 전봇대는 사람을 죽입니다. 이 전봇대는 사람을 죽입니다.천가을(千秋) 이 전봇대는 사람을 죽입니다.수많은 사람들이 이 전봇대에게 죽임 당했습니다.어두컴컴한 밤을 노려 사람을 덮치는 전봇대가바로 여기에 당당히 서있습니다. 어제도 한 남성이 당했습니다.새빨갛게 함몰된 안면으로 남성은 외쳤습니다.“저 전봇대가 어젯밤에 저를 향해 덮쳤습니다!”그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습니다. 전봇대는 여전히 말이 없습니다.미안하단 말도 억울하단 말도 없습니다.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그것은 동의의 의미입니다.) 보십시오, 저기 또 한 놈이 쓰러져있습니다.더 이상 저 녀석을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네 좋습니다, 판사는 옷을 집어던졌습니다.군중도 판사를 따라 발가벗고 달려갑니다.망치를 들고 전봇대를 부수기 시작합니다.서서히 금이 커지더니 전봇대가 .. 더보기
죽음을. 죽음을.천가을(千秋) 태어나면 곧 죽지만,죽는다고 다시 태어나지 않아.죽은 뒤에 어디론가 가지 않아.죽으니까. 목숨은 하나 뿐이야.잘 간직하고 있어야 돼.하지만 의외로 가벼운 물건이라,조금만 세게 쥐어도 깨져버려.산산조각 난 유리파편을 들고 너는 물어“이렇게 쉽게 부서져도 되는 건가요?”하지만 목숨이 하나라는 사실이그것이 소중하다는 뜻은 아니란다. 죽은 뒤에도 사후세계를 믿는 멍청이들.“살아있다”는 게 축복이라 생각하는 바보들.잠시 밝아졌다 금방 꺼져버리는 불꽃 하나에도대체 얼마나 커다란 의미를 집어넣으려는 거야.살아있어, 그건 곧 죽는다는 뜻.죽었어, 다신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찾아보려 해도 이미 없어. 그러니까, 받아들이자.우리는 모두 죽는다.어차피 죽는 이에게무슨 가치가 있으.. 더보기
종말예행연습 종말예행연습천가을(千秋)“어차피 죽을 텐데”라고말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 죽기 직전에도 우리는무언가를 사랑해야 한다.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가져야 한다.무언가를 그리워하며 소중한 추억들을 떠올려야 한다. 앗, 너도 나와 같구나.그렇다면 우리 둘이 사귀는 거 어때?어차피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는두 사람에 대한 기록도 어디에도 없겠지만.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에,있지도 않은 의미를 부여해.서로의 육체를 탐내면서,거짓된 사랑을 귀에 새긴다.이대로 끝나는 게 아쉽다고,새빨간 거짓말을 중얼거려. 속이 텅 빈 껍데기들의 흔해빠진 종말예행연습. 더보기
이어폰 이어폰천가을 이어폰 오른쪽이 망가졌다.신 나는 음악을 들어도 절반만 신 난다.절반만 신 나면 결코 들뜬 상태가 될 수 없어. 양쪽 다 들릴 땐 몰랐는데.길 가면서 폼 나게 한쪽만 꽂고 다닌 적도 있었지.그땐 한쪽만 들린다는 게 이렇게 불편한지 몰랐는데. 아아 눈을 감으면,강렬한 비트와 현란한 기타 연주 속에 내가 있었다.그러나 이제 절반만 들리는 내 마음 속의 소리.나머지 절반은 아무리 외쳐도 들리지 않아. 하지만 절반만 들을 수 있기에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예를 들면 오른쪽에 낮게 깔린 묵직한 베이스 소리.시끄러운 기타 소리에 묻힌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아니면 다가오는 자동차 소리라던가, 그리고 이제야 들을 수 있는,너의 목소리. 더보기